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의 일본읽기]대화 '물꼬' 텄지만.. 日 결단·용기 기대 어려워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2022. 7.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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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부재' 자민당 내 우파, 기시다 지지할지 불투명
강제동원 놓고 자존심 대결.. 타협안 도출 쉽지 않아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뉴스1

(서울=뉴스1)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 최근 일본에서 개최된 한일 외교장관회담은 실로 4년7개월 만이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 한일관계 개선 의지에 따른 성과였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만남조차 거부했던 일본 정부가 드디어 대화에 나선 것이다. 한일 양국은 현안인 강제징용 판결 관련 '현금화'에 대해서도 조기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실질적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의는 크다.

그러나 아직 한일관계가 해빙기를 맞기엔 많은 난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정상회담은 (예정돼) 있습니까.' 총리관저에서 기자단이 물었을 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냉담한 태도였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 내용에서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조문 성격이라고만 밝혔다.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자민당의 대한(對韓) 강경파인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외교부회장은 "같은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선 신중해야 한다"며 기시다 총리를 견제했다. 이젠 일본의 '대한 정책'에서까지 자민당이 총리를 견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엔 아베 전 총리의 부재가 영향을 미쳤다. 앞서 아베 전 총리는 일본 내 우파들의 비판을 잠재우면서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성사시켰다. 이번에도 아베 전 총리가 납득하면 한일관계는 진전될 수 있었다. 그는 2018년에도 자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회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 면담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민당 내 불만을 기시다 총리 혼자 관리하기엔 역부족이다.

당 총재 선거, 중의원(하원) 선거,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3연승'한 기시다 총리에게 기다리는 현실은 자민당 내 저항이다. 기시다 총리에게 국정선거(국회의원 선거)가 없는 '황금의 3년'은 정권교체 염려가 없는 동시에 인사·정책 양면에서 자민당 의원들의 요구가 강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기시다의 방패'가 돼 불만을 흡수해줬던 아베 전 총리의 부재로 우파 그룹이 기시다 총리를 지지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기시다 총리 주장대로 "인사와 정책 추진으로 구심력을 높인다"는 게 가능할지 미지수다.

아베 전 총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에겐 자민당 내 새로운 질서 조성이 급선무다. 아베 전 총리는 90명이 넘는 당내 최대 파벌을 거느리고 있었다. 보수색이 강한 이른바 '아베파'엔 당내 리버럴(자유주의적) 계보에 속하는 기시다 총리와는 거리가 먼 의원이 적지 않다.

일본 정가에선 '아베 전 총리란 구심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베파가 뭉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기시다 총리와 관계가 양호했던 아베 전 총리가 없어지면서 정권의 불안정 요인이 커졌다. 이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의 역할이 최근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가 전 총리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 보수 야당 일본유신회 간의 유일한 '파이프'였지만 기시다 정권에선 비주류가 됐다.

기시다 총리가 앞으로 내각개조(개각)에서 스가 전 총리를 어떻게 처우할 것인지 주목된다. 기시다 정권 내에선 총리 재임 시절 디지털청 설치나 휴대전화 요금 인하의 실적을 낸 스가 전 총리를 부총리 등 요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기시다 본인도 "전후 역대급 난국을 헤쳐가기 위해선 '유사시'의 정권 운영이 요구된다"고 말한 만큼 정국을 하루빨리 안정화하는 게 관건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로이터=뉴스1

또 기시다 총리는 미뤄온 현안(懸案)들과도 부딪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올 연말까지 '경제 재정 운영 기본방침'을 정해 '5년 내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에 필요한 장비·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어려운 재정 사정 속에서 기존 예산의 개혁, 국채 발행, 심지어 증세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제 재정정책에선 '아베노믹스'(아베 전 총리의 경제정책)를 계승하면서 기시다 총리의 핵심 정책 '새로운 자본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받은 경제를 '재생'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내 여론을 보면 물가 상승에 따른 불만이 커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얼마나 이른 시기 내에 성과를 낼 것인가에 일본 국민의 시선이 몰리고 있다. 올여름 전력 수요 급증에 대한 공급 불안은 심각한 상황이다. 겨울 추위가 심하면 대규모 정전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에 들어갈지에 대한 판단도 곧 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동북아시아에서도 '대만 유사(有事) 상황'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며, 중국·북한에 대한 외교 해법을 내놔야 한다.

과제는 산적해 있다.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서 내걸었던 '결단과 실행'은 자신의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조정형'의 기시다 총리가 결단을 할 수 있을지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다만 한일관계에선 기시다 총리의 '결단과 용기'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기시다 정권 하에서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으며, 자민당 내 강경파들이 한국에 대한 양보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내 대책이 우선될 때 일본과의 교섭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 현 상황은 양국의 자존심 대결 측면이 강하다. 양국이 교섭해 서로 양보하는 타협안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따라서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양국 간 분쟁이 발생시 해결 방안을 규정)에 따른 중재안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감정싸움은 외교적 교섭으로 푸는 게 최선이지만, 국제법에 따른 해결도 하나의 방법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숙한 한일관계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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