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은 반대하지만 '남자되기'는 장려하는 사회의 문제" [심층인터뷰 ②]

정지혜 2022. 7. 2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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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폭력 사각지대’ 기획의 현장 전문가 인터뷰 두 번째 편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실 양성평등정책연구위원 김홍미리 박사와 이뤄졌다.

지난 19일 만난 김홍 박사와의 대화에서는 10대 남성들에게 ‘성폭력은 안 된다’면서도 전통적 의미의 ‘남자 되기’를 주입하고, 그런 문화를 허용하는 사회의 문제가 지적됐다. 기성세대 남성의 ‘낙후된 남성성’이 답이 아니라면 새로운 남성성 모델을 채워줘야 하는데, 이를 빈 칸으로 남겨두는 사회는 사실상 남자 청소년들이 기존 문화를 답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남성성을 해친다’는 왜곡된 인식을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젊은 세대 남성은 잘못된 성 문화를 빠르게 습득한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정책, 남성 대상 성교육 전면화 등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김홍 박사는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요 내용.

◆디지털 성폭력은 문제라 하지만 ‘남성성 강박’은 유지하는 사회의 모순

-10대의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연구하며 느낀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성평등’이라는 것이 남성성과 대치 관계에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히 디지털 성범죄 관련해서는 반페미니즘 정서가 심하다. 학생들은 성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자신을 성적 주체로 여기는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성평등에 대한 접근이 남성성과 대척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를 통합해 가는 교육이 계속 필요하다고 얘기는 하는데, 반페미니즘이 굉장히 정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10대 또는 그 이하 아동들에게도 이런 정서가 크게 나타난다. 한창 자기 성장 과업으로서 '남자 되기', '남성성',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이런 걸 되게 하고 싶어 하는데, 그게 굉장히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적인 정보를 접할 때 매우 낙후된 버전을 아주 쉽게 접하는 상황이다.” 

-남성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이 문제를 본다면.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너무나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남자처럼 자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언론에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다루고,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바로 그래서 페미니즘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페미니즘이 '남자를 남자답지 못하게 한다'는 정서 또한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측면에서 무엇이 어디서 꼬였는지 찾아내야 하는데 정부조차 (페미니즘에 대해) 밟아버리고 있으니 이게 해결이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유독 심한 것은 왜 그럴까.

“일단 남성 중심 문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이 정서를 지지하면서 너무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반론의 여지가 없다. 백래시라는 것도 성평등, 페미니즘 운동이 커지는 시점에 나온다고 얘기한다. 이런 흐름 속에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마치 여성을 2등 시민화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집결한다. 또 이미 집결돼 있었기 때문에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남성성 언급을 하면 곧장 '남자 아이들을 범죄자 취급하냐'는 식으로 반발이 나오고, 그걸 덮고 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서울시립 아하청소년성문화상담센터가 그런 면에서 중심을 잘 잡고 간다고 생각한다. '포괄적 성교육'이 말로만 있었는데 이를 구체화시키고 있어서다. 디지털 성폭력에서도 '위험해, 안 돼' 이런 식의 윤리적 규범적 접근은 쉬운 길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이슈는 남성 아동과 청소년 교육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성적 주체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권리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쾌락'의 측면도 건드리면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성'에 대한 논의는 백래시 이후 페미니즘 3물결에서도 중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남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남성 참여 캠페인을 젠더 폭력과 연관시키는 등 계속 있어 왔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용하는 대중들이 많아질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현재 젊은 남성 세대가 느끼는 혼란도 있을까.

“기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세워진 왜곡된 남성성의 시대가 있었다. 지금 40~50대는 식민지 남성성과 헤게모니 남성성이 결합된 '낙후된 남성성'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자랐다. 그런데 지금 20대는 그 세대는 지났다.

그럼 그 다음에 뭐가 있냐고 했을 때 그 내용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지금 20대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진짜 몰라서’ 그런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저런 4050 아저씨들과 다르고, 저 사람은 나도 싫어하고, 나는 성 구매를 하지도 않고 여성을 존중하는 사람인데 왜 저들과 같은 취급하고 책임을 나에게 묻나' 라고 억울해한다. 이것이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들은 적어도 성평등을 말하는 시대에 폭력 예방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남자가 되라'는 요구를 여전히 받는다. 인간다움과 남자다움 사이에서 존재하되 성적 존재로서는 어떤 모델을 그려야 하나 라고 했을 때 이를 제시해주는 교육이 없다. 지금 아하센터에서 하는 남성성, 포괄적 성교육이 응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교육을 받기 전 남자 청소년들은 자신을 성적 주체라고 생각할수록 페미니즘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교육 이후 인식이 바뀌었다. 성적 주체가 된다는 것과 성평등 인식이 음의 상관관계를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새롭게 필요한 남성성이 무엇인지 빈 칸을 채워주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인 건가.

