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엔 클래식이 흐르고 명화가 숨어있다

성수영 2022. 7. 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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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갤러리 이은채 초대전 '몽상의 집'
그림 속 그림..'이중그림 '작가
아늑한 실내공간 그린 뒤 그 안에
시벨리우스 등 거장 얼굴이나
'박연폭포' 등 명화 그려넣어
정선 '박연폭포' 작품으로 인기
작품 본 원작 소장자 극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림 매입
"이중·삼중 그림에 도전할 것"
하루 12시간 그려도 완성에 보름
방 안 풍경과 조명에도 공들여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25일부터 열리는 ‘몽상의 집’ 전시회에 앞서 이은채 작가가 ‘한낮에 사라져버린 추억’이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걸려 있는 실내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허문찬 기자


한참을 지켜봤는데, 다들 그랬다. 지난 2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를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핀란드의 빛’ 앞에 멈춰 섰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림 속 방문 밖으로 보이는 핀란드의 만년설이 서울의 7월 무더위를 식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중그림’(그림 속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이은채 작가가 ‘몽상의 집(The House of Reverie)’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 작가는 아늑한 조명이 비치는 실내공간을 그린 뒤 그 속에 각 분야 거장들의 모습이나 작품 등을 그려넣는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그에 대해 “이중그림과 빛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상상력을 깊게 탐구하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핀란드의 빛, 2019.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 25점 중 22점은 동서양의 명화나 클래식·재즈 거장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핀란드의 빛’에서 벽에 걸린 인물사진은 핀란드의 작곡 거장 장 시벨리우스다. 작품 ‘한낮에 사라져버린 추억’에는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등장하고, ‘Stone Flower’에는 ‘보사노바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나온다. 이 작가는 풍경화 세 점에도 문화적 코드를 담았다. 예컨대 ‘Going home’에는 드보르자크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음악인 신세계 교향곡 2악장에 어울리는 풍경을 그렸다.

그가 자신의 그림 속에 그려놓은 명화를 단순한 모작 수준일 것으로 지레짐작하면 오산이다. 이 작가는 “2015년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를 작품 속에 그렸는데, 작품을 본 원작 소장자가 ‘원작 못지않다’고 말한 게 소문이 났다”며 “그해 국립현대미술관이 박연폭포가 들어간 제 그림을 매입한 사실이 더해지면서 ‘박연폭포를 그려달라’는 주문이 쏟아졌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박연폭포가 들어간 작품이 두 점 걸렸다.

실존 인물이나 잘 알려진 명화를 작품에 그려넣는 작가는 흔치 않다. 그 역시 처음부터 이중그림 화가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이전에는 줄곧 촛불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촛불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을 접하고 그 아늑한 분위기와 품격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리는 실내 공간에도 꼭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에 그려넣어 봤는데 마음에 쏙 들었어요. 소설의 ‘옴니버스식 구성’ 같은 거죠. 그 이후 다양한 고급 문화의 코드를 제 작품에 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가는 방 안 풍경과 조명을 그리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인다. 명화 등 중심 이미지의 매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다. 예컨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등장하는 ‘찬란한 창가’ 작품에서는 벽지와 가구를 차분한 노란색과 초록색조로 칠했다. 금색의 ‘키스’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색을 쓴 것이다.

작품은 사실적이다. 그림 속 사진을 보고 “진짜 사진을 ‘콜라주’한 것 아니냐”고 묻는 관람객도 많다고 한다. 이 작가는 “그만큼 그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하루 12시간씩 그리는 데도 10호짜리(가로 53㎝, 세로 41㎝)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보름이 걸린다”고 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 삼중, 사중 그림도 시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림 속 사진에 등장하는 액자에 또 다른 사진이나 명화가 나오는 식이다. 그림 크기가 작아지는 데다 작품과의 연관성도 감안해야 하는 만큼 이중그림보다 작업이 고될 수밖에 없다.

“가장 힘든 건 동양화예요. 유화 물감으로 먹의 느낌을 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도 명화를 그리며 거장들의 의도를 생각해보고 깊이 공부한 덕분에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느다란 아크릴붓으로 하루 종일 그리면 온몸이 뻐근하지만 제 그림을 보고 좋아할 관람객들을 생각하고 힘을 냅니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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