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도 주판알 튕기는데.. 韓은 실리보다 명분에만 집착 [ESG 글로벌 공시 도입 추진]

김준영 2022. 7. 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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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IFRS 최종안 공표 앞두고 논란
산업계 목소리 막는 정부
ISSB서 29일까지 자유로운 의견 수렴
금융위 "개별기업 의견 모아 제출" 자처
재계 "규제권 가진 당국 눈치 볼 수밖에"
실제로 의견 전달 기업·단체 거의 없어
법률 체계도 무시한 도입
금융위, 회계기준원 통해 절차 진행해
회계감사가 주 업무.. ESG 확장은 월권
외부감사법 개정 먼저 이뤄져야 가능
ISSB에 20만달러 대납도 위법 소지
선진국도 버거운 IFRS
日, 의무적용 않고 4가지 선택지 제시
美도 상장기업엔 자국 기준 적용 요구
韓, 강력한 표준 도입 후 제재 나설 공산
전문가 "성급한 수용보다 대안 찾아야"
한국 정부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글로벌 공시기준을 전면 도입할 준비를 서두르는 데 반해, 유럽 국가를 제외한 세계 각국은 주판알을 튕기며 자신들의 유불리를 따지는 데 분주하다.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마저 국제표준을 전면 도입하지 않는 것은 자국 산업 보호 등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다. 중국과 인도 등이 파리기후협약 등 글로벌 기후체제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한 것도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의 측면이 컸다. 심지어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시 ‘중국 같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파리협약을 탈퇴(조 바이든 정부 들어 복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과거 ‘회계 주권’에 이어 이제 ‘ESG 주권’까지 포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위, 산업계 별도 의견표명 막았나

2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오는 29일까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국제회계기준(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금융위를 제외하면 ISSB에 의견을 전달한 기업이나 단체는 거의 없다.

금융위는 지난 3월 ISSB가 공개한 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의 공개 초안 번역본을 지난 5월 국내에 배포했다. 그러면서 공개 초안에 대해 한국 측의 공식의견을 ISSB에 제출하기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거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ISSB에 위원을 배출하는 등 국제표준을 선제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을 적극 표명하고 있다.

문제는 ISSB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발표했음에도 금융당국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공지한 부분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형식적으로 IFRS재단이 공개적으로 의견 수렴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국가별로 1명만 내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굳이 중간에서 국내를 대표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각종 인허가권뿐 아니라 공시와 관련한 규제 등 기업에 적용할 다양한 규제 칼날로 무장한 금융당국이 자신을 통해 의견을 제출하라는데 그 어떤 경제주체가 독립적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법체계도 무시한 국제표준 도입

금융위가 한국회계기준원을 통해 이번 절차를 진행하는 점에 대한 법적 문제도 지적된다. 회계기준원은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에 근거해 국내 회계처리 기준에 대한 제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금융위는 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의 번역본 공개 및 공개 의견 수렴 등 관련 절차들을 회계기준원을 통해 진행 중이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의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회계처리나 회계감사에 대한 업무를 하도록 법적으로 규정된 회계기준원이 환경이나 사회적 책임 등이 추가된 지속가능성 기준에 대한 업무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회계기준원이 진행한 용역연구에서도 이와 관련한 외부감사법의 정합성 문제가 지적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감사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지속가능성 공시를 자본시장법에 반영할 경우 회계기준원의 설립 근거와 불일치하게 되는 만큼 자본시장법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재계도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며 국내 현실에 맞는 단계적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 왔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상황에도 금융당국은 글로벌 표준이라는 강력한 기준을 제재기준으로 삼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ISSB에서 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시점에 국제표준에 대한 적극적인 도입 의지를 알리기 위해 ISSB 이사 참여국으로서 2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금액도 정부 대신 회계기준원이 납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내부 반발이 나오고 관련 용역연구까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회계기준원을 통해 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을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IFRS의 기준에) 동의한다” “ISSB의 기준이 분명하다, 명확하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다. 기업의 부담 증가 및 관련 제도의 필요성이 일부 언급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국내에 적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내 산업현장의 우려를 무시한 채 강력한 국제표준이 너무 빠른 시기에 도입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지속가능성 공시 확대의 취지와 관련해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ESG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에 따를 뿐”이라며 “(공시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할 뿐) 공시 확대의 취지 논의와 관련한 소관부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선진국조차 버거워하는 국제표준

우리나라가 2011년 전면 도입한 IFRS는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논의된 만큼, 선진국 중에서도 유럽 이외의 국가들은 아직도 이를 버거워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부터 IFRS의 제정에 참여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이를 의무 적용하고 있지 않다. 대신 IFRS를 비롯해 자국의 회계기준(J GAAP)과 미국의 회계기준(US GAAP)은 물론, 일본에 맞게 수정한 IFRS(endorsed IFRSs) 등 4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뒤 기업별로 유리한 쪽을 선택하도록 했다.

대외적으로는 IFRS 도입을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국의 사정에 맞게 수정·보완해 적용하는 노력은 일본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확인된다. IFRS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조차 이를 그대로 도입하지 않고 미국 내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자국 기준인 US GAAP의 적용을 요구하는 한편, IFRS에 맞게 통합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신 외국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IFRS를 허용했다. 중국 또한 대외적으로는 IFRS 도입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자국의 형편에 맞게 수정 도입했다.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Foundation)과 합병하는 가치보고재단(Value Reporting Foundation·VRF)의 홈페이지.
상장사의 공시와 관련한 각국의 정책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미국처럼 국내 기준에 근거해 규제당국이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의 규모 등에 따라 스코프 1∼3으로 세분화해 상장사의 온실가스 배출량 및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 공시를 의무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경우는 IFRS 및 자국 기준을 마련하기는 하지만 의무화하거나 제재하지 않고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쪽이다. 유럽 국가 등 많은 나라에서 IFRS 및 각종 기준을 채택하기는 하지만 기업에 선택권을 부여하고 이에 맞지 않게 공시할 경우에는 제재하는 대신 수정·보완을 요구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에도 그러했듯 가장 강력한 국제표준을 도입해 금융당국의 규제기준으로 삼은 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초기 준비 단계부터 ISSB 체제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속내를 적극 표명하는 것은 협상의 레버리지를 잃는 처사”라며 “성급한 국제표준의 수용을 선언하기에 앞서 다양한 협상 대안을 찾아내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전략들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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