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재탄생한 방의걸 화백 작품과 몬드리안 프로젝트의 공통점보니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서 비슷한 사진이 연이어 올라와 무언가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해시태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단어는 디스트릭트.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2020년 삼성동 코엑스 전광판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WAVE’와 2021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선보인 퍼블릭 아트 ‘Waterfall-NYC’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디지털 디자인 전문 기업이죠. 디올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도 협업을 해왔기에 디스트릭트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상당했습니다.
제주 아르떼 뮤지엄을 뒤덮은 규모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했지만, 색채에 생명력을 불어넣던 기존 디스트릭트 작품과는 다소 결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흑과 백의 극단 사이에서 흑색의 먹이 켜켜이 쌓인 듯 다양한 스펙트럼의 회색을 그려내는 데, 고요함 속에서 절제된 절규가 느껴졌달까요. 여백은 빛이 되고, 생각의 확장을 일으킵니다. 가로 약 50m, 세로 7m 크기의 거대한 스크린이 내 뿜는 먹색의 향연! 직접 가서 본 것이 아니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는데도 힘있는 붓질이 화면 밖으로 걸어나오는 듯 했습니다.
디스트릭트가 구현한 건 한국 수묵의 거장인 목정 방의걸 화백 작품. 지난 6월 22일 공개된 ‘시간을 담은 빛, 방의걸’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디스트릭트가 처음으로 협업하는 우리 작가입니다. 올해로 84세인 작가는 청년 시절 서양화전공으로 홍익대에 입학해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다, 워낙 여유가 없던 시절 물감구입이 어려워 동양화로 전공을 바꾸며 먹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60년 넘게 먹을 탐구하며 오랜 세월 치열하게 혼자만의 작업으로 직관과 본질의 세계에 몰입해 왔죠. 인상적인 장면을 재구성해 그리는 터라 구상과 추상의 틀을 벗어난 독창적인 필법으로 구축합니다.
때로는 명상하는 듯 때로는 격정적인 듯, 평화로우면서도 능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화폭은 집요한 사유(思惟)가 만들어내는 아우라로 보는 이를 겸손하게 합니다. ‘수묵으로 그린 서정시’라는 표현대로 농담과 강약으로 질감을 달리한 그의 선과 면, 그리고 여백은 한국의 서정적인 풍광을 담아내며 정신적 치유제 역할을 합니다. “긴 세월 이 길을 걸어오면서 좌절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여기에 이르렀다”는 작가의 말대로 방 화백의 작품 속엔 숭고한 인간미가 녹아있었죠.
수 많은 작가 중 수묵 화가와 손잡은 디스트릭트의 선택이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먹색의 깊이로 관람자의 심연(深淵)을 파고드는 작가의 예술혼을 디지털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전통적 기법을 이용해 현대적 해석으로 현재성을 내포한 작품을 되짚어보니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가로 2미터가 넘는 대표작인 ‘여름날에..’의 경우 실제 비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줍니다. “한평생 수묵의 맛에 빠져서 울고웃다 보니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나의 그림은 축복처럼 내 곁을 지켜준 자연과 인생의 경험을 심상의 언어로 이야기한 것이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예술의 무한한 길목에서 만난 어느 화가의 작은 삶의 여정으로 봐주면 좋겠다.”
이번 협업을 대한 방의걸 화백의 소회는 인간의 위대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번 ‘더부티크’ 3면에 소개되는 스위스 럭셔리 브랜드 라프레리의 프로젝트 역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경의를 나타냅니다. 스위스 바이엘러 재단과 손잡고 선보인 ‘피에트 몬드리안 보존 프로젝트’는 천재 화가의 작업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고 후대에 미학을 전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왜 인간다운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다음 뉴스레터 ‘최보윤의 부티크’에서는 신문에 담지 못한 몬드리안 프로젝트의 더 자세한 과정과, 또 하나의 ‘인간 승리’급 신드롬을 일으키는 주인공이죠. 스스로를 낮추며 꾸준한 배움으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로 거듭난 박은빈의 이야기를 배달합니다. 인터넷 주소창에 https://page.stibee .com/subscriptions/177352을 넣으면 뉴스레터 구독 창이 열립니다. 거기에 ‘이메일 주소’와 ‘존함’을 적고 ‘구독하기’를 누르시면 그날부터 해당 이메일로 레터가 날아갑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파주 산후조리원서 불…신생아·산모 수십명 대피 “인명피해 없어”
- 김여정 “핵무력 강화 노선변경 없다”…국제사회 규탄에 반발
- 엉터리 장애인 주차증 사용한 여성, 벌금형 선고
- 로제 ‘아파트’ 영국 싱글차트서 2위
- 제주 덮친 가을 폭우…11월 최다 강수량 경신
- 서울 강북구 단독주택 지하서 화재…60대 주민 사망
- 기름값 3주 연속 상승…휘발유 가격 다시 1600원대 진입
- 金 한 돈에 52만원... 6년 전 6억이던 ‘APT골드바’의 현재 가격은?
- [더 한장] 핼러윈에 악마로 분장한 강아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면?
- [Minute to Read] China detains 1st S. Korean national under revised anti-espionage 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