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수출 전격 합의해놓고..러, 우크라 항구에 미사일 공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식량위기를 극복할 한 줄기의 '불빛'으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 흑해 곡물수출 재개 합의 효력이 하루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군이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흑해의 핵심 항구인 오데사항에 떨어지면서다.
23일(이하 현지시간) CNN·워싱턴포스트(WP)·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흑해 항구 곡물 수출 재개 합의 하루 만인 이날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남부 오데사항을 강타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 남부 작전사령부는 이날 페이스북·텔레그램 등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러시아군이 오전 11시경 오데사항 인근 기반 시설에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며 "(러시아군 미사일) 4발 중 2발은 격추됐고, 나머지 2발은 떨어졌다. 인명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WP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경 오데사에는 공습경보가 울렸고, 도시 전체에 폭발음이 가득했다.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화물선 운항은 지난 2월 러시아군의 흑해·아조우해 항구 봉쇄로 약 5개월간 전면 중단됐었다. 해외로 가야 할 2000만톤(t) 이상의 우크라이나 곡물이 오데사 등 주요 항구 창고에 묶이면서 세계 각국에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밀·옥수수·쌀 등 주요 식료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전체 물가상승에도 영향을 줬다.
우크라이나·러시아·튀르키예(터키)·유엔 4자 대표단은 이를 해결하고자 '우크라이나 항구 곡출 수출 재개'를 주요 의제로 협상을 벌어왔고, 전날 곡물 수출 재개 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협정문에는 △우크라이나 항구 3곳(오데사항·피브데니항·초르노모르스크항) 개방 △튀르키예 이스탄불 합동조정센터(JCC) 설치 및 무역화물선 안전보장 △러시아산 곡물 및 비료 수출 허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번 합의로 흑해 항구의 곡물 수출 길이 열리면서 식량위기, 물가안정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날 합의문 서명식에서 "오늘(22일) 흑해에 등대(beacon)가 있다"며 곡물 수출 합의를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희망·가능성·안도의 등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습으로 단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봉착했고, 우크라이나와 유엔 측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합의 파기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올렉산드로 곤차렌코 우크라이나 하원의원은 "오데사에서 최소 6번의 폭발음이 들렸다"며 "러시아군은 한 손으로는 계약(합의)을 체결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세계 식량 안보를 계속해서 위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이번 공격은 러시아가 전날 맺은 (곡물 수출 재개) 합의에 대한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유엔·튀르키예·우크라이나가 세계 시장에 중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세계 식량 위기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협상에서 체결한 합의를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약속을 어긴' 러시아가 관여하지 않은 곡물 수출 재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제 파트너들이 긴급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자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트위터에 "러시아와의 거래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이것(합의 불이행)이 전부"라고 꼬집었고, 요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EU는 (러시아의) 이번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전했다.
반면 유엔과 함께 이번 곡물 수출 재개 협상에서 중재작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튀르키예는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훌루시 아카르 튀르키예 국방부 장관은 "곡물 수출 재개 관련 협정을 체결한 뒤 이런 일(미사일 공급)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매우 우려스럽고, 우리도 당황스럽다"면서도 "러시아로부터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며 러시아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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