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회의는 '로맨스' 총경회의는 '불륜'이라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평검사회의는 전체 의견
경찰서장회의는 치안책임 지역 이탈"
'감찰 항의' 전국팀장회의 개최 예고
"장관·대통령만 바라보는 청장 안돼"
윤희근 청장 후보자 사퇴 촉구도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 파장이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윤석열 정부의 돌발악재로 떠올랐다. ‘조기 진압’을 위해 대통령실까지 나서 징계를 독려하기 시작했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나도 징계하라”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등 반발 수위는 오히려 커지는 모양새다. 오는 30일 “징계 탄압”에 항의하는 전국 현장팀장(경감·경위)회의 개최도 새로 예고됐다.
경찰 지휘부의 갑작스러운 징계 착수와 여권의 경찰 때리기는 일선 경찰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경찰서장들의 회의 참석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 지휘부는 지난 21일 하위직 경찰 등이 중심인 경찰직장협의회(직협) 간담회를 계기로 경찰국 논란을 일단락한다는 계획이었다. 다음달 2일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이 신설되면 제풀에 사그라들 것으로 내다봤는데, 뜻밖에도 14만 일선 경찰조직을 관할하는 경찰서장들을 통해 되살아나면서 대규모 감찰·징계 카드를 꺼내들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참석한 총경급 경찰 간부는 경찰 안팎의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였다. ‘경찰의 꽃’이라는 전체 총경 650여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57명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윤석열 정부가 경찰개혁 핵심 과제로 내놓은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고 나섰다. 인사·진급에 민감한 경찰조직에서 경찰 고위직으로 가는 출발점인 총경급들의 집단행동이 이 정도 규모로 결집할 것을 예상한 이들은 경찰 안에서도 많지 않았다.
경찰서장들의 반발은 지난 18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경찰국 논란은 매듭 짓는 대신 보수 인상 등 처우 개선을 강조하는 발언을 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경찰의 정치적 독립과 복지를 맞바꾸자는 경찰수장 후보의 “모욕적 제안”(류상영 총경) 직후 급하게 만들어진 총경 단체대화방에 며칠 새 500명 가까운 이들이 몰렸다. 23일 총경 회의에 참석했던 ㄱ총경은 24일 “지휘부가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데, 이 무력감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중에 경찰서장 회의를 제안하면서 이에 공감한 많은 총경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선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ㄴ총경은 “현장 직원들이 경찰국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휘관인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경무관은 “현장 지휘관인 총경은 윗선의 말만 들어서는 현장 지휘에 영이 서지 않는 직급”이라고 했다.
경찰서장 회의 전 “한가하다.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경고성 발언을 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작 대규모 감찰·징계 사태로 사안이 번진 24일 입을 닫았다. 대신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나서 경찰서장들 때리기에 나섰다.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 당시 오히려 경찰을 향해 “국기문란”이라며 비판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경찰 불신’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가뜩이나 ‘검찰 정권’ 딱지가 붙은 윤석열 정부가 검사와 경찰의 집단행동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 역시 경찰 반발에 불을 질렀다. 여권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검찰청법 개정에 반발해 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 법무부 장관을 싸잡아 비난했던 검사들의 릴레이 집단행동을 부추긴 바 있다. 평일 이틀에 걸쳐 전국평검사회의가 열리기도 했고, 장관 직속 법무부 검찰국 검사들까지 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평검사들은 소속청 평검사들의 의견을 받아 모아서 회의한 것이다. 치안 책임자들이 지역을 이탈해 회의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평검사보다 책임 범위가 훨씬 넓은 경찰서장 회의를 깎아내렸다. 이에 류 총경은 “휴일에 관외여행 신고 등 법적 절차를 지켜서 참석했다. 문제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수도권의 한 총경조차 “검사들은 수차례 회의를 해도 단 한번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경찰 내부망에는 “나도 대기발령하라”며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고, 경감·경위급 회의가 새롭게 예고됐다. 경찰대학 소속 한 총경은 “경찰의 중립성·독립성 확보를 위해 회의에 참석한 것을 신고한다. 그러니 명단 파악할 필요 없다”며 ‘자진신고’를 했다. 경남청 소속 한 경찰관은 윤 후보자를 향해 “국민과 조직원들을 외면한 채 장관과 대통령만 바라보는 청장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경찰청의 한 총경은 “고속 승진한 윤 후보자로서는 윗선의 압력에 버티는 힘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경찰 내부 상처가 깊어지게 됐다”고 했다. 김성종(경찰대 14기) 서울 광진경찰서 경감은 “자신을 버려가며 올바른 행동을 하는 훌륭한 지휘관들을 잃게 되면, 우리는 앞으로 자신의 이익에 눈먼 충견 지휘관들 밑에서 국민을 탄압하는 ‘견찰’로 양성될 것이다”라는 글을 올리며 30일 경찰인재개발원에서 경위·경감급이 주축인 전국 현장팀장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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