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는 경항모, 尹정부는 스텔스기..전력증강 방향이 바뀐다 [박수찬의 軍]
윤석열정부의 군 전력증강 기조가 과거와는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공군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F-35A 스텔스 전투기 20대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4대 추가 도입 절차가 진행중이다.
최대 7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초대형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셈이다. 여기에 국산 KF-21 전투기도 지난 19일 첫 시험비행을 마쳤다.
윤석열정부 임기 동안 KF-21의 비행시험 2000여회와 초도양산계약이 더해지면, 공군에 대한 현 정부의 투자 규모는 군 안팎의 예상치를 웃돌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빨리 공군 사업이 진행될 줄 몰랐다”
정권이 교체되면 군 당국이 기존에 추진하던 전력증강 기조를 재검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는 신규 무기 도입사업 추진 절차가 빠르게 이뤄지기가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출범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공군력 증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군 사업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 몰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5일 제14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개최, 2023~2028년까지 3조9400억원을 들여 F-35A 20대를 도입하는 차기전투기(F-X) 2차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심의·의결했다.
F-35A 도입을 결정했던 2014년 군 당국은 F-35A 60대를 8조3000억원을 들여 구매하려 했지만, 예산 제약 등의 문제로 7조4000억원을 투입해 40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이때 축소된 20대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2018~2019년에 사업 선행연구와 소요검증을 거쳤다. 하지만 2020년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던 해군 경항모 건조와 탑재용 전투기인 F-35B 문제로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VIP 어젠다’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관심을 쏟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특정 사업이 VIP 어젠다로 분류되면, 어떻게든 관철해야 한다는 생리가 정부와 군에서 작동한다.
문재인정부 시절 경항모 사업이 그랬다. 문 전 대통령은 경항모 도입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2033년 모습을 드러낼 3만t급 경항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조선 기술로 건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해 12월 20일에는 김정수 당시 해군참모총장에게 “미래의 항공모함을 염두에 두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군 통수권자가 공개적으로 관심을 드러낸 전력증강사업을 군과 정부가 소홀히 하기는 어려운 법. 공군의 핵심 사업이었던 F-35A 20대 도입은 F-35B 구매 여부와 맞물려 지지부진해졌다.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의에서 사업비가 대폭 삭감되자 청와대와 민주당이 개입해 되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경항모 사업은 공식 거론되지 않고 있다. 기본설계 입찰도 토론회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F-35A 20대 도입은 새 정부에서 신속하게 결정됐다.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추가로 들여오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도 마찬가지다.
군은 지난 11일 국방부 소요검증위원회에서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도입을 4대 일괄 구매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합참도 지난 3월에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소요인 ‘2대 도입’보다 규모가 늘어난 결과로,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의에서 4대 일괄 구매를 권했던 것을 반영했다.
공군은 반색하면서도 걱정하는 눈치다. 현재 운용중인 E-737 4대 중 훈련과 정비 등을 고려하면, 유사시 작전 가능한 기체는 1대뿐이다.
4대를 추가 도입하면 한반도 전역을 감시할 수 있을 정도의 기체를 동시에 띄울 수 있다. 그만큼 작전능력이 향상된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커진 만큼 사업비도 늘어난다는 점에서 예산 제약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F-35A까지 더하면 수조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의 정상추진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공군의 우려다.
F-35A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도입, KF-21 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공군 전성시대’가 열리는 모양새지만,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한국 공군의 전투기 도입 사업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기종이나 구매 규모 등이 결정됐다. 공군 소요 충족을 위해 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증액해주는 사례는 없었다.
1991년 KFP 사업에선 F/A-18이 선정됐으나, 제작사인 맥도널더글러스(현 보잉)가 가격을 대폭 인상하면서 당초 목표로 했던 ‘신형 전투기 120대 도입’이 어려워지자 F-16으로 기종을 변경했다.
2002년 4월 F-15K 도입을 결정했던 F-X 1차 사업도 처음에는 120대 도입이 목표였으나 60대로 줄었고, 최종적으로는 40대로 감소했다. 이때 축소된 20대는 2008년 F-X 2차 사업을 통해 들어왔다.
F-35A가 최종 승자가 됐던 F-X 3차 사업도 60대 도입이 목표였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40대로 감소했다.
윤석열정부에서 본격화될 공군 전력 사업들도 사업비 증가와 일정 또는 규모 조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공급망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인도네시아에 A400M 수송기 2대를 6억8500만 달러(약 9000억 원)에 공급하기로 했던 에어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티타늄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도 차질을 빚으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미국에서는 F-35X 가격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 국방부 F-35 프로그램 책임자인 에릭 픽 중장은 지난 3월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으로 비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F-35처럼 대량생산되지 않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사업 후보기종인 미국 보잉 E-737은 물론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도 가격 상승 추세가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KF-21과 신형 백두정찰기 등을 개발한 경험을 토대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국내 개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KF-21은 원자재 가격 외에도 비용 상승을 부추길 요소들이 남아있다. 성능 점검과 결함 수정, 장비 개선 등을 위한 비행시험 수요가 기존 계획인 2000여회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시험 관련 지출을 늘리고 일정을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방위사업청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해 가격 상승을 억제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절감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120대로 예정된 도입 규모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대당 가격을 끌어올리고, 구매 물량을 조정하게 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강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공군 전력을 증강하는 것이 시급하다. 노후한 F-4·5를 교체하는 일도 더는 미루기 어렵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 규모 속에서 공군 사업을 동시에 모두 진행하는 것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순위 설정이 불가피한 이유다. 정부와 군의 정책에 따라 공군력 증강 기조도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윤석열정부의 의사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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