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랑스럽다" 美 장진호 참전용사 옴스테드 장군 별세

김태훈 2022. 7. 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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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해병대 병사로 참전.. 장진호에서 싸워
숱한 전공 세워 장교 임관.. 3성장군까지 진급
전역 후론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에 앞장서
"한국의 성공, 참전용사 등 거룩한 희생 덕분"

“6·25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잊힌 승리입니다.”

평소 이같이 말하며 미국인들에게 6·25전쟁의 참상, 그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위대함, 그리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설파해 온 6·25전쟁 참전용사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이 20일(현지시간)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고인은 미 버지니아주(州) 콴티코에 있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2017년 장진호 전투 기념비가 들어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스티븐 옴스테드 장군이 2017년 5월 미국을 방문해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한테 장진호 전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의하면 고인은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을 거뒀다. 마침 미국 정부가 기리는 ‘6·25전쟁 참전용사 정전기념일’(7월27일)을 1주일 앞둔 시점이어서 유족과 지인들의 슬픔이 크다고 VOA는 전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해병대에 병사로 입대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고 유엔이 한국을 지원키로 함에 따라 소속 부대인 미 해병대 1사단과 함께 한반도로 파병됐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데 이어 1950년 11∼12월 함경남도 개마고원 부근 장진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싸웠다.

당시 미군 등 유엔군은 두만강 쪽으로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하고 있었다. 북한 김일성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인 중국 마오쩌둥의 지시로 중국군 대부대가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온 사실을 유엔군은 모르고 있었다. 장진호 일대에 매복해 있던 중국군은 미군을 기습했고, 마침 밤마다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매서운 한파까지 몰아치자, 미군은 더 이상의 북진을 포기한 채 후퇴하기로 한다.

문제는 이를 예상한 중국군이 두터운 포위망을 쳐놓은 점이다. 미군은 해병 1사단을 선봉 삼아 탈출을 시도했고 해병대의 엄청난 희생 끝에 동해안 흥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1950년 12월 미군 병력과 장비를 배에 싣고 월남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까지 태워 무사히 남쪽으로 이동한 흥남철수작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피난민 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모도 있었다.

훗날 고인은 장진호 전투 당시의 처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3일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그치고 별(일명 ‘고토리의 별’)이 보이기 시작해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숱한 전공을 세워 병사에서 장교로 신분이 전환된 고인이 3성장군까지 진급하고 1989년 전역한 뒤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 추진단체 고문을 맡은 데에는 이런 인연이 있다. 2017년 5월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방미 일정의 하나로 콴티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참배했을 때 고인은 87세 노구를 이끌고 몸소 전투 상황을 들려줬다. ‘고토리의 별’ 일화에 착안해서 만든 장진호 전투 기념배지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부모님이 흥남철수작전 덕분에 월남한 사연을 소개하고 “장진호 전투가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것”이라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고인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스티븐 옴스테드 장군이 생전에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고인은 평생 한국 사랑을 이어가며 미국 사회에서 6·25전쟁이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치부되는 걸 안타까워 했다. 흥남철수작전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 개봉을 계기로 2015년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자랑스럽게 성공한 한국이 존재하는 것은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그 후에도 오랜 세월 아픔을 겪고 이를 헤쳐나간 한국 국민들의 거룩한 희생 덕분”이라며 “6·25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잊힌 승리일 뿐”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마침 오는 27일 워싱턴에선 6·25전쟁 미군 전사자 이름을 모두 새긴 기념비 제막식이 열린다. 미국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돼 한반도에서 포성과 총성이 멎은 것을 기념해 매년 7월27일은 ‘6·25전쟁 참전용사 정전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고인의 장례식은 그 하루 뒤인 28일 열릴 예정이다. VOA는 “장례 절차가 끝나면 고인은 콴티코 국립묘지에 안장된다”고 전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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