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총경회의', 경찰 통제 차질 빚을라 '조기 차단' 나선 정부
행정안전부가 경찰국 신설 강행을 확정하고 경찰 지휘부가 이를 수용할 뜻을 밝혀 한고비 넘는가 했던 ‘행안부의 경찰 통제’ 논란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경찰 하급 직원들이 주도한 종전 반대 행동과 달리 이번에는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급 간부들이 집단행동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크다. 경찰 지휘부가 집단행동에 나선 총경들에 대해 대기발령·감찰 등 강경 대응에 나서고, 일선 경찰들은 대통령실·행안부의 ‘윗선 개입’ 의혹까지 제기하며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정부와 경찰 일선 간 갈등 수위가 급속히 치솟고 있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지난 23일 열린 직접적인 계기는 18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소집한 전국 경찰 화상회의였다. 행안부가 내놓은 경찰제도개선방안의 주요 내용과 조치 사항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회의였다. 윤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경찰청의 노력으로 경찰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내부 달래기에 나섰다.
총경들은 이 회의를 두고 “발언권 하나 없는 일방적 설명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류삼영 총경(전 울산중부경찰서장)은 회의 직후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찰서장 회의를 제안했다. 600여명의 총경 중 500여명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졌고, 이 대화방에서 회의의 윤곽을 잡았다.
서울 관내 한 경찰서장은 24일 “승진과 전보 인사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해서 처음엔 다들 주저했다”며 “결국 지휘부의 일방적 소통에 더해 일선 경찰들의 반발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고 했다. 서장회의에 참석한 지역 경찰서장은 “(경찰국 신설로)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와중에 잠잠한 지휘부를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며 “그런 중에 회의가 열려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총경급 경찰관들의 유례없는 집단행동에 지휘부가 속전속결식 인사 조처로 진압에 나선 것이 도리어 사태를 키웠다. 특히 회의를 주도한 류 총경이 별다른 진상조사 없이 대기발령 조처되자 경찰 내부 여론이 급속히 악화했다. 현장에 참석한 총경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찰도 진행 중이다. 경찰청은 지휘부의 해산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국가공무원법상 복종 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 ‘복종의 의무’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류삼영 총경은 “휴일에 다들 관내 출입 허락을 맡고 법적 절차를 지켜서 왔다”며 “경찰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휴일 연가를 쓰고 경찰기관에 모인 것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에선 강경 대응 배경에 대통령실이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희근 후보자는 22일 류 총경에게 25일 오찬을 제안하며 “회의 결과를 들려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경찰 지휘부가 돌연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배경에 ‘윗선’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장관은 전국 경찰서장 회의 전날인 22일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경고성 발언을 했었다.
경찰청이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시작된 지 2시간 뒤에 돌연 ‘해산’을 지시한 것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징계를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청은 그로부터 1시간35분 뒤인 오후 5시35분 “이번 총경급 회의와 관련해 국민적 우려를 고려해 모임 자제를 촉구하고 해산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강행한 점에 대해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복무규정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한 후 참석자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류 총경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현장에 참석한 총경들의 감찰에 착수했다.
결국 다음달 2일 행안부 경찰국 설치를 앞두고 총경들의 반발을 방치하면 ‘경찰 통제’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한 여권 핵심부가 ‘조기 진압’을 결정했고, 그 연장선에서 경찰 수뇌부가 강경 대응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찰의 집단행동이 경감·경위 등 중간·초급 간부들도 확대될 조짐도 보인다. 서울 광진경찰서 김성종 경감은 이날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30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경감, 경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현장 팀장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김 경감은 “우리 지휘관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베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라며 “대기발령, 감찰조사도 자청하겠다”고 말했다.
윤희근 후보자의 리더십은 다시 시험대에 섰다. 내달 초로 예정된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곧 대기발령 조치가 이뤄진 배경에 관해 설명이 있을 것”이라며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믿고 기다려달라는 메시지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하던 행안부의 ‘경찰 통제’도 암초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는 정부조직법상 장관 사무에 ‘치안’이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통상 40일인 입법예고 기간을 4일로 대폭 단축해 경찰국 설치안을 강행 중이다.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과 경찰청장 지휘규칙 제정을 위한 대통령령과 행안부령은 지난 21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8월2일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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