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노린 '거소투표' 조작 사건..손 놓은 선관위
[앵커]
고령이나 질병, 장애 등으로 투표소까지 가기 힘든 유권자들이 우편으로 투표하게 해주는 거소 투표 제도가 있습니다.
지난 지방 선거 때 이 제도를 이용해 대리 투표를 한 거로 의심되는 마을 이장들이 적발돼 논란이 됐죠.
취재진이 거소 투표 신청이 특이하게 급증한 곳이 또 있나 분석해 봤더니 전국에서 17곳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현장 확인 같은 관리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아 감시나 감독은 주먹구구식입니다.
유호윤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2천 3백여 명이 사는 농촌 마을, 경북 군위군 의흥면.
지난달 지방선거 때 한 할머니가 투표소에 갔는데 이미 투표를 한 걸로 돼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음성변조 : "선거하러 가니까 (투표소에서) '할머니 투표했네요' 그래서 데리고 나와서 신고했다고 (하더라고요)."]
수사 결과, 마을 이장 A씨가 나이가 많은 주민 7명 명의를 도용해 거소 투표를 신청했고 대리투표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 씨는 재판에 넘겨졌고 법원은 거소 투표제 허점을 악용한 중대범죄라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마을 이장 A 씨/음성변조 : "(특정 후보 부탁을 받고 대리투표를 하신 건 아니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경찰은 인근 마을 이장들과 부녀회장 등도 대리 신청이나 대리 투표를 한 정황을 확인해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김정수/군위경찰서 수사과장 : "피해자는 약 30여 명 되고, 가족 없이 혼자 사시는 분들입니다. 소도시에서 특히 몇 표 차이, 몇 백 표 차이로 당선 좌우되니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군위 말고도 경북 의성군과 전남 고흥군 등 모두 3곳에서 거소 투표 조작 의혹이 제기돼 수사나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세 곳의 거소 투표 신청자 현황, 확인해 봤습니다.
3개월 전 대선 때보다 2배에서 3배 넘게 늘었습니다.
군위 의흥면은 무려 6배 넘게 늘었고 의성 사곡면 18배, 고흥 도덕면도 4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인근 마을들과 차이가 확연합니다.
6.1 지방선거는 대선보다 투표율이 크게 낮았고 거소 투표 신청자 수도 18%가 줄었는데, 문제가 된 곳들은 특이하게 거소 투표 신청이 급증한 겁니다.
이런 지역, 3곳뿐일까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전국의 거소 투표 신청 현황을 분석해 봤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곳은 전국에서 17곳.
경북이 6곳, 경남이 3곳, 전북 6곳, 전남 2곳, 대부분 인구가 많지 않은 소규모 면 지역입니다.
경북 울진군은 매화면과 기성면, 온정면에서 많게는 10배 이상 거소 투표 신청이 늘었고 전북 익산 왕궁면도 100명 넘게 증가했습니다.
섬이 많은 전남 완도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물론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 새로 신청을 한다든가 하는 타당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두드러지게 신청이 급증한 경위는 확인이 필요해 보입니다.
해당 지역 선관위에 어떤 확인 절차를 거쳤는지 물어봤습니다.
['거소투표 급증' A 지역 선관위 관계자/음성변조 : "제보가 들어왔거나 신청서에 좀 문제가 보일 때 (확인하고), 현장 검사를 신청자가 많다고 해서 나가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군위나 의성, 고흥처럼 주민 신고가 접수되지 않으면 대리 신청을 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거소투표 급증' B 지역 선관위 관계자/음성변조 : "(현장에 가서 직접 (거소투표) 의사를 다시 한번 여쭤 보고 이런 절차를 거친 건 아니고요?) 그렇게 할 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거소 투표는 본인이 날인해 신청서를 내면 우편으로 투표지를 보내주고 받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확인 업무를 통·리 반장이 맡아 하도록 돼 있는데, 선거 때마다 크고 작은 조작 사건이 불거지곤 합니다.
그동안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달부터 선거제도 개선 연구반을 편성해 후속 대책을 마련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유호윤입니다.
촬영기자:안민식/영상편집:이윤진/그래픽:이경민 김지혜
유호윤 기자 (l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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