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곡물수출 합의 하루만에 오데사항 포격..'식량 무기화' 비난 쏟아져

방성훈 2022. 7. 2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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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로 오데사항 주요 기반 시설 타격하고
러 외무 이집트 등 아프리카 순방서 "식량난 논의"
우크라 "잉크도 안말라..푸틴, 터키 대통령 얼굴에 침뱉어"
美 "러, 식량 무기화..세계 식량 위기 심화 책임져야"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흑해 곡물 수출을 합의한 지 하루 만에 오데사항에 포격을 가했다. 동시에 마치 러시아가 주도해 아프리카 식량 위기를 해결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너지에 이어 식량까지 무기화하고 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오데사 항구의 모습. (사진=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 트위터)

러, 곡물 수출 합의 직후 항구에 미사일…아프리카선 “식량난 논의”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부 작전사령부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2발이 오데사의 주요 기반 시설을 타격했다. 다른 2발은 방공망에 격추됐다”고 밝혔다. 오데사 지역 하원의원인 올렉시 혼차렌코도 텔레그램에서 항구에서 거대한 연기 기둥이 피어오르는 동영상과 함께 “오데사 항구 주변에서 6번의 폭발이 일어났으며 항구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적었다.

사상자 및 구체적 피해 상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국제 곡물 트레이더들은 이번 공격으로 철도 차량 하역장과 곡물 적재 창고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일 공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과 기타 식량 수출을 위해 흑해 연안 봉쇄를 완화하기로 합의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뤄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날 유엔과 튀르키예(터키)의 중재 하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3개 항구에서 향후 몇 주 안에 곡물 수출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합의안에 서명했다.

국제사회는 전날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재개되면 세계 식량가격이 안정되고, 식량난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주요 항구들에는 러시아의 흑해 봉쇄에 가로막혀 수출하지 못한 밀, 옥수수 등의 곡물이 약 2500만톤이 쌓여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합의안에 따른 실무 작업을 개시하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합의 이행 여부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당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날 공동 조정센터 설립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또한 합의안에 따르면 곡물을 실은 우크라이나 선박은 흑해에 마련된 안전항로를 통과해 터키 북서부 보스포러스 해협을 거치게 되는데, 이날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선박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어떻게 해서든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가 어떤 약속을 하든지 지키지 않을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비난했다.

러시아는 오데사항 공격과 동시에 식량을 본격적으로 무기화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식량난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부터 닷새 일정으로 이집트, 에티오피아, 우간다, 콩고공화국 등 아프리카 4개국 순방에 나섰다.

4개국 모두 우크라이나 곡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이며, 이집트는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이기도 하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순방에 앞서 아프리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서방 제재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에 식량과 비료, 에너지 등을 공급하기 위한 의무를 계속해서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국제사회 “러, 식량 무기화…세계 식량 위기 심화 책임”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는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은 “러시아는 어제 합의하고 오늘 공격했다. 합의를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얼굴에 푸틴 대통령이 침을 뱉었다”고 비판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도 “잉크가 마를 시간도 없게 만든 악의적 도발”이라고 거들었다.

중재를 맡았던 유엔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규탄 성명을 내고 “모든 관계자가 우크라이나 곡물의 안전한 수송을 보장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식량난에 처한 전 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터키의 완전한 약속 이행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 러시아는 세계 식량 위기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 이번 공격은 유엔, 터키, 우크라이나가 세계 시장에 중요한 식량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약화시킨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도 “러시아가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다.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별도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터키 측에 자국과 무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부 장관은 이날 자신과 접촉한 러시아 당국자가 오데사 항구 공격에 대해 “우리와 무관하다. 이 사안을 매우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합의 직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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