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청춘의 험난한 취업 여정

2022. 7. 2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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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차별과 배제를 일상적으로 겪는 이주민 2세대가 있다. 본인 또는 부모가 외국으로부터 이주한 경험이 있는 ‘이주배경 청년’이다. 여기서 ‘이주’란 중국, 베트남, 몽골, 러시아 등 외국뿐 아니라 북한으로부터 이주한 사례도 포함된다.

‘이주배경 청년’ 고미르씨(26)가 지난 7월 20일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다문화정책’은 주로 결혼이민자와 아동·청소년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접근법은 빠르게 바뀌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우선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가정 자녀뿐 아니라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 중도에 한국으로 오는 이들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인구절벽이 본격화할수록 다양한 유형의 이주배경 청년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1990년대 급증한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이 본격적으로 청년기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때문에 한국사회가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청년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주배경 청년이 언젠가는 사회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전에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이젠 이주배경 청년의 ‘건강함’에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공존하는 법을 모색할 때가 됐다. 주간경향은 지난 7월 초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청년 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을 만나 일자리를 구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은 무엇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첫 진입장벽은 ‘한국어’

이주배경 청년들이 한국에서 마주하는 첫 번째 관문은 한국어다.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가정 자녀에겐 한국어는 ‘모국어’다. 외국에서 태어난 뒤 한국에 중도입국한 이들은 다르다. 이주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과정 없이 부모 제안으로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사례가 많다 보니 한국어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언어를 빨리 배우는 초등학생 연령 때 중도입국해 학교에 다니거나 중국동포(조선족)여서 상대적으로 한국어에 익숙한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외국인 가정의 자녀인 김모씨(21)는 중국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2017년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중국동포인 부모는 모두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김씨의 방학 기간에 잠시 중국을 찾은 어머니는 딸에게 같이 한국에 갈지, 계속 중국에서 학교에 다닐지 물었다. 김씨는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씨에게 한국어는 아주 낯선 언어는 아니었다. “중국에 있을 때 ‘조선족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어도 같이 배웠다.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로 간단한 소통은 가능한 정도였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들었을 때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느낌이었을 거다.”

김씨는 중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학적 서류 준비가 부족했던데다 행정처리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한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공교육 진입 실패는 중도입국 청소년의 한국어 능력 향상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김씨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이주배경 청소년 전문 종합사회복지시설인 수원시글로벌청소년드림센터의 도움을 받아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국무조정실이 2020년 6월 연 제18차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회의 자료를 보면, 중도입국 청소년이 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비율은 약 30%다. 입학까지 걸리는 기간도 6개월 이상이 약 43%에 이르는 등 공교육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서류 준비에 문제가 없다 해도 개별 학교장이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입학신청을 거부하는 사례도 잦았다. 이에 정부는 당시 회의에서 입학신청 방식을 ‘교육장(시군 단위 교육청장) 배정’으로 바꿔 중도입국 청소년 입학을 학교장이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한국어 능력은 이주배경 청년 취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김씨의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게 한국어다. 이주배경 친구 중 한국어를 잘 못하는 친구들은 건설현장 등 의사소통이 많이 필요 없는 쪽에서 일한다.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동포 친구는 대학에 안 다녔지만 보험회사 사무직으로 취업을 했다.”

이주배경 청년들은 자격증을 준비하거나 직장에서 일하는 중에도 한국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고미르씨(26)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14년 말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고씨의 부모는 고씨가 초등학생일 때 이혼했다. 고씨 어머니는 이혼 뒤 한국으로 떠났고, 한국인 남성을 만나 재혼했다.

고씨는 고등학교 졸업 뒤 한국에 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가족·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곳에 온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여동생과 함께 경기 파주로 왔다. 새아버지에게 입양된 고씨는 입국 뒤 6개월 만에 귀화시험에 통과했다. 새아버지는 용(龍)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미르’를 고씨의 한국 이름으로 지어줬다.

고씨는 2016년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할 때 장국죽, 비빔밥, 너비아니구이 등 한식 요리 명칭을 익히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 ‘가나다라마바사’ 정도만 접했다. 한국어가 어려워 자격증 필기시험을 3번이나 봤다.”

