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 신호탄③]역차별에 골목상권 침해 우려까지..걸림돌 산적

정옥주 2022. 7.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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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장석영(왼쪽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 김형진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장, 박찬용 KB국민은행 업무지원본부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역 인근에서 열린 '알뜰폰 스퀘어 개소식'에 참석해 제막식을 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20.10.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최홍 기자 = 금융당국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비롯해 '빅블러 시대' 맞지 않은 낡은 금융규제들을 뜯어고치는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야당의 협조와 골목상권 침해 문제 등 걸림돌이 산적해 있어, 금융규제 개혁이 현실화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고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4대 분야, 9개 주요과제, 36개 세부과제를 담은 '디지털화, 빅블러 시대에 대응한 금융규제혁신 추진방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금융권과 산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금산분리 규제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을 말한다. 현재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은행과 보험사들은 원칙적으로 다른 회사 지분에 15% 이상 출자가 불가능하다.

당초 이 규제는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디지털화·빅블러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는 현 금융환경에 맞지 않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당국은 우선 산업의 금융진출 확대 보다는 은행의 비금융 진출 길을 열어주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비금융업 진출 범위를 확대해달라는 은행들의 건의에 따라 자회사 투자제한 완화, 부수업무 규제완화 등을 검토해보겠단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들은 생활밀착업종, 부동산관련, 가상자산 등에 진출할 수 있도록 업종제한 없이 자기자본 1% 이내 투자 허용해 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현행 은행법 감독 규정상 은행의 자회사로 둘 수 있는 업종은 은행업, 금융투자업, 보험업 등 15개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규제 개선이 이뤄지면 자기자본이 20조원인 은행은 2000억원까지 15개 업종에 해당되지 않는 비금융 자회사에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규제 개혁이 현실화되면 은행과 보험·카드사 등 전통 금융사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전국의 영업점, 방대한 고객 정보 등을 앞세워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KB국민은행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알뜰폰 '리브엠'으로 통신 분야에 진출한 데 이어, 신한은행도 KT와 손잡고 이달 초부터 신한은행 앱 '신한 쏠(SOL)'에서 알뜰폰 가입 서비스를 시작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알뜰폰 사업자(MVNO)를 인수하겠다고 밝히며 통신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밖에 NH농협 등도 알뜰폰 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져, 알뜬폰 시장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배달 시장에선 신한은행이 음식배달앱 '땡겨요'를 통해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금산분리 완화가 현실화되면 해당 분야 사업들의 지속이 가능해지면서 다른 은행들도 앞다퉈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 역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 현재 국민은행이 'KB부동산'으로 시세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규제가 풀리게 되면 은행들이 전국의 영업점과 온라인 앱을 활용해 부동산 감정평가와 투자·개발, 임대 수익을 올리거나 직접적인 거래 중계를 통한 수수료를 얻을 수도 있게 된다.

특히 은행 등 전통 금융사들은 카드, 예금 등과 연계해 통신료나 이용료 할인 등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골목상권 침해 문제 등 기존 업계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앞서 국민은행 역시 알뜰폰 사업 진출 당시 기존의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카카오 역시 골목 상권 침해 논란에 부딪혀 택시 '스마트호출' 서비스를 전면 폐지하고,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개 서비스 등 일부 사업에서는 아예 철수한 전례도 있다.

은행이 플랫폼, IT 등 혁신산업까지 뛰어들어 골목상권을 침해하게 될 경우, 외형이 비대해지는 걸 넘어 '재벌 집단'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학자는 "은행이 산업 영역까지 침범하면 한국의 재벌들의 행태를 비춰볼 때 은행도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등 긍정적인 부분은 있지만 그 이후에는 부의 쏠림 현상, 대마불사의 문제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은행 공적기능 약화될 수도…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 지적도

은행이 신사업 먹거리에만 몰두하게 되면 경제 '소방수' 역할을 해온 은행들의 공적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금융 학자는 "은행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해준 우리 경제에 대한 기여자인데, 그러한 역할에서 벗어나 돈을 더 벌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은행들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금산분리 이슈에서 소비자에 대한 얘기는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자본의 산업 소유는 풀어주면서, 일반 기업들의 금융진출 확대는 계속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일반 기업의 금융 진출 확대의 경우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많다. 정부가 일반 기업들에 금융산업 진출 길을 넓혀줄 경우, 이때는 금산분리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서 경제 시스템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금융적인 리스크가 금융 쪽에 전이될 경우 금융회사 뿐 아니라 전 국가경제에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의 자산운용 입장에서 보면 위험자산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며 "위험이 현실화되면 정부가 국민의 예금을 보전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금산분리 완화는 은행들이 공적자금을 걸고 도박하는 것"이라며 "특히 지금은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버금갈 정도로 경제 위기인 상황이다. 규제완화가 시의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들의 비금융 산업 진출 쪽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완화를 진행할 것"이라며 "산업자본의 금융 진출은 이미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으로 ICT 기업 등 비금융 기업이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사실상 산업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는 일단락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에 가상자산 진출 허용? "제도부터 갖춰야"

특히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들의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가상자산 시장 진출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조각투자 등 디지털 신산업의 책임 있는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국내 가상자산 발행(ICO)을 통해 가상자산업 영위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국내 ICO금지에 따라 해외에서만 ICO 진행되고 있다.

그간 은행권은 그간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해주거나, 가상화폐를 맡아서 보관하는 수탁회사(커스터디)에 투자하며 신사업을 준비해왔다. KB국민은행은 한국디지털에셋(KODA), 신한은행은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우리은행은 코인플러그와의 합작법인 디커스터디, NH농협은행은 카르도에 각각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규제가 풀릴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자회사를 인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적인 사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고 규제부터 완화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에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면 그에 걸맞은 감독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선진국의 제도적 사례를 잘 참고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은행이 주택금융 중심의 업무에서 벗어나, 벤처금융과 중소기업금융에 좀 더 기여하는 등 금산분리 완화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며 "다만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예금자의 돈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 위험하거나 이해관계가 개입된 산업은 소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은행의 비금융 자회사 소유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법상 이미 위험자산 보유를 규제하는 내용들이 많다"며 "이외에 기본적인 규제들이 많기 때문에 은행이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크게 우려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러한 우려들로 인해 입법 과정에서 거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표결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산분리 완화는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에서 야당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현실화 되기 힘들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 골목상권 침해 논란의 경우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야당 측에서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전성인 교수는 "은행이 소유할 있는 비금융 회사의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현재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법 개정 논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hog888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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