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점검]② '초품아'의 배신, 아파트 밀집지역이 사고 더 많다
7월 12일부터 보행자 보호 의무가 강화된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습니다. 보행자 가운데서도 어린이는 배려가 필요한 교통 약자입니다. 때문에 어린이 보호구역 내 주정차 전면 금지,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등 어린이 보행 안전을 위한 조치도 잇따라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은 법을 좇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는 어린이 보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 실태를 집중 점검하는 연속 기획보도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① 사고 많은 '어린이보호구역', 불법주정차도 많았다
② '초품아'의 배신, 아파트 밀집지역이 사고 더 많다
③ 스쿨존이 님비시설? 어린이 안전과 맞바꾼 주차 편의
'초품아'.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뜻으로, 초등학교와 인접한 아파트를 가리키는 부동산업계 용어입니다. 학교와 가까워 아이들의 통학거리가 짧아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에 신규 아파트 분양 때마다 인기가 높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초품아'는 비슷한 입지의 다른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최대 5천만 원 더 비싸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교통사고나 유해 환경에서 안전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요.
■ 대구 사고 다발 스쿨존, 절반 이상 '초품아'에 있었다
문제는 진짜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안전한가 하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초품아'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KBS가 최근 10년간 대구지역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스쿨존 일대(반경 300미터 이내)'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를 모두 분석해 사고 건수에 따라 구군별 스쿨존 순위 목록을 뽑았습니다. 대부분의 구군에 대해서는 사고가 많은 순서대로 10번째까지, 초등학교가 적은 대구 중구와 남구는 각 5번째까지 학교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와 인접한 학교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봤습니다. '초품아'는 부동산업계의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학교를 갈 때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아도 되거나 통행량이 비교적 적은 왕복 2차로 이하 도로를 건너는 경우로만 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인접한 학교들을 추렸습니다.
그 결과 대구의 구군별 사고 다발 상위 '스쿨존 일대' 중에서 '초품아'와 인접한 곳의 비율은 47%, 거의 절반에 달했습니다. 주택이 많은 대구 중구와 남구, 서구, 동구를 제외하면 그 비율은 더 높아집니다. 수성구와 북구는 60%, 달서구와 달성군은 70%에 이릅니다.
구군별 사고 발생 상위 초등학교 상세 목록을 공개합니다. 이 가운데 '초품아'와 인접한 학교는 노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노란색으로 표시하지 않은 학교들 중에서도 바로 인근에 아파트와 인접한 곳들이 있지만, '초품아' 기준에 따라 도로가 2차로 이상으로 넓거나 골목길이라도 한 블럭 이상 떨어져 있으면 모두 제외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와 바로 인접한 초등학교가 이렇게 많았습니다. 차가 쌩쌩 달리는 간선도로에 위치한 초등학교 주변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아파트 바로 앞에 위치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 아파트·상가 밀집에 보행 안전 '뒷전'…학교 앞에서도 '중상'
최근 10년동안 대구지역 초등학교 가운데 '스쿨존 일대'에서 가장 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곳은 대구 달서구 상인동에 위치한 월서초등학교 주변입니다. 이 일대에서는 무려 35건의 어린이 보행자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곳은 말그대로 대단지 아파트가 학교를 꼭 품고 있는 듯한 전형적인 '초품아' 동네입니다. 월서초 주변(월서초 배정) 아파트의 세대 수를 모두 더하면 2천6백여 세대에 이릅니다. 학교의 동편에 위치한 아파트는 작은 담벼락을 끼고 바로 붙어 있으며, 서편에 위치한 아파트는 1차로의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학교의 남북으로는 이면도로를 끼고 상가 건물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취재진이 직접 월서초등학교를 하교 시간에 찾아가 봤습니다. 학교 앞 정문 1차로 통학로는 등하교 시간에 맞춰 일방통행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맞은 편에는 학부모들이 길게 늘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고, 사고 우려 탓인지 학교 보안관이 수신호 역할을 하며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선생님과 학교 보안관의 안내를 받아 학생들은 대부분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넜고, 학교 반대편에 설치된 울타리 보행로를 따라 하교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정문을 조금 벗어나니 상황은 좀 달라졌습니다. 주요 통학로와 남북 이면도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차량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학생들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안전한 울타리 보행로가 아닌 학교 담벼락 쪽 도로 위를 따라 걷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학교 북측 이면도로에는 불법주정차 차량도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월서초 주변에서 반복되는 어린이 사고를 잘 알고 있는 관할 경찰서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매년 꾸준히 교통 안전시설 개선 사업이 이루어졌지만, 1차로의 좁은 통학로를 끼고 학교와 아파트, 상가가 밀집한 상황에서 교통량이 너무 많은 게 주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등하교 시간만이라도 교통량을 줄여보고자 학교 정문 통학로를 일방통행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위반하는 차량은 물론이고 차량 통행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통학로에 양방향으로 울타리 보행 통로를 만들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정작 우리 어린이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설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부족한 겁니다.
"학교 북측에 상가가 형성이 돼있고, 남측에는 이면도로와 왕복 4차로 도로 사이에 또 상가가 형성이 돼있고... 아이들이 거의 이쪽에서 집중적으로 통학하고 학원도 다니는데, 좁은 골목에 (보행자와 교통 수요가) 너무 집중돼있다 보니까... 더군다나...(생략) 학교 측 정문에는 보도가 없어요. 애들이 횡단보도를 건너서 반대편 보도를 이용해야 하니까, 횡단보도를 안 건너도 되는 상황이면 지금보다 더 (사고) 예방이 가능할 거 같거든요. 담당자로서 볼 때 제일 필요한 부분은 학교편 보행로 개설이에요." (대구 달서경찰서 관계자)
사고 건수만큼이나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사고의 치명도입니다.
