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물적분할 이슈에 주가 급락
尹 공약했던 투자자 보호책 나올지 주목
(시사저널=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물적분할을 통해 주요 사업부를 분사하는 재계의 지배구조 개편 방식이 소액주주들의 강한 불만을 사고 있다. 물적분할로 신설된 자회사가 증시에 상장되면 기존 모회사 주주들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물적분할 요건 강화와 기존 주주들에 대한 신주인수권 부여 등을 언급하며 투자자 보호책을 공약한 바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반도체 파운드리업체 DB하이텍은 7월12일 15.7% 급락한 4만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16.94%까지 하락하며 52주 신저가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당시 코스피가 1%에 가까운 약세를 보였고 반도체 업종의 흐름이 좋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두드러진 낙폭이었다.
물적분할 이슈 불거질 때마다 투심 급랭
DB하이텍의 주가 급락 배경에는 사업부 분할 검토 이슈가 있다. 반도체 설계 사업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한다는 풍문이 투자자들 사이에 전해지면서 급락한 것이다. DB하이텍 측도 당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전문성 강화를 위해 파운드리와 설계를 분사하는 방안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을 고려 중이나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히며 분사설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설계 사업이 물적분할 방식으로 빠져나갈 경우 투자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물적분할은 모회사의 주요 사업부를 분리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신설된 회사의 주식 전부를 모회사가 소유해 지배권을 확보하는 분할제도다. 기존 모회사 주주가 신설 회사의 주식을 배분받는 인적분할과는 달리 물적분할은 기존 주주가 신설 회사 주식을 받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물적분할된 자회사가 상장되면 모회사 주주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물적분할 이슈에 주가가 급락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LG화학은 2020년 말 배터리 부문(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키로 하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신성장 동력인 배터리 부문이 분할돼 상장되면 투자 수요가 신설 회사로 몰려 상대적으로 모회사인 LG화학의 주가에 부정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이 가시화되면서 LG화학 주가가 하락한 바 있다.
최근에는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기업 넥스트칩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자 모회사인 앤씨앤의 주가가 22.02% 급락하기도 했다. 넥스트칩은 2019년 1월 앤씨앤의 오토모티브 사업부문이 물적분할돼 나온 회사다. 성장성이 높은 자회사가 상장되면서 상대적으로 모회사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물적분할 이슈로 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소액주주 보호책이 나올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정책을 뒷받침할 연구도 나온 상태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4월 열린 정책 세미나에서 "물적분할로 모자(母子) 회사가 동시 상장된 사례를 조사한 결과 모회사의 기업가치는 자회사 상장 이후 유의미하게 하락했다"며 "무분별한 동시 상장을 억제하는 조치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소액주주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물적분할 후 모자 회사 동시 상장과 관련해 투자자 보호책을 공약한 바 있다. 야당 내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가 나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안 3건을 연이어 발의했다. 투자자 보호책과 관련해선 다양한 정책이 거론된다. 우선 기업 규제 측면에서 공시 강화안이 제기되고 있다. 물적분할 진행 시 자회사 상장 계획과 기업 구조개편 계획, 주주 보호 방안 등을 공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로 나온 자회사가 상장될 경우 상장 심사를 강화해 주주 보호에 미흡할 때는 상장을 제한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투자자 보호 목소리에 尹 정부 응답할까
투자자 권리 강화 측면에서는 물적분할 반대 시 모회사나 최대주주에게 주식을 매수케 하는 주식매수청구권 부여안이 거론된다. 이는 상장사가 물적분할을 선택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이 소외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이 대거 행사될 경우, 상장사는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액주주 보호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기존 모회사 주주들에게 분할 회사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거나 현물 배당을 하는 안도 오르내리고 있다. 나아가 자회사가 상장될 경우 모회사 주주에게 일정 비율을 청약할 수 있게 하는 안도 나오는데, 자회사 상장을 통한 더블카운팅(합산 시가총액에서 두 기업의 가치가 중복으로 계산되는 현상)이 문제가 되는 만큼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적으로 청약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적분할 논란에서 핵심은 물적분할 그 자체가 아니라 물적분할된 자회사의 상장에 있다. 이에 물적분할 자체를 규제하기보다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자회사 상장 시 기존 모회사 주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적합하다"고 밝혔다.
다만 신주인수권 부여와 IPO(기업공개) 청약 우대는 기존 주주들에게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IPO 청약 우대와 관련해선 가격 발견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장하는 회사의 신주 상당량을 모회사 주주에게 배정하면 기관 물량 감소로 수요예측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투자자 보호책이 상장사 입장에선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입안에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겠지만 기업의 자율적인 활동과 여기서 파생되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면 지나친 규제는 독이 될 수 있다"며 "자본시장과 기업 지배구조, 활발한 신사업 추진 등에서 중요한 이슈이니만큼 좀 더 세밀한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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