2020년 6월 단체급식회사인 아워홈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처음 입사 때 계약직과 정규직 차이도 몰랐다.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이 (고용형태를) 물어보셔서 내가 ‘정직원이 뭐예요’ 하고 되물어봤다. 나중에 알아보니 정규직 전환 시험이 있었다. 이력서 제출, 인·적성 검사, 1차 면접, 실기시험, 임원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베트남어로 하면 바로 이해가 됐을 텐데 한국어로 인·적성 검사를 보려 하니 아주 어려웠다. 집에 책을 사두고 따로 공부도 했다. 인·적성 검사에서 2번 떨어지고 3번 도전 끝에 정규직 전환이 됐다.”



체류자격·국적 취득이 취업의 관건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중도입국한 이주배경 청년들이 마주하는 두 번째 관문은 안정적 체류자격 확보 혹은 국적 취득 문제다.

이주배경 청년들은 중도입국 시 대부분 부모의 미성년 자녀 신분으로 한국에 체류한다. 대표적인 비자 유형이 F-1(방문동거), F-2(거주), F-3(동반) 등이다. 문제는 성년(만 19세)이 되면 독자적으로 체류자격을 취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입국 초기나 학교 재학 중 비자 또는 국적 취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졸업 뒤 취업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 외국 국적자 고용에 따른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안정된 체류자격이나 한국 국적을 취업 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주배경 청년의 제대로 된 진로·취업에 대한 고민은 안정적 체류자격을 확보하거나 국적을 취득한 후에나 가능하다.

이주배경 청년들이 청소년기에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선택하는 경로는 크게 네가지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 대학에 진학해 유학생 자격(D-2 비자)을 얻는 것, 동포 자녀의 경우 자격증을 따서 F-4(재외동포) 등 안정된 체류자격을 미리 확보하는 것, 귀화하는 것 등이다.

이주배경 청년들은 고교 졸업 전 안정적 체류자격 확보를 위해 자신의 진로와 무관한 국가공인자격증 취득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중국동포 자녀의 경우 자격증 시험에 통과하면 F-4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F-1 비자로 입국한, 중국동포 가정 자녀 김씨의 말이다. “2017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F-1 비자였는데 일정 기간이 되면 중국에 다시 가서 연장하고 와야 해서 복잡했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F-4 비자를 받았다. 2019년 당시 급해서 가장 간단한 걸 선택했는데 세탁기능사 자격증이었다.”

법무부는 올해 1월 3일부터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중국 및 고려인 동포 미성년 자녀에게 F-4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간 중국 및 고려인 동포 미성년 자녀는 국내에서 고교를 졸업해야 F-4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김씨처럼 ‘학교 밖 청소년’들은 여전히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적 취득 심사에 적어도 1년 6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리는 점도 이주배경 청년이 겪는 난관 중 하나로 꼽힌다. 한창 일할 나이에 손발이 묶여버리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8년 8월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주배경 청소년을 위한 기술전문학교인 제천 한국폴리텍 다솜고 재학생들은 3년간 기술을 익히고 국가공인자격증을 딴 뒤 졸업한다. 귀화 면접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법무부 국적허가까지 1년 6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가 없다. 취업할 수 있는 비자나 한국 국적이 없어 집에서 허송세월하거나 D-2(유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 불가피하게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이에 권익위는 중도입국 청소년 중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하고 귀화시험에 합격한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가 국적 취득 전이라도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2019년 3월 ‘예외적 취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지난 7월 18일 주간경향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중도입국자녀에 대한 취업은 자격증 해당 분야에만 허용하며, 취업을 위한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는 1회 1년 범위 내에서 부여하고 연장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 조치가 현장에서 큰 실효성은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변경환 폴리텍 다솜고 교사는 “기업들은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국적 취득 전 임시로 받는 비자가 안정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예외적 취업 허용의 대상 역시 제한적이다.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하고 귀화시험에 합격한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가 아닌 경우엔 여전히 긴 인생의 휴지기를 견뎌내야 한다. 몽골 출신인 노모씨(29)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초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대학에 다니려고 한국에 입국했다. 노씨의 어머니는 몽골에서 이혼하고 한국으로 온 뒤 한국인 남성과 재혼했다. F-1 비자로 한국에 온 노씨는 입국 뒤 1년간 대학교 어학당에 다니면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2013년 서울 소재 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했다.

입국하자마자 새아버지에게 입양됐던 노씨는 2018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해 6월 특별귀화 신청을 했다. 이후 체류자격은 D-2에서 F-1으로 다시 바뀌었다. 당시 노씨는 미성년은 아니었지만, 국적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법무부가 F-1 비자를 발급한 것으로 보인다. F-1 비자는 취업이 불가능한 비자 유형이다. 국적 심사가 마무리된 게 지난해 초였으니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노씨의 말이다. “1년 6개월 정도면 된다던데 코로나19 때문인지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스트레스도 받고 많이 힘들었다. 가끔 자다가 일어날 정도였다. 대학 졸업 뒤 경력이 많이 단절됐다. F-1 비자여서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었다.”

