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흑해 곡물수출 합의 다음 날 우크라 수출항 미사일 공격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2. 7. 2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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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등 국제사회 비난 폭주, 합의 이행 여부 불투명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주 이즈마일 지구의 다뉴브강 구간에서 화물선 1척이 흑해로 연결되는 비스트레 하구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글로벌 식량난을 초래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중단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22일 유엔·튀르키예(터키)·러시아·우크라이나가 체결한 ‘흑해 곡물 수출 재개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가 서명 이튿날인 2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핵심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 항구를 미사일로 공격, 항만 시설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우크라이나 남부 작전사령부는 이날 “러시아군이 오데사 항구를 겨냥해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4발을 발사, 이 중 2발이 항만 시설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오데사 항구에서 총 6번의 폭발이 이어졌고,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가 긴급 투입됐다. 우크라이나군은 “미사일 2발은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요격됐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와 사상자 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데사 상공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교전을 벌였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의 최대 수출항으로, 러시아가 곡물 운송선의 안전 운항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3개 항구(오데사·피브데니·초르노모르스크) 중 하나다. 합의 바로 다음 날 이곳에 러시아의 미사일이 날아들자 당장 ‘합의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로이터와 AFP통신은 “23일 이스탄불에서 시작하기로 했던 4자 간 ‘공동조정센터’ 설립부터 제대로 될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이 센터는 곡물 운송 선박의 안전 운항과 원활한 입출항을 관리·감독하고, 무기 밀반입 여부를 점검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실무 기구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합의를 위해 기울인 국제적 노력에 푸틴 대통령이 침을 뱉었다”고 비난했다. 또 “약속을 깬 러시아는 전 세계 식량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가 4자 합의를 지키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다”며 “러시아가 어떤 말과 약속을 하든, 실행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도 비난에 동참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는 “국제법과 국가 간 약속에 대한 러시아의 완전한 무시”라고 지적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다는 증거”라며 “러시아를 빼고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번 공습을 규탄한다”고 했다. 이번 합의의 중재에 나섰던 훌루시 아카르 튀르키예 국방장관은 “대단히 염려스러운 사건”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뒤늦게 자국 소행임을 인정했다. 24일 마리아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 글에서 “러시아군이 미사일로 오데사항의 우크라이나 경비정 등 군사 시설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는 “오데사항 공격은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날 전략 폭격기를 동원, 우크라이나 중부 키로보그라드주의 군용 비행장과 철도 시설 등에 미사일 13발을 퍼붓기도 했다. 이 공격으로 경비 요원과 군인 등 3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했다. 전력 시설이 파괴돼 일부 지역의 전기도 끊겼다.

휴전 협상을 둘러싼 기 싸움도 이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러시아 점령지를 되찾지 못한 채 휴전하면, 전쟁이 오히려 장기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2~3년 쉬면서 군을 재정비하고 보충한 뒤 또 공격할 것”이라며 “지금 휴전을 하면 이런 악순환이 100% 반복된다”고 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등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저항을 중단하고 평화 협상에 나서라”고 종용하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는 “미국이 지원한 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이 침략군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며 “(서방 지원에 힘입어) 점령지를 빨리 되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이라고도 강조했다. 미국 국방부는 22일 “우크라이나에 HIMARS 4기와 ‘피닉스 고스트’ 전술 드론 최대 580대, 지휘 차량 4대, 150㎜ 포탄 3만6000발 등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전투기를 제공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러시아는 원유 상한제에 참여하는 국가에 원유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요 7국(G7)은 러시아가 인도와 중국, 동남아 등에 계속 원유를 수출해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 원유를 일정 가격(생산 원가) 이하에만 구입하기로 하는 ‘가격 상한제’ 추진에 지난달 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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