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美 연일 '40도'..올 여름 폭염 더이상 이상기온 아니다
[편집자주] 기후변화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800년대 초반이다. 독일 자연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가 최초로 제시, 인류의 행위로 말미암아 지구가 황폐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에도 이후 시작된 산업화는 기후변화 속도를 오히려 가속화했다. 이제 해수면 상승과 이상기온 등 기후변화의 위력은 곳곳에서 현실이 됐다. 지난여름 중국과 독일에 내린 각 '1000년', '100년' 만의 폭우나 올여름 최고 온도를 경신하며 펄펄 끓는 북반구의 폭염 등 현상에 인재(人災)의 성격이 짙다는 데 이제 이견이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변화된 행동을 주저하는 사이 이상현상은 더 잦고 거세지고 있다. 이를 막을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음이 높아지고 있다. <뉴스1>은 그 심각성과 원인, 대안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지난 19일 오후 4시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주 코닝스비는 섭씨 40.3도를 기록했다. 관측 이래 역대 최고 기온인 38.7도(2019년 7월 25일, 케임브리지대 보타닉가든)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같은 시각 잉글랜드 곳곳은 그야말로 펄펄 끓었다.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이 40.2도, 세인트 제임스 파크 40.2도, 왕립 식물원 큐 가든 40.1도, 서부 노솔트 마을이 40도까지 치솟았다.
찌는듯한 무더위는 밤까지 계속됐다. 런던과도 접한 서레이 켄리는 지난 18일 밤 25.8도를 기록했고, 웨스트요크셔 일부 지역에선 25.9도까지 관측됐다.
잉글랜드 외에 웨일스도 밤 최고 24.5도 및 낮 최고 37.1도, 스코틀랜드는 밤 최고 21.4도 및 낮 최고 35.1도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통상 '에어컨이 필요 없던' 영국의 2022년 7월 현주소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건 영국뿐만이 아니다. 스페인은 지난 9~18일 지역별로 39~45도를 넘나드는 '지옥같은' 이상고온을 맛봤고, 포르투갈도 지난 14일 피냐오에서 47도의 최고기온이 관측됐다.
급기야 지난 21일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나서서 유럽의 열사병 사망 증가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반도에서만 올여름 약 1700명이 숨졌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로마를 비롯한 16개 도시에서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으로 적색경보가 발령됐고, 그리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곳곳이 이상 고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의 여름은 한국과 달리 상당히 건조해 더위와 함께 산불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유럽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은 전체 50개주 중 절반 이상인 28개주에 폭염주의보가 발령, 1억 5000만 명이 폭염의 영향권에 든 상황이다. 지난 20일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기온은 46도를 넘어섰다.
중국도 지난 21일 저장성과 푸젠성 등지 기온이 40도를 웃돌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14억 전체 인구 중 9억여 명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기상학계에서는 이 같은 북반구의 동시다발적인 고온현상을 '열파 5패턴(wave number pattern 5)'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폭염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예측하는 연구에도 활용된다.
열파 5패턴은 제트기류와 관련이 깊다. 제트기류는 컨베이어벨트처럼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지면 그리스 문자 오메가(Ω) 모양으로 더운 공기가 갇히는 열돔현상이 발생하고, 이 오메가 블록 5개가 구불구불해진 제트기류 움직임을 따라 북반구 전역에 걸쳐 나타난 것이다.
제트기류 행동 패턴은 장기간에 걸쳐 변화하는데, 여름에 특히 더 둔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반구의 여름철 더 빈번하고 지속적인 폭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기상청 수석과학자 스티븐 벨처는 유럽 폭염의 원인으로 △열파 5패턴 △지구평균온도 상승 △건조한 토양을 들었다. 모두 직간접적으로 인간의 행위와 관련돼 있다.
열파 5패턴을 야기하는 제트기류 둔화의 원인으로 우드웰 기후연구소 대기과학자 제니퍼 프란시스는 극지방의 빠른 온난화를 들었다. 제트기류는 북쪽 찬 공기와 남쪽 더운 공기 차이로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데, 극지방 온난화로 온도차가 줄면서 둔화된다는 것이다.
지구평균온도 상승 속도는 산업화를 기점으로 1850년 이후 가팔라진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대한 자각으로 1997년 '교토의정서'에 이은 2015년 '파리협정'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강조돼왔다.
특히 파리협정에는 이번 세기 지구평균온도 상승폭을 2도보다 훨씬 아래로 유지, 1.5도까지 제한하는 구체적인 온도목표 합의가 담겼다.
온도 합의가 구체화된 건 2009년 코펜하겐 회의에서였는데, 산업화 이후 지구온도 상승폭이 1.2도가 조금 안 되는 것으로 관측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16년 "인류역사상 가장 기온이 높았다"며 "지구온도가 1850년(산업화 이전)보다 1.2도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년도 지나지 않은 올봄 WMO는 "향후 5년내 지구온도 상승폭이 1.5도까지 올라갈 확률이 50%에 가깝다"고 경고했다.
파리협정 이후에도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은 '실천'되지 않았으며, 올여름 북반구 각지에서 기록 중인 '역대 최고 기온'은 예견됐던 일이라는 의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8일 독일 베를린 개최 기후회담 화상연설에서 "우리에겐 집단행동과 '집단자살' 두 가지 선택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더 책임이 있고 이를 막을 역량을 갖춘 선진국의 '행동'이 늦어지면, 그 피해는 특히 기후적응 역량이 부족한 국가들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유엔은 경고하고 있다.
독일 비영리기구 게르만워치가 발표하는 글로벌기후위험지수(IRC)에 따르면 20년 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국가는 △필리핀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모잠비크 △바하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태국 △네팔 등이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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