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팀 맞나"..미, 나토 골칫거리 에르도안에 '부글부글'
"경제난 잠재우려 민족주의 자극".."바뀌지 않을 것"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북서대양조약기구(NATO·나토)라는 한 배를 탔지만 팀워크를 해치며 '이단아 행보'를 보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미국 정가에서 고조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유엔과 4자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열어줄 흑해 안전 항로 합의안 도출에 기여하긴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이후 줄곧 나토 입장에 부합하지 않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여 온 게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항해 군사적 결속을 다지고 제재 수위를 높이려는 미국 시각에서 보면 한마디로 골칫거리나 애물단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1952년 가입해 나토의 오랜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이전에도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 서방을 곤혹스럽게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는 주요 현안에 여러 차례 어깃장을 놓으며 더 큰 갈등을 몰고 왔다.
일단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서 미국이나 서방과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를 냈다. 침공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도 러시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곡물 협상안 타결 직전인 19일 이란 테헤란을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만나 회담했다.
서방이 민주주의 질서에 역행하는 나라로 지목해 제재를 가하는 두 나라의 정상과 현안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나토의 단합력을 저해하는 행위로 여겨질 여지가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5월 중순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에 합류하려던 스웨덴, 핀란드의 신규 가입 여부를 두고도 다른 회원국들과 충돌했다.
튀르키예는 자국이 분리독립 세력이자 테러단체로 간주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스웨덴과 핀란드가 옹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을 반대했다. 나토는 기존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새 회원국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 북서부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 이웃 나라 스웨덴이 들어오면 나토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두 나라가 가입 의사를 드러냈을 때부터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한 달 이상 엇박자를 내던 튀르키예는 두 나라와 물밑 협상을 통해 자국이 안보 위협 집단으로 간주하는 PKK와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을 따르는 조직 '페토'(FETO) 관련자들을 넘겨받는 한편 무기수출 금지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지난달 28일 나토 가입 반대 철회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조건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나토 가입을 고리로 스웨덴과 핀란드를 압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숙원 사업인 F-16 전투기 구매에 관한 긍정적 답변을 끌어내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튀르키예는 과거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미국의 전투기 판매 금지 대상에 올랐고, 최근에는 조종사들이 이웃 국가인 그리스 영공을 수백 차례 침범해 문제가 됐다. 그런데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허용하는 반대급부로 '공군력 강화' 카드를 받아낸 것이다.
다만 미국 의회가 권위주의 지도자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도울 수 없다는 이유로 F-16 판매를 반대하고 있어 튀르키예와 미국 간 전투기 거래가 최종 성사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처럼 독자적이고 과감한 외교 정책을 펴는 배경에는 동서양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복잡한 국내 정치·경제 사정이 있다고 NYT는 짚었다.
지난달 튀르키예 물가는 78.6%나 치솟아 정부 실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러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민중을 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직 외교관인 엘리자베스 섀컬퍼드는 NYT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 팀이 맞지만, 그는 우리 팀에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며 "그가 바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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