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경찰수사 잘했더라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까..大法, 국가 책임 인정
중곡동 그 집에는 엄마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엄마가 처참하게 살해된 그날이 생각나서일 겁니다. 2012년 8월20일, 서진환은 서울 중곡동의 한 집에 침입해 30대 주부, 두 아이의 엄마를 폭행하면서 강간을 시도했습니다. 아랫집 신고로 경찰이 오자 도망가려던 엄마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현장에는 갓 서너살 된 두 아이도 있었습니다.
사건 이후 유족은 10년 동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에 나섰습니다. 1·2심 모두 국가기관의 미흡한 조치를 인정하면서도 배상할 정도는 아니라고 기각했다가 2022년 7월 소송을 시작한 지 거의 10년 만에 대법원이 국가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최종 승소한 그 날에도 중곡동 그 집에서는 아무도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족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번 판결은 국가의 책임 범위에 대해 우리 사법부의 시각이 10년 동안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장(場)이기도 했습니다.
1·2심, 경찰이 의도적으로 부실수사를 한 건 아니다
2012년 8월7일 서진환은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집에 침입해 과도로 피해자를 위협해 간음합니다. 경찰은 중랑구 범행현장에서 서씨의 모발 등을 채취해 유전자 분석 등 기초수사에 나섭니다. 후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서씨는 2011년 11월 대구지법 의성지원의 결정으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서씨는 중랑구에서 범행을 저지른 지 보름 뒤 중곡동에서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유족은 2013년 검찰이 잘못 기소해 서씨가 조기 출소했고 그 바람에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면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합니다. 서씨가 2004년 강도·강간죄로 재판받을 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으로 가중처벌을 받았다면, 2011년이 아닌 2013년 출소하게 됐을 테니, 2012년 범행은 없었을 거라는 거죠.
유족은 국가기관의 '미흡한 조치'로 크게 세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서울동부지법이 서씨의 누범을 빼먹고 징역 10년 대신 7년 선고·검찰 항소 포기 △경찰은 서씨를 '절도죄 복역 잡범'으로 잘못 관리 △검·경의 복잡한 DNA 관리 체계로 빠른 대조 실패 입니다.
범행 당시 인근에서 전자발찌 부착자는 서씨가 유일했지만, 수형자의 DNA는 검찰이, 구속피의자와 현장 DNA는 경찰이 관리해 서씨의 8월7일 범죄 이후 즉각적인 대조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만약 DNA 대조가 적시에 이뤄졌더라면 8월20일 중곡동 살인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추론이죠.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국가기관의 '미흡한 조치'를 인정하면서도 8월20일 피해자의 사망과의 인과관계는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1·2심은 법관과 검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요건에 대해 여러 대법원 판례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기각합니다.
2013. 12. 18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판결문 |
이 사건 직전 범행이 발생한 직후 수사기관은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고 현장감식을 통해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한 사실, 범행현장 발생 장소를 중심으로 현장 주변 CCTV 검색 및 녹화기록 확보 등 기초수사를 진행한 사실, (중략) 수사기관은 이 사건 직전 범행 피해자에게 서울 중랑구 내 성폭력 우범자 중 50명의 사진을 보여줬고 이후 수사를 진행하면서 서씨를 포함한 다른 성폭력 전과자 사진을 보여줬는데 피해자가 서씨를 지목하지 못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중략) 이 사건 형사판결 원심의 재판부와 검사, 경찰 등 수사기관의 잘못과 이 사건 범행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
그러면서 위치추적 전자장치법이 시행된 뒤 사건 발생 때까지 전자장치(발찌) 수신자료를 수사에 활용한 사례는 46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마디로 수사기관도 할 일은 했다는 겁니다.
1심 후 '선택과 집중'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유족 측 변호인은 검사와 판사의 과실을 청구 대상에서 제외하고 경찰과 보호관찰관에게만 책임을 묻습니다. 청구 금액도 3억7000만원으로 대폭 올렸습니다. 이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는 "판·검사를 청구 대상에서 철회한 이유는, 현실적으로 법리가 너무 엄격해서이기도 하고, 모두의 과실은 누구의 과실도 아닐 수 있으니까 (제외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에는 승소를 조심스레 기대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소심도 1심과 비슷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행위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우선 법령에 위반한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등의 원칙도 위반한 경우에만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중곡동 사건에서 경찰은 의도적으로 부실 수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죠. 특히 경찰이 전자발찌 정보를 활용하지 못한 점 등 수사에 미비한 점이 있지만, 당시에는 이같은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봤습니다.
