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10원) 전쟁' 승부수 던진 美유통업계 [김리안의 글로벌컴퍼니]

김리안 2022. 7. 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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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공급망 직격탄에 후퇴했던 美유통사 PB 상품들
인플레이션 시대 맞아 '화려한 부활'
"저렴하고 질도 좋아 재구매율 높아"

미국 오클라호마 주 바틀스빌에 거주하는 캐스린 스튜어트는 요즘 마트 PB(자체제작) 상품을 구매하는 재미에 빠졌다. PB 상품인 대형 시리얼 봉투 안에 페니(약 10원짜리 동전)를 모아두는 습관을 들인 덕분이다.

이는 비싼 NB(대형 식음료제조사 제작) 상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PB 상품을 소비하면서 절약하게 된 동전들이다. 그는 "원래 켈로그 시리얼 등 NB 상품을 사다가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PB 상품으로 갈아탔다"며 "맛이나 식감의 차이는 미미하지만 예산절감 효과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살인적 高물가에 "더 싼 PB 상품 어디없소?"

최근 한달간 판매 점유율 늘어난 PB 상품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트리하우스푸드 등이 제조·납품하고 월마트 코스트코 크로거 등이 판매하는 PB 상품들이 코로나19 여파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서치 회사 IRI에 따르면 최근 한달 간 PB 식료품의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은 평균 1%포인트 늘어났다.

피클, 올리브, 오트밀, 커피 등 미국인들이 매일 먹는 품목들을 중심으로 NB 상품에서 PB 상품으로 옮겨가는 소비자들이 급증했다. 동기간 미국 소비자들의 식료품 부문 총지출에서 PB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1.6%를 기록, 코로나19 여파가 있기 전인 2019년 수준을 넘어섰다. WSJ는 "이 같은 NB→PB 이동 현상은 올해 3월부터 눈에 띄게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의 PB 상품 구매 패턴은 통상 인플레이션 시기에 시작된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PB 상품을 찾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코로나19 회복세로 촉발된 물가상승세는 올해 2월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 가팔라지는 동시에 길어지고 있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에 비해 9.1% 급등했다. 41년 만의 최고치다. 트리하우스푸드의 스티브 오클랜드 최고경영자(CEO)는 "전반적인 물가상승세 속에서는 과거 늘 그랬던 것처럼 PB 상품이 최고의 절약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트리하우스푸드는 미국 최대 PB 상품 제조사다.

 ○"PB 상품, 한번도 안사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산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 PB 상품의 역사는 길다. WSJ에 따르면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 내 PB 상품 판매량은 NB 상품 판매량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코스트코의 커클랜드, 크로거의 심플트루스, 홀푸드마켓의 365 등이 대표적인 미국 PB 상품이다.

이들의 성장세는 코로나19 초창기 잠시 주춤했다. 공급망 붕괴에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NB 상품을 만드는 대형 제조사들이 전통적 제조업의 강점을 살려 공급망 차질을 잘 버텨낸 점과 대비됐다.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레스토랑 이용이 제한된 반면 정부의 경기부양 보조금 등으로 수중에 쥔 현금다발이 많아진 소비자들이 비싼 NB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PB 상품이 외면받은 또 다른 원인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살인적인 고물가가 결국 소비자들의 소비 풍속도를 바꿔놨다. PB 상품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식품기업들이 비용 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NB 상품의 가격을 계속 인상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전문가들은 "식료품 제조사들이 과거엔 포장재나 재료공급업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최근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공급망 문제가 더욱 심각해져 비용 절감을 위한 다른 선택지들이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PB 상품 가격보다 평균 30% 가량 비싼 美 대형 식품기업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PB 상품과 NB 상품 간 가격 격차는 최근 처음으로 확대돼, PB 상품이 평균 30% 가량 저렴한 것으로 추산됐다. 유통사들도 코로나19 초창기 공급망 붕괴에서 얻은 학습효과를 토대로 공급망을 빠르게 재정비해 최근엔 PB 상품 재고를 가득 채워넣고 있다. PB 상품 컨설팅 기업 데이몬의 에이미 베커 부사장은 "소비자의 70% 가량이 PB 상품이 괜찮은 곳으로 식료품을 사러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통계를 보면 NB 상품에서 PB 상품으로 갈아탄 소비자들은 대부분 PB 상품의 질에 만족해 눌러앉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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