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자료 '몰래 조회' 위헌에..검·경 '통지 시점 최대한 늦추기'
'즉시 통지 원칙-예외적 유예' 기준 삼아야
헌법재판소가 당사자에게 사후 통지조차 하지 않는 수사·정보기관의 통신자료 조회·수집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하면서 국회는 내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인권단체 등의 요구에도 검찰 등 수사기관 반발을 핑계삼았던 국회도 법 개정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사후 통지 절차 마련 등을 담은 11건(국민의힘 7건, 더불어민주당 4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민의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지난 대선 기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국민의힘과 소속 의원,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등이 연루된 고발사주 사건을 수사하며 관련자들의 통신자료를 다수 조회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불법 정치 사찰’을 주장하며 개정안을 앞다퉈 낸 만큼 거둬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소관 상임위원회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다. 국회에선 우선 통신자료 조회 사실을 당사자에게 언제 고지할지부터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발의된 법안들은 즉시 통보부터 10일 또는 30일 이내, 국가안전·수사방해·생명 등에 중대한 위험 우려 등이 있을 때 최대 3~6개월까지 사후 통지 유예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통지 시점을 담고 있다.
그동안 법무부(검찰)와 경찰, 국가정보원 등은 수사 초기 단계에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피의자·공범 등에게 알려질 경우 도주·증거인멸 등 수사에 어려움이 초래된다며 사후 통지에 반대해 왔다. 수사기관들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여전히 수사 밀행성 등을 고려해 사후 통지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간부는 2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수사 중 당사자에게 통신자료 조회 사실 통지를 하면 밀행성이 떨어져 수사에 상당한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수사 종료 뒤 통지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도 국회에 사후 통지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입법 의견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수사·정보 활동 종료 뒤 통지’를 기본값으로 입법이 될 경우 ‘조회 즉시 통지 원칙, 예외적으로 유예’라는 헌재 판단에 어긋나기 때문에 또 다시 위헌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앞서 헌재는 사후 통지와 수사 보안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수사·정보 활동이 모두 끝난 뒤에 통지하는 등 유예 기간을 두거나 △통신자료 조회 이유(수사 목적) 등을 고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를 둘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같은 유예·예외는 특별한 사유가 인정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해 500만건 이상씩 수집되는 통신자료 폐기와 관련한 절차도 마련 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선 수사기관 등이 확보한 통신자료를 어떻게 폐기하라는 규정이 없다. 수사기관 등은 자체적으로 자료 폐기 규정을 두고 있지만 불충분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종석 헌법재판관은 따로 의견을 내어 “아무런 절차적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수집된 정보의 보관과 처리를 수사기관 등에 일임하고 있어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 등에 남용될 수 있는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수사기관 직원이 개인정보를 민간에 파는 등 (정보 수집·보관의) 오남용 사례가 있는데, 수사기관이 자료 폐기를 알아서 한다는 건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적 통제와 더불어 수사기관 자체적으로 내부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자료 조회 논란으로 호된 비판을 받았던 공수처는 지난 4월부터 통신자료 조회 심사관을 두고 자체적으로 사전·사후 통제를 하고 있다. 서채완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는 “내부적으로 통신자료 수집 관련 적절성을 심사하는 위원회 등을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한 절차 개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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