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 340조원 달성 목표 정부..세계 경기 불확실성에 험로
세계 시장 전망 '암울'..SK하이닉스 등 기업 투자도 '주춤'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윤석열 정부가 5년간 반도체산업을 총력 지원해 기업 투자 340조원을 끌어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와 함께 국내 고용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경제 발전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데 강한 추진 의지를 비쳤다. 이같은 투자계획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소 중 하나가 글로벌 경기인데 사정이 녹록치 않다.
올 하반기 세계 경제는 '침체'의 벽에 직면했고, 당장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메모리 반도체는 올 하반기 가격 하락 전망이 우세하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신규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도 뒤로 미루는 등 기업 투자 심리도 잔뜩 위축된 모습이다.
◇정부, 5년간 340조원 기업 투자 촉진…세제·규제 타파 총력지원
24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반도체 초강대국'을 향한 핵심전략을 발표했다. 반도체산업 분야에 대한 총력 지원을 통해 향후 5년간 340조원의 기업 투자를 이끌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인데 앞서 발표한 'K-반도체 전략'에서 보다 진일보한 단계의 청사진이다.
이번에 발표한 주요 내용을 보면 반도체기업들을 위한 세제지원부터 규제 완화, 인프라 확대 등 각종 선물보따리가 담겼다.
대표적으로 대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중견기업과 단일화해 8~12%로 상향 적용한다. 현행 대기업 설비투자는 6~10%다. 테스트장비, IP 설계·검증기술 등도 국가전략기술에 새로 포함하는 등 세제지원 대상도 늘리는 안을 검토한다.
또 반도체 단지에서는 용적률을 최대 1.4배(현행 350%→490%)로 상향할 예정이다.
여기에 반도체 산단 조성 시 중대·명백한 사유(중대한 공익 침해 등)가 없는 경우라면 인허가 신속처리를 의무화하도록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노동·환경 규제도 완화한다. 현재 일본 수출규제 품목 R&D에만 허용돼 온 특별연장근로제(주52시간→최대64시간)를 오는 9월부터 전체 반도체 R&D로 확대해 기업 생산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하반기 반도체 시장 전망은 '암울'…세계 경제는 침체 직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도 암울한 시장 상황은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올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3분기 D램은 10%, 낸드플래시는 최대 13%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3분기(7~9월) 낸드플래시 가격 변동 전망에서 낸드플래시 가격을 종전 '3~8% 하락'에서 '8~13% 하락'으로 조정했다.
가격 하락도 4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다. 트렌드포스는 "2분기 시장 공급 과잉이 심화했다"면서 "3분기 가격 하락이 확대되고, 하락은 4분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은 수요 부진과 출력 및 공정 고도화 지속으로 공급 과잉이 심화된 탓이다. 지난달 30일 기준 낸드 메모리카드·USB용 범용제품(128Gb 16G*8 MLC)의 고정거래 가격은 평균 4.67달러로, 전월(4.81달러) 대비 3.01% 하락했다.
D램 가격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앞서 올 3분기 D램 가격이 2분기보다 10% 가까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치(-3~8%)보다 눈높이를 더 낮췄다.
D램 반도체 가격(DDR4 PC용 범용 기준)은 지난해 7월 4.1달러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떨어졌다. 지난달 말 3.35달러까지 내렸다.
비단 이 같은 경기 하방세는 반도체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높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강력한 긴축으로 경기 침체가 가시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이체방크의 게오르그 사라벨로스 유럽외환전략 본부장의 말을 인용, 애널리스트들이 유럽과 미국이 동시 다발적으로 침체에 빠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게오르그 사라벨로스 본부진은 "대서양 사이의 두 대륙에서 침체가 임박했다(imminent recession)"고 예상했다. 미국의 대형은행 골드만삭스는 유로존이 "침체 직전(on the edge of recession)"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에 몸 사리는 기업들…"보다 강력한 지원 뒷받침 돼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 가격 하락이 현실화하자 반도체 기업들은 몸 사리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청주의 신규 반도체 공장 증설 안건을 보류했다. 약 4조3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공장(M17)을 2025년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발(發) 복합위기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 계획을 미뤘다.
블룸버그는 SK하이닉스가 전자기기 수요 감소를 고려해 내년 자본 지출 규모를 16조원으로 종전 계획보다 25%가량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마이크론도 당초 계획보다 설비투자를 줄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는 9월부터 신규 공장 등 설비투자를 줄이기로 했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는 올해 설비 투자액 계획을 기존 400억~44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낮췄다. 올 상반기까지 투자액이 167억 달러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보수적인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최근 이미지센서(CIS) 생산량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시장 상황을 타개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 보다 강력한 정부 정책지원이 필요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반도체 산업협회 고종완 센터장은 최근 열린 한국산업연합포럼에서 "우리 정부도 K-반도체 전략 발표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정책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아직 경쟁국 대비 반도체 설비투자 여건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액공제나 반도체 인력을 포함한 필수 인프라 투자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최우석 산업부 소재산업정책관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규제 완화라든지 인프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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