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 對 "지원 넓혀야"..기재부vs산업부, 국가전략기술 쟁탈전 2라운드
파격 지원 기대한 산업부 "솔직히 성에 차는 수준은 아냐"
수소·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 범위 정할 때부터 갈등
경제계, 정기국회서 국가전략기술 추가 지정 주목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크게 불어난 국가채무를 줄여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또 기업이 앞장서는 ‘생산성 주도 성장’을 통해 경제 둔화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건전 재정을 확립하려는 기획재정부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에 최대한 많은 혜택을 주려는 산업통상자원부 사이의 마찰이 잦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갈등은 국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기술을 선별해 세제 혜택을 주는 ‘국가전략기술’에 관한 부분이다. 산업부는 국가전략기술에 수소·디스플레이·미래차 등 미래 먹거리 분야 다수가 포함되길 원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국가 재정 관리 등을 이유로 국가전략기술 지정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정부는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3개 산업만 국가전략기술로 인정했다.
국가전략기술을 둘러싼 두 부처의 신경전은 기재부가 최근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계기로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이 개편안에 ‘대기업의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대비 2%포인트(p) 상향 조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획기적인 혜택을 기대했던 산업부는 크게 실망하는 눈치다. 반면 기재부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입장이다.
◇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찔끔 상향에 산업부 “성에 안 차”
25일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달 2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2022년 세제 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에서 정부는 기업의 투자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현행 6~10% 수준인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중견기업 혜택 수준인 8~12%로 2%p 상향 조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내부에서는 “솔직히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 강화는 주로 반도체 시설투자를 지원하려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안보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 육성을 여러 번 강조한 만큼, 산업부로선 기재부가 세제 혜택을 더 화끈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정 당국이 많이 고민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산업정책 주무 부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산업부는 이번 세제 개편안이 발표되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기재부에 반도체 시설투자에 관한 파격적인 세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도 공개적으로 기재부에 신호를 보냈다. 이 장관은 이달 5일 진행된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설비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면 투자가 촉진되고, 투자가 활발해지면 일자리가 생긴다”며 “우리 기업이 설비투자에 힘을 쏟도록 정책적인 힘을 모아주는 게 지금의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위기를 헤쳐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산업부 바람과 달리 기재부는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2%p만 올렸다. 기재부는 세수를 토대로 나라 살림을 꾸려야 하는 재정 당국으로선 산업부 요구가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부분 국가가 일회성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반도체 산업을 돕는다. 한국처럼 법까지 만들어 특정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사례는 드물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산업부와 협의해 기존 세액공제 지원 대상인 반도체 첨단 공정장비 외에 테스트, IP설계·검증기술 관련 설비로도 지원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기재부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 기재부 “국가 안보 관점에서 따져야…다 들어줄 수 없어”
국가전략기술을 둘러싼 기재부와 산업부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할 분야를 선정할 때부터 두 부처는 지속해서 삐걱거렸다. 산업부는 반도체·배터리·백신뿐 아니라 수소·디스플레이·미래차 등 최대한 많은 분야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려고 했다. 기재부는 ‘국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기술’이란 기준을 엄격히 따지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수소의 포함 여부를 두고 기싸움이 치열했다. 기재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수소 관련 기술 등 국가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 기술을 선별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지속해서 검토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도 올해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세계 1등 수소 산업 육성’이라는 표현을 넣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수소 산업 지원에 관한 국가적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달 5일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수소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발표하지 못했다. 산업부 측에서 2022년 경제정책방향과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등을 근거로 수소를 국가전략기술에 넣어줄 것을 기재부에 요청했지만, 조세 정책을 관장하는 세제실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산업군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다르다. 국방·우주·항공 등 우리나라에 중요하지 않은 산업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국가전략기술 자체가 이제 막 도입된 제도인 만큼 업계 영향을 관찰하면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 경제계는 9월 정기국회 조특법 개정 주목
기재부가 지나치게 신산업 지원에 인색하다고 판단하는 경제계에서는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를 주목하고 있다.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다뤄지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과정에서 기재부 반대로 무산된 수소 기술 등의 국가전략기술 지정이 확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법령에서 정해지지만, 어떤 산업·기술에 적용할지는 시행령으로 정해진다.
이 때문에 기재부와 산업의 국가전략기술 쟁탈전은 정기국회에서 제 2라운드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제계에서는 재선 의원으로서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개발에 참여하고,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로 국정과제 선정을 주도한 추 부총리의 입장을 주목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신산업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지원을 공약 등으로 포함시키는 일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수소 등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제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안에서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조세소위 논의 과정에서 적용 대상 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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