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시선으로 어루만진 자연 풍경.. 그 안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삶의 시간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화가 김보희 '구상 풍경 대가'로 명성
한국화에 서양화 재료 더해 장르 개척
'채색=왜색' 이분법적 틀 팽배하던 때
채색화 작품으로 대회 입상.. 신예 조명
제주도 여행서 풍경화 즐거움 깨달아
푸른 바다부터 씨앗 등 작은 생명까지
현실·환상 혼합해 새로운 풍광 탄생
나이 들어가며 자연 통해 지난 삶 반추
#김보희의 눈 안의 풍경
같은 장면을 보아도 더 아름답게 감각하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떠난 길, 눈앞 바다에 윤슬이 펼쳐졌을 때 똑같이 카메라를 꺼내어 찍어도 유독 반짝이게 그 빛남을 담아내는 사람.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그 사람의 “눈 안의 풍경”이라고 부른다. 화가 김보희(1952~)의 작품 속에서는 김보희 눈 안의 풍경들이 있다. 전통 한국화를 기반으로 서양화 재료를 수용하여 자기만의 화법을 구축한 작가는 구상 풍경 회화의 대가로 불린다.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30여년간 재직했으며 박물관 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다.
#자연을 붓으로 그리는 일
김보희는 작업 초기인 1970~80년대 동양화의 외연 안에서 다양한 대상을 그렸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주변 인물 또는 정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20대에 양수리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며 자연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풍경 속에는 다양한 색이 있었고 그것을 그리는 일은 전과 다른 생기를 주어 빠져들게 되었다. 1990년대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며 그는 자연 그리는 일에 더 즐거움을 느꼈다. 바다가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것이 좋아 그것이 커다랗게 존재하는 화면을 만들었다. 푸른색이 가득 찬 화면 한가운데 그어진 줄은 수평선이 되어 하늘과 바다를 구분했다. 바다 그림을 그릴수록 거기에 자기 삶을 비추어 들여다보는 의미가 생겼다.
작가는 2000년대 들어 제주도 남쪽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제주에는 바다는 물론이고 들판을 비롯해 작업실 테라스에서 보는 정원까지 그림의 소재가 넘쳤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것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2010년대 들어서는 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바다와 들판을 관망하던 넓은 시선과 더불어 그 안의 개별 존재를 살피는 세심한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를 강조하던 작품은 자연의 본질을 들여다보며 씨앗과 열매, 식물의 부분 등을 다루게 되었다. 씨앗 한 톨을 세로 160㎝, 가로 130㎝의 화면에 터질 듯 가득 채워 그려서 선보였다. 통통한 씨앗은 막 터지고 줄기가 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강력한 생명력을 전한다.
“한편 그의 작품을 어떤 장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인가. 그것은 중국 남화나 북화 같은 기법적 전통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었으며 수묵화나 채색화, 동양화나 서양화라는 구태의연한 구분을 초월한다. 중요한 것은 작가 정신이 얼마나 발현되는가이며,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폭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이다.”
긴 시간 줄을 서더라도 관람자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기다리게 하는 힘은 여기서 올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내는 듯싶다.
#여름의 바다, 숲, 이내
김보희의 작품은 따듯한 남쪽 제주를 그리기 때문인지 항상 여름 같다. ‘Towards’(2022)는 우리가 여름날 기대하는 바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제주의 바다는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그 색이 달라진다. 현무암이 깔린 바다는 짙은 푸른색을 띠고, 모래가 있는 바닥은 에메랄드색을 보여준다. 맑은 하늘과 밝은 해는 바다의 곱고 짙은 에메랄드색을 더 눈에 띄게 한다. 날씨가 좋아 물결이 잔잔하게 이는 장면에서는 고요와 안온 그리고 평온이 전해진다.
‘Jungmoon Street 201905’에 그린 중문 한 도로의 모습은 자연을 담은 앞선 두 ‘Towards’ 연작과 다르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김보희 눈 안의 풍경이 있고 거기서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일찍이 바다의 수평선에 자기를 투영해 본 작가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들며 씨앗과 열매, 작은 식물 등을 화면에 담았다. 이제 더 흐르며 그는 노을과 이내의 시간 속에서 지난 삶의 모습을 반추해 본다. 김보희가 그리는 풍경은 삶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풍경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의 눈 안의 풍경은 자기만의 것이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전해 감동을 가져오는 것이다.
김한들 미술이론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윗집男 칼부림에 1살 지능된 아내”…현장 떠난 경찰은 “내가 찔렸어야 했나” [사건 속으로]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이 나이에 부끄럽지만” 중년 배우, 언론에 편지…내용 보니 ‘뭉클’
- “39만원으로 결혼해요”…건배는 콜라·식사는 햄버거?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식대 8만원이래서 축의금 10만원 냈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일상톡톡 플러스]
- “북한과 전쟁 나면 참전하겠습니까?”…국민 대답은? [수민이가 궁금해요]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