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의 눈물로 만드는 '리튬'을 아시나요?

이정훈 2022. 7. 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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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전세계 리튬 매장량 절반 '아타카마고원'에
칠레·아르헨·볼리비아 등 3개국 접경 지역
소금호수서 추출·증발 방식으로 리튬 채굴
용수 부족으로 농업은 물론 자연환경 파괴
원주민 "채굴로 작물은 썩고 농지는 메말라"
미국 비영리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NRDC)가 펴낸 보고서. 출처: NRDC 누리집

전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아타카마고원에서 채굴로 인한 원주민의 피해가 상당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기차나 휴대전화 등에 쓰이는 배터리 생산을 위해 국내 삼성에스디아이(SDI), 엘지(LG)에너지솔루션은 물론 파나소닉, 테슬라, 베엠베(BMW) 등이 이 지역 리튬을 수입하고 있다.

24일 미국 비영리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NRDC)가 최근 펴낸 ‘고갈, 남미의 리튬 광산의 폐해’ 보고서를 보면, 전기차 수요 확대에 따른 리튬 생산 증가로 원주민들은 식수난과 자연환경 파괴에 따른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막대한 이익도 제대로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대안인 전기차 보급 확대가 원주민에겐 생존권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영기업 또는 글로벌 기업이 리튬 채굴 과정에서 제대로 원주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며 “원주민들은 채굴 과정으로부터 얻은 이익은 거의 없고 식수나 환경에서 악영향만 받았다”고 밝혔다. 더욱이 안데스 고원의 일부인 이 지역에 서식하는 홍학이나 여우, 도마뱀 등 희귀 생물들도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칠레 아타카마 소금호수 인근 농부의 증언. 출처: NRDC 보고서

칠레가 세계 최대 리튬 생산 국가인 만큼 원주민의 피해도 가장 컸다. 칠레는 피노체트 독재 시절인 1979년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국영기업인 에스큐엠(SQM)과 미국 정밀화학기업 알버말에게 채굴 독점권을 줬다. 이후 두 회사는 이익의 일부를 정부에게 챙겨주면서 채굴량을 늘려왔다. 지난해 칠레는 전세계 리튬의 26%를, 아르헨티나는 6%를 생산했다.

2019년엔 정부가 추가 채굴권을 보장하지 않자 이들 기업은 허가 없이 채굴 지역을 넓히다 해당 지역 원주민들이 도로 봉쇄, 단식투쟁 등으로 맞서며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0년 원주민들은 유엔(UN)에 코로나 유행을 막기 위해 최대 1만명에 달하는 채굴 노동자들의 작업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 농부는 미 비영리단체에 “채굴이 시작되면서 작물은 썩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분열했다”며 “에스큐엠과 알베말은 괴물이다. 그들은 우리의 물을 고갈시켰고, 양심을 메마르게 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자원 개발시 원주민의 권리 보장과 적절한 협의 절차를 보장한 국제노동기구(ILO) 원주민협약(169호)과 원주민 권리를 보장하는 유엔 원주민권리선언(UNDRIP)을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칠레 아타카마 소금호수에서 리튬 추출 과정 순서도. 출처: NRDC 보고서

갈등은 리튬 채굴 과정에서 비롯된다. 아타카마 소금호수(염호)는 염분이 바닷물(3%)보다 10배가량 높다. 에스큐엠과 알베말은 소금호수에서 소금물(brine)을 뽑아 18∼24개월 동안 태양광에 수분을 증발시킨 뒤 나온 추출물에서 리튬을 생산한다. 리튬 1㎏을 생산하는 데 평균 2200ℓ의 소금물이 필요하다. 해마다 소금물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주변 농지나 습지가 건조화돼 농사는 물론 자연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로이터> 보도를 보면, 지난 4월 칠레 정부는 소금물 과다 채취로 알베말을 환경법원에 기소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칠레는 리튬을 2020년 2만1500톤, 2021년 2만6천톤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칠레로부터 2020년 2억6천만달러 어치(코트라 추정)의 리튬을 들여온 최대 수입국이었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에스큐엠의, 삼성에스디아이는 알베말의 주고객이다. 두 회사 모두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과 유엔 인권선언 등을 따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르헨티나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리튬생산업체 리벤트가 옴브레 무에르토 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채굴하면서 원주민과 갈등을 빚었다. 1998년부터 채굴해온 리벤트가 2017년 리튬 생산을 크게 늘리면서 트라피체 강과 지역 석호가 말라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에는 채굴 노동자들이 작업 중단을 요청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 지역의 농부는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는 데 필요한 물이 말랐는데, 이에 항의하다 경찰의 탄압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볼리비아는 외국 기업을 끌어들여 우유니 소금호수에서 리튬 채굴을 추진 중이다. 애초 모랄레스 정부가 국영 개발을 추진하다 사임하면서 중단됐고 재추진 중에 있다. 시범사업 진행 등으로 원주민 피해가 발생했지만, 아직 수익은 없는 상황이다.

천연자원보호협회는 보고서에서 “3개 나라는 각각 리튬 채굴을 촉진하고 있지만, 아직 광범위한 이해 관계자들에게 동등한 이익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국가는 없다”며 “원주민과 지역 사회 존중, 채굴 과정에서 환경 기준 강화, 리튬 채굴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증발 방식이 아닌 다른 채굴 공정 개발과 폐배터리 활용을 통한 리튬 확보 등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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