월서초등학교 스쿨존 일대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대부분 학생들의 주요 통학로인 학교 정문 앞 1차로 도로, 인근 이면도로에서 발생했습니다. 그야말로 학교 바로 앞, 집 '코 앞'에서 아이들이 다친 겁니다. 골목길, 좁은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라 크게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사고 35건의 피해자 부상 정도 중 '중상'은 11건, 무려 31.4%에 달합니다. 10명 중 3명은 경상이나 부상이 아니라 크게 다쳤다는 뜻입니다.
또다른 '초품아' 인접 학교를 살펴보겠습니다. 대구 시민들에게 '칠곡3지구'라 불리는 대구 북구 동천동 역시 대표적인 아파트와 상가 밀집지역입니다. 동천동의 초등학교 3곳(동평초, 함지초, 북부초)은 모두 대구 북구의 사고 다발 상위 10개 스쿨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10년동안 이 세 곳의 학교 스쿨존 일대에서 발생한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는 31건입니다. 이 가운데 피해자가 '중상'을 입은 것은 9건, 29%입니다. 월서초 스쿨존 일대에서 발생한 '중상' 비율과 비슷합니다. '초품아'가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사고의 치명도 역시 말해주고 있습니다.
■ '지을 때도 문제', 신축 아파트 공사장이 어린이를 위협한다
초등학교 바로 인접한 곳에 아파트가 지어지면 '초품아'가 됩니다. 신도시를 조성하거나 4천 세대 이상의 대단위 아파트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동시에 지어지기는 힘듭니다. 어린이 보행자가 많은 초등학교 바로 옆에 대형 공사장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초품아'가 만들어질 때부터 안전 문제를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불법주정차 이야기로 돌아가보기로 하겠습니다.
KBS는 최근 5년간 대구시 불법주정차가 많이 발생하는 어린이 보호구역을 최근 5년간 구군별, 연도별로 분석해봤습니다. 보통 불법주정차는 상습 발생 구역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구 수성구를 보면, 불법주정차는 동도초와 중앙초, 동성초 주변에서 매년 단속되는데, 코로나19 이동량이 줄면서 단속 건수도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단속 건수가 별로 없다가 특정 연도에 갑자기 불법주정차 단속 건수가 증가한 스쿨존이 있었습니다. 대구 수성구에서 동천초와 용지초, 들안길초는 2017년와 2018년에는 단속 건수가 거의 없었는데, 2019년부터 급격하게 불법 주정차가 늘었습니다. 대구 동구에서도 강동초와 용호초, 덕성초 주변에서는 불법주정차 단속이 이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는데, 효목초는 지난해부터 갑자기 불법주정차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불법주정차 증가 시점이 주변에서 신축 아파트 공사가 집중되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입니다. '초품아'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사 현장은 보통 높은 담벼락이 둘러싸고 있어, 담벼락을 따라 불법주정차 차량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취재진은 동천초와 효목초, 들안길초 주변을 찾아가봤습니다. 먼저 효목초 인근에서는 '초품아'를 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효목초는 학교 입구 바로 앞 통학로가 공사 울타리와 나란히 이어져 있습니다.
학교 입구에는 단속 CCTV가 달려 있었지만, 공사 울타리를 따라 불법주정차 차량들이 버젓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마침 여름 방학식을 마친 아이들은 학교를 빠져나와 불법주정차 차량 탓에 좁아진 통학로를 따라 하교했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신축 아파트가 내년 3월 입주를 앞두고 있어 지금은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레미콘 차도 학교 앞에 지나가고 정말 복잡하고 그랬지. 학교 앞으로는 지나다니지 말라고 해서 이제는 큰 도로로 빙 둘러서 다니고 그래요. … (불법)주차도 저 쪽(공사장 입구) 담벼락 쪽으로 많아요."
(효목초등학교 학교보안관)
올초 학교 정문 앞에 '초품아'가 완공된 동천초등학교는 현재 후문 쪽에서 또다른 '초품아'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곳은 좁은 1차로와 골목길로 둘러싸인 학교로 불법주정차가 정말 심각했습니다. 이면도로 위에 파랗게 표시된 '어린이 안심 통학로'를 무시한 채 불법 주차한 차량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불법주차 차량, 골목으로 들어서는 차량에 공사현장에서 나오는 건설 기계들까지 뒤엉키면서 어른들이 통행하기에도 위험한 장면이 자주 목격됐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안의 불법주정차는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런데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주변에 수많은 불법주정차 차량을 유발합니다. 여기에 커다란 공사 차량까지 가세해 통학로를 위협할 경우, 어린이의 보행 안전은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사고 사례도 있습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신축 공사가 집중된 대구 수성구 들안길초 주변에서는 지난 2017년 6월 초등학생 2명이 10일 정도 간격을 두고 잇따라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데 이어, 그로부터 한달 뒤 만 12살 여중생이 공사차량에 치어 숨지기도 했습니다.
■ 어린이 안전, '초품아'보다 배려하는 마음
'초품아' 속 학교들이 사고 다발 상위 스쿨존에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 이는 넉넉한 보행로와 안전한 어린이 통학로, 충분한 주차시설 등 기반시설에 대한 고려 없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아파트 밀집지역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교통약자인 어린이들이 가장 취약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아파트 밀집지역이 되어버린 학교 현장에서 추가로 교통 안전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근 주민들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운전자 스스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만큼은 속도를 줄이고 잠시라도 주정차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도 어린이 보호구역에 인접해있을 경우, 공사 중 대책을 마련할 때 어린이 안전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의 인기,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부모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전은 '초품아'에 사는 것보다, 어린이를 위해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어른들의 마음가짐에서 완성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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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기자 (shinjou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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