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초급 경찰간부들까지 전국회의.. 유례 없는 '집단 반기'
김성종 경감 "훌륭한 지휘관 잃으면
국민을 탄압하는 '견찰'로 양성될 것"
류삼영 총경 "우린 목을 내놓고있어"
警, 총경 회의 현장참석한 56명 감찰
일선경찰 "윤희근 사퇴를" 부글부글
정치권서는 여야 반응 크게 엇갈려
민주 "퇴행적".. 경찰청장 청문회 별러
강병원 "이상민 해임건의안 발의할 것"
국힘 "경찰 권력개입문제 정상화 과정"
경찰 출신 권은희 "'닥치고 굴종' 압박"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 내부 반발이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계기로 재점화되고 있다. 이례적으로 경찰 간부급인 총경까지 집단행동에 나선 가운데 이번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이 곧바로 대기발령 조치를 받고, 나머지 참석자들에 대한 감찰까지 시작되자 경찰들은 “입막음용”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경감·경위급 중간·초급 간부들도 전국회의 소집을 예고했고, 일선에서는 부당한 인사 조치에 대한 법적 대응을 위한 모금운동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는 온·오프라인으로 총경 190여명이 참석해 4시간의 긴 논의 끝에 법령 제정 절차를 당분간 보류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류 총경은 24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정부의 엄정 조치 방침에 대해 “칼만 휘두르면 머리를 숙일 줄 아는 모양인데, 우리는 목을 내놓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 제안 이유에 대해 “경찰 핵심인 총경 의사가 수용되지 않고, 일부 핵심 수뇌부의 의사만 가지고 중요한 제도 개혁을 동의한 것처럼 공식화한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이 내무부에 속해 있었을 때 정치권력의 지시를 받아 민주열사들을 탄압하고 국민들을 괴롭혔는데, 거기에 대한 반성이 바로 경찰청의 내무부 독립이었다”면서 “경찰청의 독립은 정치적 중립을 말하는데, 그걸 특별한 이유도 없이 졸속으로 바꾸자고 하니 반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류 총경은 “현장 회의에 참석한 50여명 총경도 징계 대상이라고 하니 징계가 줄지어 나올 것 같은데, 그 징계가 타당한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초 25일 윤 후보자와 만나 총경들 의견서를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만남이 ‘부적절하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류 총경은 이달 초 사표가 수리된 김창룡 전 경찰청장과 경찰대 4기 동기다. 부산지방경찰청 수사2과장, 부산 연제경찰서장, 부산 영도경찰서장, 부산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과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장 등 주로 부산에서 근무하다 올해 울산 중부경찰서장으로 발령 났다.
류 총경의 대기발령 조치에 일선 경찰관들은 경찰 내부망에 잇따라 글을 올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한 경위급 경찰관은 “류 총경이 25일 경찰청장 내정자와 만남을 갖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대기발령이 났다는 것은 이번 인사가 내정자의 윗선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면서 “류 총경 등 향후 탄압받는 총경들을 위해 법률지원 모금운동을 제안한다. 우선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부터 시작하겠다”는 글을 게시했다.
이 밖에 “국민과 조직원을 외면한 채 장관과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청장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면서 윤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글도 올라왔다. 한 일선서 경찰은 “검사들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대응 당시 전국 고검장 회의, 지검장 회의를 했는데, 징계받았다는 얘길 들어 본 적 없다. 총경급 지휘관들이 조직의 앞날을 논의했는데 대기발령이라니 참으로 황망하고 어이없다”면서 “옛말에 ‘멍청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지휘부를 누가 따르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경찰청지부와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은 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역과 수서역, 오송역, 부산역, 동대구역 등 전국 주요 KTX 역사에서 ‘경찰국 신설 반대 대국민 홍보전’을 열자고 제안했다.
총경 상징 무궁화 화분 행렬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 앞서 각 지역 경찰서장들이 보낸 무궁화 화분 350여개에 ‘국민의 경찰’ 문구가 적혀 있다. 아산=뉴스1 |
경찰이 윤석열정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에 반발해 지난 23일 사상 초유의 경찰서장 회의를 개최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24일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까지 언급한 반면, 국민의힘은 ‘경찰조직의 집단 반발’로 정의하고 “문재인 정권의 충견” “하극상”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 냈다.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찰서장 협의회를 만들고 경찰의 중립성을 논의하는 움직임에 전두환 정권식의 경고와 직위해제로 대응한 것에 대단히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당권 주자들도 ‘이 장관 해임건의안’ 등을 거론하며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 대기발령 조치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강병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겠다”며 “사유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파괴의 절정인 ‘경찰국 설치’”라고 했다. 유력 당권 주자인 이재명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정치권력에 대한 경찰 독립의 역사를 빼놓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거론할 수 없다”며 “퇴행적 경찰 장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대정부질문과 국회 상임위원회,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에서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경찰서장들의 움직임에 좌시하지 않겠다는식으로 엄포를 놓았다. 행안부와 경찰을 소관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일선 경찰 지휘부가 현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소통하고 정상적인 절차로 풀지 못하고 자기 치안지역을 벗어나서 집단행동을 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엄격한 계급사회인 경찰조직에서 지휘부의 해산 지시에도 불복하고 모인 것은 복무규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경찰국 신설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며 “경찰에 대한 권력 개입의 문제는 문재인 정권 당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청와대가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의 경찰 수사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 출신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회의에 참석한 류 서장에게 대기발령 조치가 취해진 것은 내용·절차상 문제가 없음에도 입 닥치고 무조건 굴종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여권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남정훈·최형창 기자, 울산=강승우 기자,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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