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도체 인재' 외치는 동안 설 자리 사라지는 인문·예술학과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두고 인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 기초학문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의 존재 이유를 “과학기술 인재 공급”으로 규정한 정부 기조에 따라 지역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비인기학과의 폐지 및 통폐합이 한층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동국대 서울캠퍼스 철학과의 ‘교원 임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동국대 철학과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마지막 남은 전임교수가 퇴임한다. 내년이면 3년 이하 단위로 계약을 맺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1명만 남는데, 아직까지 전임교수 충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철학과 학생회 측은 지난달 낸 입장문에서 “철학과 학생들은 동국의 이름으로 학습권을 보장받길 원한다”며 “자신이 사랑하는 학문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경시되는 모습에 마음이 아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적었다. 철학과 학생회와 학교 측은 이 문제를 두고 다음달 18일 면담한다.
조승우 동국대 철학과 학생회장은 24일 통화에서 “인문계 학부생으로서 교원 임용, 신입생 모집 등 전반에서 인문학에 대한 학교 측의 지원이 이공계 학과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철학과가 당면한 문제는 대다수의 인문학과가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라고 말했다.
동국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소재 대학에서는 인문·예술 학과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상태다. 지난해 신입생 모집난을 겪은 영남대는 전체 58개 학과 중 음악과, 국어국문학과, 역사학과 등 7개 학과의 정원을 줄였고, 대구대는 유럽문화학과와 스마트시스템공학과(계약학과) 모집을 중지하고 한국어문학부(한국어교육전공) 등 21개 모집 단위를 10개로 통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광대는 지난 3월 철학과 폐지를 결정했고, 경남대 철학과는 2014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고 있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반도체 분야 인재 양성을 비롯한 소위 ‘돈 되는’ 학과 양성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교육부와 관계 부처는 지난 19일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인문·예술 학과의 입지가 더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과 함께 대학별 재정난 해소와 인문학에 대한 고려도 정책에 담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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