이주배경 청소년 교육지원사업인 ‘레인보우스쿨’에 참여 중인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지난 5월 서울 문래동에 있는 이주배경청소년문화교류센터 ‘투소프카’에서 진로탐색 교육을 받고 있다. / 투소프카 제공


바늘구멍인 ‘전문직 취업’

D-2 비자 소지자가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취업할 수 있는 분야는 E-7(특정활동)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전문 분야로 한정된다. 고용허가제 E-9(비전문취업) 비자로 입국한 이들과 다른 트랙이기 때문이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E-7은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받기가 힘들다. 무역 등 꼭 필요한 분야가 아닌 이상 한국 회사들이 굳이 외국인 채용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몽골에서 온 A씨(27)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던 부모의 권유로 한국에 왔다. 한국어를 전혀 몰라 학교 입학 뒤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어린 나이에 온 만큼 빨리 한국어를 익히게 됐다. A씨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중학교 2학년 때 부모, 자매와 함께 다시 몽골로 돌아갔다. 한국에 함께 왔던 언니가 대학에 입학할 시기가 된데다 동생이 모국어인 몽골어를 잘 모르는 게 걱정됐던 부모가 몽골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A씨는 몽골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뒤 2017년 한국에 다시 돌아와 대학원(한국어교육학)에 입학했다. 좋은 기억이 있던 한국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2020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체류자격을 D-2에서 D-10(구직)으로 바꾼 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D-10 비자는 인턴으로만 일할 수 있는 비자 유형이다. D-10 비자 소지자는 E-7에 해당하는 직종에 취업이 확정되면 비자 변경 절차를 밟을 수 있다.

A씨는 몇군데 인턴을 거치긴 했지만 E-7으로 비자를 바꿀 수 있는 직장을 찾지 못했다. D-10 비자의 만료 기한이 어느새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면접을 본 곳에선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없는 상태다. “외국인이고 경력도 없다 보니 한국에서 일자리 찾는 게 어렵다. 취업할 수 있는 곳도 외국인 의료 코디네이터 등 제한적이다. 한국이 좋아서 대학 졸업 뒤 석사 과정으로 오게 됐다. 출입국관리소가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데다 취업도 쉽지 않으니 한국이 점점 싫어진다. ‘타지에서 사는 게 역시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아닌 청년에 대한 지원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강은이 시흥시 가족센터장은 “이주배경 청년들은 특출난 재능이 있거나 죽어라 열심히 살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기회를 잡기가 정말 어렵다”며 “생존(체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선 ‘꿈이 뭐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무슨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묻는다는 게 뜬구름 잡는 일 아닌가라는 고민을 현장에서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국적을 취득해도 이주배경 청년이 안정적이고 전망이 보장된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몽골 출신인 노씨는 국적을 취득하고 지난해 7월부터 인터넷 쇼핑몰 MD(상품기획책임자)로 일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정체된다는 느낌이 들어 8개월 만에 사직했다. 올해 4월부터는 다른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류 담당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이주배경 청년을 받아주는 곳들이 있는데 노동환경이 좋지 않고 오래 일하기 어려운 곳들이다. 지금 일도 장기적 전망이 있는 일자리는 아니다”며 “무역 분야 일을 해보고 싶다. 스펙을 보강한 뒤 중견기업에 지원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주배경 청년의 강점은 두가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씨는 몽골어 구사 능력을 활용하는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진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몽골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었다. 한국과 몽골 간 교류가 활발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온 환자 통역을 하는 의료 코디네이터 정도를 빼곤 딱히 찾기가 어렵더라.” 노씨는 취업에 유리한 이공계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고 말했다. “내 전공인 정치외교학과는 문과이지 않나. 이과 쪽으로 갔으면 이주배경 청년이라 해도 수요가 있었을 텐데….”

제천 한국폴리텍 다솜고 학생(파키스탄 출신)이 컴퓨터설계(CAD) 실습을 하는 모습 / 폴리텍 다솜고 제공


정보 부재로 인한 시행착오

이주배경 청년들은 자신의 진로, 취업 등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얻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거치는 사례가 많다.