2017. 11. 14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판결문 |
이 사건 직전 범행 당시 관계 법령이나 경찰 내부 수사지침에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 활용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었다… (중략) 특히 범인 특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고 과학적인 증거로 평가되는 범인의 DNA를 확보하여 감정을 의뢰하여 둔 상태였으므로, 이에 더하여 보호관찰소 측에 이 사건 직전 범행장소에 관한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를 조회할 필요성이 절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
대법원 "보호관찰관이 재범 방지 위해 실질적·적극적 조치 취했어야"
그렇다면 대법원은 왜 직전 범죄에 대한 경찰의 미흡한 수사와 중곡동 사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을까요? 원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에는 전자발찌 위치정보를 활용한 수사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환경을 고려했었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전자장치부착법의 입법 취지를 우선했습니다.
2022. 7. 14 대법원 판결문 |
위치정보를 수사에 활용하여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함으로써 추가적인 범죄의 발생을 막으려는 목적도 가지고 입법되었음을 알 수 있다…(중략) 성폭력범죄의 습벽을 가진 자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으로 추측되는 범죄의 수사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었다 |
또 앞선 재판부가 기본수사는 했다고 봤던 반면, 대법원은 "직전 범행을 수사하던 경찰관은 CCTV 녹화자료 열람, 탐문수사 등 수사기관으로서 여느 범행에도 하여야 하는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조치만 하였을 뿐 직전 범행이 내포한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성과 (이 범죄의) 특수성에 부합하는 전문적이고 신속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고 했습니다. 또 DNA 정보를 활용하기 어려운 당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직전 범행을 수사하는 경찰관은 DNA 정보에만 의지하지 않고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강구했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기초적인 수사는 했으니 배상 대상은 아니라고 한 원심보다 기초적인 수사만 해서 재범을 막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법원 판결인 셈입니다.
서씨가 보호관찰관의 면담 과정에서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을 하는 등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는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대법원과 1·2심은 엇갈렸습니다.
2017. 11. 14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판결문 |
보호관찰관의 진술에 의하면 서씨와의 면담과정에서 이같은 반사회적 언행을 한 것은 한 번뿐이었고, 그 외에는 '출소 후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하였으나 소급입법으로 전자발찌를 부착하게 되어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취지로 하소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점… (중략) 보호관찰관으로서도 명확한 위반 사유 없이 서씨의 의사에 반하여 정신 치료 또는 상담치료를 받도록 강제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전담보호관찰관이 서씨로 하여금 정신보건시설 등에서 치료나 상담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서씨는 2004년 저지른 성폭력 범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었음) |
보호관찰자에 비해 관찰관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대면접촉 횟수가 부족하지 않다(월 3회)고 본 것도 이같은 현실이 반영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기준 보호관찰관 1명당 평균 23.1명을 관리하고 있을 만큼 여전히 현실은 열악합니다. 그래도 대법원은 보호관찰관과 보호관찰소의 부실한 관리를 꾸짖습니다.
2022. 7. 14 대법원 판결문 |
서씨는 재범위험성평가 순위가 서울보호관찰소 관내 보호관찰대상자 1165명 중 9위에 해당할 정도로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높게 평가되었고… (중략) 담당 보호관찰관과의 면담 과정에서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을 하는 등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등 강한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서씨를 담당하는 보호관찰관으로서는 행동 관찰 결과 그의 강한 반사회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포착한 상황에서 서씨가 재범에 나아가지 않도록 잘 관찰하고 그의 특성에 맞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담당 보호관찰관이 수시의 대면접촉 등을 통하여 서씨를 지속적으로 지도·감독하였다면 서씨도 국가기관으로부터 계속 관찰을 받고 있다고 인식하여 함부로 재범으로 나아갈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 소속 경찰관과 보호관찰관의 직무수행이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하지 않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법령 위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 등의 과실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려면, 위법성은 물론 미흡한 수사와 범행 사이에 단순한 조건관계를 넘어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직전 범죄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고 해서 직후 범죄가 반드시 일어나라는 법은 없으니, 1·2심 재판부의 판결이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입니다. 서씨가 중곡동 30대 주부를 8월20일 범행 대상으로 삼고 살해까지 하는 과정에는 다른 원인들도 수없이 있었을 테니까요.
이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사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국가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완전히 방기하는 것이 된다. 경찰이 나름대로 수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범죄 예방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본 것 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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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wonti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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