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경 집단행동·심야 대기발령·감찰..확전 치닫는 경찰국 사태
"식물 경찰청장 시작점 될 수도..대화·타협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박규리 기자 =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경찰 지휘부와 일선 경찰관들의 갈등이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계기로 다시 폭발하고 있다.
지난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경찰국 신설에 강경하게 반대해온 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과 만나면서 수습되는 듯했던 갈등이 다시 불거지자 지휘부는 다음 달 초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출구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초유의 총경 집단행동에 대기발령·무더기 감찰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서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두고 법·절차적 하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후 2시부터 4시간가량 진행된 회의 현장에는 50여 명의 총경이 참석했으며 온라인으로도 140여 명이 함께했다. 회의장 앞에는 경찰관 350명이 보낸 무궁화 화분이 늘어섰다.
참석자들은 회의 후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며 논의 내용을 윤 후보자와 행안부에 전달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심야에 경찰청이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중부경찰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했다.
류 총경은 "25일에 오찬을 하자던 윤 후보자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겠느냐"면서 "(이번 대기발령은) 행안부 장관이 인사권을 가지면 안 되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작스러운 인사 조처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라는 취지다.
이 장관은 전국 경찰서장 회의 전날인 22일 경고성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협상 타결 전 공권력 행사가 검토되던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를 언급하며 "동료 경찰들이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기 일보 직전인데 지금 한가하게 그런 논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면서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내부망 등을 통해 "정권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 지휘부를 규탄한다"며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불길이 번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서면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찰 장악 시도가 사상 초유의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열리게 했다"며 전국 경찰서장 회의는 '정당한 항의'라고 평가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24일 간담회에서 "경찰서장 협의회를 만들고 경찰의 중립성을 논의하는 움직임에 전두환 정권 식의 경고와 직위해제로 대응한 것에 대단히 분노한다"며 "평검사회의는 되고 왜 경찰서장 회의는 안 되냐"고 직격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자기 치안 지역을 벗어난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경찰 소관 행정안전위원장을 맡은 이채익 의원은 페이스북에 "엄격한 계급사회인 경찰조직에서 지휘부의 해산 지시에 불복하고 모인 것은 복무규정 위반"이라고 썼다. 김기현 의원도 "문재인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하던 일부 정치경찰 지도부는 삭발과 하극상을 하기 전에 반성해야 한다"고 적었다.
"믿고 기다려달라"는 경찰 지휘부…금명간 입장 낼 듯
직협 반발을 겨우 수습하는 과정에 있었던 윤 후보자 등 경찰 지휘부는 다시 고심에 빠졌다.
주로 서장에 보임되는 총경은 '경찰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현장 일선에서 무게감이 있는 계급이라, 갈등이 장기화하면 경찰 조직 전체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윤 후보자가 25일 서면 기자간담회를 앞둔 가운데 경찰 지휘부의 공식 입장도 금명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왜 대기발령 조치가 이뤄졌는지 설명하고,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믿고 기다려달라는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단 후보자의 신분이 안정된 상태가 돼야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8월 첫째 주 정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찰청은 류 총경 인사 조처에 이어 전날 전국 경찰서장 회의 현장에 참석한 56명을 대상으로 감찰을 벌이고 있다.
지휘부의 해산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국가공무원법상 복종 의무 위반이라는 설명이다.
"국무회의서 안건 보류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면서 발 빠른 수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찰 인원이 약 13만 명이나 되고 입직경로도 다양하기 때문에 내부 갈등을 빠르게 치유하지 못하면 혼란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류 총경 대기발령 조치는 사실상 '식물 경찰청장'이 된 시작점으로 보인다"며 "전날 회의를 해산시킨 지시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직권남용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갈등을 해결할 방안은 국무회의에서 경찰국 신설을 포함한 경찰제도개선안을 보류하는 것"이라며 "일선 경찰들이 이 모든 걸 수긍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건 가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처럼 집단적 반발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도 "이번 대기발령 조치는 법적 체계에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득도 안 되는 강압적 조치로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경찰 조직원들로서는 굉장히 불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화와 타협이 제일 중요하다. 수십 년 이상 경찰 조직에 어떤 제도와 정책이 도입되고 운영됐는지를 봐왔는데, 의견 수렴 없이 상식을 벗어나는 정책이나 제도는 그 정권이 끝나면 생명력이 다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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