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후임 술 먹이고 성추행했는데..3년 넘게 쉬쉬한 軍

지난해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불거지자 뒤늦게 수사
法, 군인 등 준유사강간 혐의 20대 징역형 집행유예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2017년 12월1일 새벽.

해병대 부사관 A씨(당시 22세)는 전입한 지 한두 달 밖에 안 된 후임 부사관 여성 B씨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었다. 당시 B씨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었던 A씨는 그렇게 B씨를 한 식당으로 불러냈다.

A씨는 B씨와 만나자마자 B씨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가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만취할 정도의 강권이었다.

이후 A씨는 식당 인근에 있는 모텔로 B씨를 끌고 갔고, 그 곳에서 A씨는 B씨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B씨를 유사강간했다. 이 뿐 아니라 A씨는 날이 밝자 귀가하려는 B씨를 붙잡고 대뜸 입을 맞추는 등 B씨를 강제추행하기까지 했다.

B씨는 이 같은 성추행 피해사실을 상부에 즉각 보고했으나 상부는 이렇다 할 조치 없이 B씨의 상황을 방치하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시간이 지나도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자 충분한 보호조치를 못 받고 있다고 느낀 B씨는 병영 내 편견 등을 우려해 결국 추가적인 문제제기를 주저하며 홀로 고통을 감내했다.

그러던 중 2021년 6월 B씨에게 갑자기 수사가 개시됐다는 통보가 이뤄졌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3년7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때는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이 한창 불거진 때였다.

2017년 말 제대 후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던 A씨는 결국 지난 2월3일 군인 등 준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법정에 서게 되자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의 변호인은 "당시 피고인이 처음부터 범행을 계획하고 피해자를 불러낸 건 아닌 것으로 보이고, 또 당시 피해자도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으나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지난 5월26일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군대의 경우 서로의 생명을 믿고 맡길 정도의 신뢰가 필요함에도 어떤 지령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특성상 피해를 문제삼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그런 점에서 군 성범죄는 엄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은 선임 부사관으로서 다른 부사관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다"며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고인의 범행 수법과 경위 등에 비춰볼 때 피고인의 죄책은 매우 무겁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법정에 이르러 잘못을 인정하는 점, 피해자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고 합의한 점, 피고인이 전역해 더이상 피해자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할 위험이 사라진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끝으로 A씨에게 "피해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향후 어떤 일이 있더라도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A씨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퇴정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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