[폭염격차]③ "차라리 학교에 더 있고 싶어요"..민서와 은하의 여름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요즘. 잠시라도 바깥에 나오면 실내 에어컨이 금세 그리워집니다.
그런데 차라리 "바깥이 더 좋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16살 민서와 8살 은하가 그렇습니다.
■ 하교 하자마자 집 밖으로
취재진이 찾은 민서네 집은 ㄱ자 구조였습니다. 꺾인 형태다 보니 애당초 통풍에 취약했습니다. 거기에다 옆 건물은 바짝 붙어 있습니다. 방 안에서는 바람 한 줄기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에어컨은 안방에만 한 대 있습니다. 냉기는 민서 방까지 닿지 않습니다. 그나마 올해는 고장 났습니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마스크 안으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공부를 어떻게 할까. 아니, 잠은 잘 수 있을까. 민서는 종일 선풍기를 튼다고 답했습니다. 오래 틀면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땀띠는 민서에게 일상입니다. 숙면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래서 민서는 하교하자마자 바로 집을 나섭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집을 떠나 어디든 갈 곳을 찾습니다. 카페나 도서관, 복지관. 그곳엔 에어컨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오래 있을 순 없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4시 반이면 문을 닫습니다. 카페는 오래 있기 눈치가 보입니다. 무료인 복지관은 멀고, 공공도서관은 집 근처엔 없습니다.
카페를 나서는 민서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습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 곰팡이와 공생하는 8살
8살 은하네 집은 그래도 에어컨은 있었습니다. 좀 낫겠네 싶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은하와 단둘이 사는 할머니는 항상 전기요금을 걱정하십니다.
은하가 학교에 있는 오전, 할머니는 선풍기로만 견딥니다. 8살 손녀가 돌아오면 잠깐 켭니다. 그리고 끕니다. 저녁 먹을 즈음 잠시 켜고 또 끕니다. 은하에게 에어컨은 '잠깐만 켜는' 가전제품입니다.
더 문제는 습기였습니다. 은하네 집은 지하였습니다. 장마철이면 비가 집 안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지하라 하수도 자주 넘칩니다.
여기에다 환기도 부실하다 보니 젖은 장판은 마를 새가 없습니다. 장판 밑을 봤습니다. 곰팡이가 가득했습니다. 은하의 할머니는 취재진 앞에서 연신 장판을 들어 아래 고인 물기를 닦아냈습니다.
습기가 그득한 바닥엔 이불을 깔지 못합니다. 금세 이불이 젖어 못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1인용 싱글 침대뿐입니다. 거기서 은하와 할머니는 함께 잠을 청합니다. 바로 곁에선 곰팡이도 같이 잠듭니다.
■ 성인이 더우면, 아이는 더 덥다
물론 이런 주거 취약계층은 한둘이 아닙니다. 2019년 기준, 서울 저소득 가구 10곳 중 8곳이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민서와 은하네 집과 같은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민서와 은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성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성인보다 체온 높지만,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집니다. 여름에 특히 취약합니다. 아동이 노인과 함께 폭염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지만, 정부 대책은 시설 중심입니다. 학교와 어린이집에만 신경을 씁니다. 시설 위주로 냉방기구를 지원합니다.
집에 가면 '엄마 아빠가 으레 잘 돌보겠거니' 생각하는 겁니다. 경제력이 있는 집이라면 맞는 얘기겠지만, 저소득 가구에서는 그런 무신경이 곧 사각지대가 됩니다.
■ 순차적 지원도 좋지만…
저소득 가정을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폭염 대책이 없지는 않습니다. 에너지바우처 사업이나 냉방기구 지원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올해는 전국 만 가구가 벽걸이형 에어컨을 지원받았습니다. 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2019년에 비해 2배 이상 지원이 늘었지만, 전체 빈곤 가구는 225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냉방기구 지원 사업을 맡는 한국에너지재단 관계자는 "다 해주면 저희도 좋죠. 하지만 예산의 한계가 있으니, 순서대로 지원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재원의 한계를 고려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16살 민서와 8살 은하가 그 순서에서 과연 앞에 설 수 있을까요. 답답합니다.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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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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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빈곤 학생들 폭염 사각에 방치…“차라리 학교에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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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 기자 (k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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