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점검]③ 스쿨존이 님비시설? 어린이 안전과 맞바꾼 주차 편의
7월 12일부터 보행자 보호 의무가 강화된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습니다. 보행자 가운데서도 어린이는 배려가 필요한 교통 약자입니다. 때문에 어린이 보호구역 내 주정차 전면 금지,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등 어린이 보행 안전을 위한 조치도 잇따라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은 법을 좇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는 어린이 보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 실태를 집중 점검하는 연속 기획보도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① 사고 많은 '어린이보호구역', 불법주정차도 많았다
② '초품아'의 배신, 아파트 밀집지역이 사고 더 많다
③ 스쿨존이 님비시설? 어린이 안전과 맞바꾼 주차 편의
③ 스쿨존이 님비시설? 어린이 안전과 맞바꾼 주차 편의
'어린이 보호구역'은 각 지자체장이 학교 정문에서 통상 반경 300 미터 이내 도로에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관련 규칙을 보면, 교통 여건에 따라 필요한 경우 반경 500미터까지도 확대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어린이 보호를 위한 지자체장의 의지만 있다면, 어린이 보호구역을 충분히 강화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주정차가 전면 금지되는 것뿐만 아니라 유해시설 진입 금지 등 제약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사는 동네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학교 주변 이면도로를 주차 공간으로 사용하는 주택이나 식당, 상가 밀집 지역이 특히 그렇습니다.
지자체 입장에서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이 스쿨존을 강력히 반대하면, 스쿨존을 확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공익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내 집 앞에 설치되는 것은 막고자 하는 이른바 '님비 현상'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도 나타나는 겁니다.
■ "어린이 보호구역에선 주차 못 해" … 님비시설 된 스쿨존
대구시 동구 서호동에 위치한 반야월 초등학교 사정이 딱 그렇습니다. 반야월초등학교의 어린이 보호구역은 학교 정문 바로 앞 도로가 전부입니다. 반야월 초등학교 학생 80% 이상이 학교 북쪽으로 5백 미터 이상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북쪽 통학로 어린이 보호구역은 불과 100 미터 정도 이어지다 뚝 끊깁니다.
반야월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골목길 사이로 주차 차량, 오가는 차량에 뒤섞여 말 그대로 '곡예 등하교'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이 힘들면, 안전한 보행로라도 만들어 달라고 대구 동구청과 경찰서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대체 왜일까요?
저희 학교 같은 경우는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안 돼 있잖아요. 저희 학교는 스쿨존이 좀 좁아요. 왜 그런가 보니까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하는 게 현실적으로 지자체도 지역 주민 생계라든가 이런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지정하기가 어려운 거 아니겠는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반야월 초등학교 교사)
반야월 초등학교는 안심공업단지 주변에 있는 오래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골목길 사이로 단독주택이나 빌라 등 다세대 주택, 소규모 식당과 업체들이 밀집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이 학교 주변 골목길들을 주차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도로를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당장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주민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공영주차장 개설 등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스쿨존을 최소한으로 지정한 채 지역 주민들의 주차 편의 핑계를 대는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 불법 주정차 단속 6배 많은 학교가 더 안전한 이유
대구 수성구에서 가장 불법 주정차가 많은 어린이보호구역은 동도초등학교입니다. 최근 5년간 불법 주정차 단속 건수는 6,532건에 이릅니다.
왜 이렇게 단속 건수가 많을까요? 주변에 범어네거리, 먹거리 골목, 아파트 단지들이 위치해있는 등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도초등학교의 어린이 보호구역 시설 여건 영향이 큽니다. 동도초 스쿨존은 바로 인근에 있는 마리아유치원 스쿨존과 이어지면서, 학교 반경 300 미터를 어린이 보호구역이 꽉 채우고 있습니다. 도로 길이로만 보면, 동도초 스쿨존은 8백여 미터, 마리아 유치원과 합치면 1,800 미터 정도까지 늘어납니다.
취재진이 동도초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동도초와 마리아유치원 사이에 있는 학교 담벼락 골목길은 3~4년 전만 해도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찾아가보니 불법 주정차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단속 CCTV가 크게 늘면서, 단속이 강화된 영향으로 보입니다.
반야월초등학교와 동도초를 비교해보겠습니다. 반야월초등학교 역시 최근 5년간 불법 주정차 단속 건수가 931건으로 동구에서 4번째로 많습니다. 그런데 반야월초등학교 스쿨존은 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T자' 형태로만 지정돼있으며, 길이가 3백 미터에 불과합니다. 마리아유치원과 인접한 동도초등학교처럼 스쿨존이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반야월초등학교와 가까운 유치원 2곳의 스쿨존을 합해서 동도초와 비교해봤습니다. 그래도 1,200여 미터로 스쿨존 면적이 더 좁습니다. 아래 그림은 동도초와 반야월초의 스쿨존 지정 규모를 직접 비교해본 겁니다. 어느 초등학교가 더 안전해 보이나요?
면적만 문제가 아닙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시설 수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 구역을 형성하고 있는 동도초등학교와 마리아유치원의 스쿨존 CCTV 수는 모두 19개입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은 무려 96개나 설치돼있습니다. 속도 저감시설인 방지턱은 20개입니다. 반야월초와 인근 유치원 2곳의 스쿨존에는 CCTV 8대가 설치돼있고, 표지판은 53개, 방지턱은 26개가 설치돼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사고 건수 차이로 이어집니다. 동도초등학교 스쿨존 일대에서는 최근 10년간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가 모두 5건 발생했지만, 반야월초 일대에서는 13건 발생했습니다. 2.6배가 넘습니다.
■ 스쿨존은 '최후의 보루', 주차 문제는 지자체 역량으로 해결해야!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어린이 보호구역과 어린이 교통 안전 시설을 확충하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실행은 쉽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주차 문제, 상가 손님들이 찾아오기 쉬운 도로 환경 등은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린이 안전을 담보로 삼은 채 학교 주변 도로를 동네 주차장으로 이용하도록 방치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분명히 따져봐야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 북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어린이 보호구역 주정차는 금지돼있으며, 아예 차량 진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나라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초등학교는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게는 게 급선무입니다. 과속방지턱과 같은 속도 저감 시설을 설치하고 불법 주정차 차량과 신호 위반 차량 등을 단속하는 CCTV 대수를 더 늘려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학교 주요 통학로에 대해서는 등하교 시간에 한해 일방통행제를 운영하는 것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통량이 많이 줄어드는 데다 어린이들이 한쪽만 살피면 돼 더욱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구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 교통사고(최근 10년간 35건)가 발생했던 대구 월서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정문 앞 통학로에서 일방통행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주차 시설은 자치단체가 따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스쿨존을 포기하는 방법이 아닌 마을 공영주차장 마련과 야간시간대 한시적 주차 허용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우리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남아야 합니다.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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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기자 (shinjou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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