중국동포 자녀인 김씨는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자격을 얻은 뒤 안산에 있는 전문대학 호텔경영학과에 2020년 입학했다. 졸업을 앞둔 지난해 말 김씨는 수원에 있는 한 호텔에서 채용면접을 봤다.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출근한 첫날 김씨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노무직 취업이 불가능한 F-4 비자로는 호텔 식음료 서비스 파트에서 일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출근 첫날 체류자격 등과 관련된 서류를 제출했다. 호텔 직원이 ‘F-4 비자네요? 우리는 한국 국적을 딴 것으로 알았어요. 죄송해요’라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충격을 받았다. 호텔 관련 학과를 나왔는데 호텔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니 막막할 뿐이었다. 일자리를 소개해준 교수님도 처음 아셨다고 하더라.”

김씨는 호텔 채용이 취소된 뒤 수원 집 근처에 있는 한 휴대전화 매장에서 일하면서 취업 분야 제한이 없는 F-5(영주권) 비자 취득을 준비 중이다. 그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면 이중언어 구사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호텔의 문을 다시 두드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 고씨 역시 아워홈에 입사하기 전까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는 2016년 말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파주 롯데아울렛에 있는 한식집, 김포에 있는 고깃집 등에서 3년간 일했다.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했지만 매달 210만~240만원의 임금만 손에 쥐었다. 고씨는 2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고교 친구였던 베트남 여성과 결혼을 했다. “결혼 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루 8시간 일하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식당에서 일하던 3년간 배운 메뉴도 많이 없고 시간을 낭비했다. 처음 일자리 구할 때 여러 정보도 찾아보고 고민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외국인(중국동포) 가정 자녀 정모씨(23)는 대학 전공과 졸업 뒤 일자리 간 연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다. 정씨는 2016년 6월 중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한국으로 이주했다. 12년 만에 온 가족이 한국에서 함께 살게 됐다. 정씨는 입국 뒤 이주배경 청소년 교육지원사업인 ‘레인보우스쿨’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익히고 이듬해 서울다솜관광고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이주배경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간의 직업교육을 하는 공립 대안학교다.

정씨는 2020년 선생님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국외대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이 학과에선 국어교육,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육 두 분야를 수강하면 교사자격증 2개를 받을 수 있다. 정씨의 말이다. “막상 저의 국어 지식으로는 국어교육 교원자격 취득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국어교육 수업은 2학년 때부터 듣지 않았다. 지금도 진로 때문에 고민이다. 중국동포라 한국어 발음이 불완전해 한국에서 한국어교사로 일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주배경 청년으로선 진학, 취업에 대한 체계적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국내 출생 국제결혼가정 자녀

이주배경 청년 중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가정 자녀의 경우 중도입국한 청년과 달리 한국어, 국적 취득 문제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아닌 부모에게 이주의 경험이 있을 뿐이다. 이들 역시 한국사회에서 차별에 노출되거나 진학, 취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있다.

울산에서 태어난 안혜진씨(26)는 어머니가 결혼이민자(베트남 출신)다. 학교 다닐 때 간혹 친구들이 “베트콩”이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노골적인 차별을 겪진 않았다. 안씨는 어머니 배려로 학창 시절 방학 때 베트남 외갓집에서 지내면서 베트남어를 익힐 수 있었다. ‘이중언어 구사’라는 강점을 살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한 안씨는 2018년 졸업 뒤 일주일 만에 한국 섬유회사의 베트남 현지 사업장에서 일하게 됐다. “영업 파트로 들어갔는데 통·번역 등 갖가지 일까지 저에게 몰리다 보니 힘들어서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베트남에서 식당 매니저 등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9년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안씨는 방송국 통·번역 업무, 섬유회사 영업파트 등에서 일했다. 현재 지인의 회사에서 수입차 부품 견적을 주문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안씨는 국내 출생 국제결혼가정 자녀가 모두 이중언어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주배경이 강점으로 작용한, 운이 좋은 경우다. 사실 대부분은 그냥 한국인으로 살기 때문에 두가지 언어를 하지 못한다.”

변경환 교사는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가정 자녀들은 가정환경 때문에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폴리텍 다솜고 입학생을 보면 중도입국 자녀가 60%,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가정 자녀가 40%다. 후자의 경우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 어머니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한국어가 조금 익숙해질 때쯤이면 일하러 나가기 때문이다. 부모가 학업에 신경을 써주지 못하다 보니 고등학교 시기가 되면 비(非)이주배경 청소년과의 격차가 커진다. 이게 진로에까지 연결이 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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