“남자답게 커야 한다는 정상성 규범은 남아 있는데, 정작 남아들에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하려면 이 둘 사이를 연결해야 한다. 기존 성교육은 정확히 말해 '남성성을 성평등하게 수행하라'는 교육이 아니라 '너네는 그러면 안 된다'였기 때문이다. 폭력은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지만 남자가 되려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계속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여기에 개입하는 것이 포괄적 성교육이다. 

이게 없으면 남자 청소년들이 학창시절 동안 갈팡질팡하면서 그냥 형들을 따라하고, 또래들이 돌려보는 것 보며 안 좋은 문화를 배운다. 지금까지는 이에 대해 사회가 제지하지 않았다. '남자다운 놀이'이기 때문에, '남자라면 다 그래'라며 꾸준히 허용돼 온 문화를 고쳐야 한다”

◆디지털 성폭력 매커니즘 이해 전무한 어른들…“아무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다”

-10대들에게 디지털 성폭력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건가.

“디지털 공간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젠더화된 섹슈얼리티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성착취를 당당하게 전시하는 공간이다. 성적 정상성 규범에 균열을 내기는커녕 성별 섹슈얼리티 규범이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인 것이다. 여기서 남성들 간의 연대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성장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문화가 더 잘 습득된다. 성을 착취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확인하는 그런 경험들이 강화된다.

이를 어떻게 개입할지,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성인이나 교사들은 너무 모른다. 매커니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피해자들도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사건 이후 피해자들이 겪게 되는 문제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피해 학생들은 부모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가해자의 성착취만큼이나 두려웠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신고 기능을 아무리 만들어 놔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자신의 성적 실천을 할 수 있는데, 사회나 정부는 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를 안전하게 할 생각이 없다. 청소년들은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그냥 성적 놀이를 한다.

5살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면 거기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 책임이 사회에 있다. 디지털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른들이 '너 왜 놀이터에서 그러고 놀아?'라고 해버리면 피해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자신은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놀이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것은 인정하지 않고 '너 그런 애였어?'라고 뻔한 말을 해 버리면 피해자들은 고립된다. ‘아무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에서 제일 문제다.”

-어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정책적으로는 포괄적 성교육, 디지털 시민성 교육, 남성성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사, 청소년 지도사, 양육자들은 디지털 문해력뿐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의 매커니즘에 대해 정확히 교육받고 알아야 한다.

10대가 성적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근본적인 문제다. 이 인식을 거부하는 문화가 기저에 있다. 피해자 지원하시는 분들도 부모 상담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심한 경우 '내 아이가 이상하게 보인다, 눈을 볼 수가 없다'라고까지 한다. 

-학교의 디지털 성폭력 대응 수준도 문제가 많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학교 내에서 동시에 발생한 경우가 있었는데, 학교에 디지털 성범죄 예방, 대응 지침이 없었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그 애플리케이션 쓰지 마, 채팅하지 마' 이렇게만 얘기한다. 여자 아이들 조심시키는 방식으로만.

가해 학생에 대해서도 학교 단위로 처리하기에 쉽지가 않다. 교육청 단위로 이런 사건을 전담할 팀이 필요하다. 학교마다 지침이나 위원회, 전문가가 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원칙을 정해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원스톱 대응 체계 만들고, 피해 촬영물 유포 전에도 확인할 수 있게

-좀 더 높은 기관에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은 국가범죄수사국(NCA) 산하에 CEOP라는 아동 청소년 성범죄 신고 시스템이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언제든 작동시켜서 신고할 수 있는 체계가 있다. 트위터 계정 등에서 누군가 지원 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또 다시 성착취하는 등 2차, 3차 피해가 이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CEOP와 같은 공식적 인증 마크가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시스템은 신고자가 애매해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위험한 관계인지 아닌지를 알아챌 수 있도록 굉장히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신고를 하면 범죄예방국에서 수집해 한 번에 대처가 이루어진다. 이런 대응 체계가 우리도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10대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피해자에게 우리가 뭔가 요구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조심하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하는 게 우선순위 같다.

10대, 20대 여성들을 만나 보면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적 안전성에 대해 너무 불안해한다. 온라인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었대, 저런 피해도 있대, 어떻게 쫓아가서 주소를 찾아냈대’ 같은 얘기들은 굉장히 많이 돌아다니는 데 비해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대응 방법은 무엇이 있지?에 대한 얘기는 너무 없더라. 이런 것에 대한 얘기가 좀 더 많이 확산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 지원에 더 필요한 서비스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제도화 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는 불법 촬영된 성적인 콘텐츠가 아니면, 혹은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았다면 법적 지원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내 사진을 갖고 있을 것이라 의심은 되는데 유포 여부를 알아볼 수는 없어서 불안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촬영물의 유포 여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불안 피해'로 명명해 민간에서 제공하는 사례가 있다.

유포 됐을 때의 대응 방법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심리,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런 안전망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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