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였다고 징계'..검찰정권의 짙어지는 경찰 군기잡기
검찰 집단행동은 부추기던 여권 "부적절" 난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부적절한 행위" 비판
경찰청이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주도한 이들에 대한 대기발령 및 무더기 감찰에 착수했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회의를 열자 참석자 집단 징계를 시사한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미 예고됐던 회의에 대한 갑작스런 강경 대응 배후에 윤석열 대통령 측근 후배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있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경찰국 출범을 앞두고 본보기성으로 초유의 경찰서장 집단 감찰을 통해 군기잡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과 대통령실까지 잇달아 나서며 엄중 대처를 요구하자 ‘검찰 정권’의 경찰 길들이기가 노골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검찰청법 개정 등에 반발하며 한달 가까이 릴레이 집단행동에 나섰던 검사들에 대해서는 ‘검찰 독립성 차원’이라며 부추겼던 여권이, ‘경찰 독립성 침해’에 반발하는 단 한차례 경찰서장 회의에 대해서는 “복무 규정 위반”이라며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지난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열린 직후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경찰대 4기) 울산 중부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고, 회의에 참석한 총경 56명 감찰을 위한 명단 확보에 나섰다.
경찰 내부에서는 갑작스런 문책·징계성 인사에 당혹과 반발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지난 18일 회의 제안이 이뤄지고, 20일 회의 장소와 시간까지 공개된 뒤 경찰 지휘부는 회의 개최에 부정적 뜻을 나타내면서도 징계 등 강경 대응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윤희근 후보자는 25일 류삼영 총경으로부터 회의 결과를 보고받겠다는 일정까지 잡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23일 오후 2시부터 전체 총경(650여명) 가운데 189명(현장 참석 56명, 온라인 참석 133명)이 참석해 다음달 2일 출범 예정인 경찰국 신설 등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회의장 앞에는 총경 계급장을 상징하는 무궁화 화분 357개가 놓였다. 회의 취지에 찬성하는 총경들이 자신의 이름을 달아 보낸 것들이다. 전체 총경 과반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회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오후 4시께 윤 후보자는 돌연 참석자들에게 ‘해산 지시 명령’을 내린 데 이어, 회의 종료 30분 전인 오후 5시30분께 “참석자를 엄정 조치하겠다”며 징계 방침을 밝혔다. 해산 지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이 국가공무원법상 복종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저녁 7시30분께에는 류 총경에 대한 대기발령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윤 후보자가 행안부 장관 등 윗선 지시에 굴복해 인사 조처에 나섰다며 의심하는 분위기다. 총경 회의에 참석한 수도권 지역의 한 총경은 “경찰 제도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제도에 대해서 한번도 회의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 불법 시위대도 아닌 경찰서장들 회의를 해산하지 않았다며 마치 범죄자 대하듯 감찰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경찰청의 한 총경도 “고속 승진한 윤 후보자로서는 윗선의 압력에 버티는 힘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경찰 내부 상처가 깊어지게 됐다”고 했다. 류 총경은 <한겨레>에 “이게 바로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을 통해 인사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증거”라고 했다.
원 구성 협상 끝에 경찰청 및 경찰국 업무를 관할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 위원장직을 가져간 국민의힘은 이날 경찰서장 회의를 난타했다.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복무 규정 위반에 대한 경찰 조직 전반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현안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던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날 갑자기 용산 대통령실 기자실을 찾아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하며 경찰 군기잡기에 동참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찰 길들이기 공안통치”라며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를 검토하는 한편, 윤희근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따지겠다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평검사회의는 되고 왜 경찰서장 회의는 안 되느냐. 이게 징계 사안이냐”며 검찰과 경찰 집단행위에 대한 여권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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