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의 나라, 모빌리티 잔혹사]④표심에 눈먼 정치권…기사들 삶 나아졌나요?

이기범 기자 2022. 7. 2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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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택시 산업 문제 분출…모빌리티 '정책의 실패'
택시 보호 명분 앞세워 책임 방기한 정치권, 불편은 시민 몫

[편집자주] 심야택시 대란이다. 택시를 못잡아 호텔을 잡았는데 이제는 그 호텔마저 없다는 푸념이 나올 지경이다. 수요는 있는데 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까? 일상의 불편함이 바로 혁신을 만드는데, 21세기 플랫폼 시대에 모빌리티 혁신은 왜 아직도 요원할까?

서울 종각역 부근에서 한 시민이 택시를 이용하는 모습. 2022.4.2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매번 법을 만들어서 우버가 금지되고, 카풀이 금지되고, 타다가 금지되었습니다. 과연 그동안 소비자들의 편익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나요? 아니 택시 기사들의 삶은 나아졌나요?"

'타다금지법' 국회 통과 후 당시 이재웅 쏘카 대표가 남긴 말이다. 택시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택시 중심의 모빌리티 규제 재편이 이뤄졌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소비자들의 불편은 가중됐고 택시 기사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택시 대란'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정치권의 '표퓰리즘'에 국내 모빌리티 시장은 택시를 거치지 않으면 진입조차 어려운 '택시의 나라'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택시 산업은 누적된 문제가 분출되면서 죽어가고 있다.

유입되는 젊은 인구는 없이, 늙어만 가는 택시산업은 1960년대 정부의 통제하에 탄생했지만 시장의 논리를 외면하고 가격인상도 없이 '고인물'을 만든 정책의 실패에 있다. 정부가 택시 공급은 통제하면서 가격은 대중교통 요금인상 문제로 눈치를 보느라 전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택시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앞당긴 택시 산업 문제

최근 택시 대란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했다. 정확히는 택시는 있지만, 심야 시간대 수요가 몰리는 도심지에 택시를 운행할 '기사'가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택시 공급 과잉 문제로 감차를 유도하기 위해 수년째 골머리를 앓아 왔다. 그러나 법인 택시는 주차장에 멈춰 있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인 택시는 집에 있다.

법인 택시 기사들은 수익성이 좋은 배달이나 택배 업계로 이직했고, 평균 연령 64세(올해 6월 서울 개인 택시 기준)의 고령화된 개인 택시 기사들은 야간 운행을 꺼리는 탓이다. 정부가 요금을 통제하는 구조 속에 저임금이 고착화되면서 젊고, 새로운 택시 기사가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택시 시장은 이미 2010년대부터 공급 과잉 문제로 감차 논의가 이뤄져 왔다. 지금 택시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낮 시간대에는 많고 출근·심야 시간대에만 없는 것"이라며 "법인 택시는 기사 수입이 도시 근로자 평균에 못 미치고, 개인 택시는 기사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건강상 문제로 심야 시간 운행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우버, 카풀, 타다를 법적·제도적으로 금지하면서 새로운 여객운송수단을 틀어 막으면서 택시가 독점한 여객운송시장에 새로운 공급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 이동 수요가 폭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모든 교통 정책은 어떻게 하면 수요 공급 간격을 좁힐까의 고민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공급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수요를 분산시킬지 고민만 해왔다"며 "우버의 등장으로 수요에 따른 공급 등 새로운 모빌리티 가능성에 주목했는데 정부는 불법으로 치부하는 데서 그쳤다"고 말했다.

지난 7월18일 부산 사상구 한 택시회사 차고지에 택시기사를 구하지 못해 운행이 불가한 택시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2022.7.18/뉴스1 ⓒ News1 김영훈 기자

◇택시 산업 변화 기회 뺏은 '타다금지법'

저임금 문제로 택시 산업이 늙어가는 사이,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들은 택시보다 비싼 요금에도 서비스가 개선된 '타다'에 열광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정체된 택시 산업 구조에 대한 처방 대신 손쉬운 선택을 했다. 모빌리티 혁신 시도들이 기존 택시와 마찰을 일으키자 택시 중심의 모빌리티 정책을 마련했다. 신구 산업의 갈등 속에 택시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여야 모두 이견이 없었다. 택시는 지역구 '표심'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국회를 통과,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모빌리티 사업을 세 가지 형태로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게 골자다. △플랫폼과 차량을 확보해 직접 유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입원'(플랫폼 운송사업) △플랫폼을 확보해 가맹점에 의뢰해 여객을 운송하는 '타입투'(플랫폼 가맹사업) △플랫폼만 가지고 이용자와 택시를 중개하는 '타입스리'(플랫폼 중개사업) 등이다.

당시 국토부는 모빌리티 산업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당 법안이 더 많은 '타다'가 나올 수 있는 법이라고 자신했다. 타입원이 '타다 베이직' 서비스에 해당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단, 여기에는 여러 조건이 부과됐다. 플랫폼 사업자가 기여금을 내면 정부가 면허를 발급해주는 허가제 방식으로 구성됐으며, 허가 대수도 총량제로 관리된다. 또 승합자동차 임차 서비스의 목적을 관광으로 제한하고, 사용 시간은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반납 장소는 공항·항만으로 제한했다.

나머지는 택시를 끼고 가야 하는 유형이다. 타입투는 '카카오T 블루', '타다 라이트' 등 가맹택시, 타입스리는 '카카오T', 우티(UT) 등 택시 호출 중개 플랫폼 사업에 해당한다.

법 시행 전후로 타입원에 해당하는 시장은 사장됐다. 기여금 부담을 비롯해 총량제 규제가 수요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려 사업자 부담을 높인 탓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택시를 데리고 사업을 벌여야 하는 타입투와 타입스리만 모빌리티 시장에 남고 택시를 제외한 형태인 타입원은 꺼져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2020년 3월 '타다금지법'이 통과된 직후 서울 서초구의 한 차고지에 타다 차량이 주차된 모습. 2020.3.9/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택시 보호 명분 내세웠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책

그러나 택시 기사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의 택시 요금, 사실상 국가가 통제하는 산업 구조가 현재 택시 대란을 일으킨 택시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택시 중심의 모빌리티 사업 규제로 중장기적인 산업 지형의 변화도 막혔다.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택시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표심의 눈치를 보며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췄을 뿐 책임을 방기한 셈이다. 그사이 불편은 시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김재욱 태평운수 대표는 "제도 개선을 미룬 결과 택시 산업이 망가졌고 이를 코로나19가 당겨준 것"이라며 "원인도 알고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타다 사태 때 택시 기사가 분신해 숨지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손을 못 대고 있다"고 말했다.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택시 요금은 사실상 지자체에서 정하다 보니 물가 문제와 연동되고, 표하고 연관이 되기 때문에 건드리기 어려운 구조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OECD 중 택시 요금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요금을 올리긴 해야 한다"며 "공공 운송 수단이 아닌데 공공 수단으로 여겨지는 택시 문제를 논의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 수단을 둘러봐야 할 때다"고 밝혔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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