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재미가 전부라고? 여기 '메시지'와 '흥미'를 함께 잡은 게임이 있다[게임연구소]

이승엽 2022. 7. 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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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역사 소재로 사회적 의미 담은
'임팩트 게임' 잇달아 등장해 주목
국내서도 자살 예방 위한 '30일' 인기
게임개발사 더브릭스의 이혜린 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에스플렉스센터 시너지움 게임랩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게임의 본질은 그저 즐기기 위한 것일까? 게임으로 재미 이외의 것, 이를테면 사회적 가치 같은 것을 추구할 순 없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새로운 시도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0년. 세계 최대 게임개발사 중 하나인 유비소프트는 자사의 대표 게임 '어쌔신 크리드' 교육용 콘텐츠 버전인 '디스커버리 투어'의 이집트와 그리스 버전을 무료로 배포한 적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본래 오픈월드 장르를 대표하는 액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암살자가 돼 피렌체부터 로마, 런던, 파리, 보스턴 등 뛰어난 그래픽으로 재현된 과거의 각 나라를 탐험하며 적들을 암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깊은 세계관 속 방대한 스토리를 따라 당시 시대상을 직접 경험하고 즐길 수 있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충성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디스커버리투어. 유비소프트 제공

그런데 유비소프트는 코로나19로 국가간 여행이 어렵게 되자 이 게임을 교육에 접목하기로 했다. 게임의 배경인 오픈월드만 쏙 뽑아내 과거를 체험하며 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는 보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현실 고증에 뛰어난 게임인 만큼, 교육 현장에서의 만족도는 높았다. 하늘길이 막혀 갈 수 없는 이집트 카이로의 피라미드를 캐릭터를 통해 직접 올라가보거나,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반대로 지난해 국내 게임업계의 최대 화두였던 P2E(Play to Earn) 게임은,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점을 강조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 속에서 유저가 획득한 무기와 장비가 가상화폐를 통해 현실세계의 실제 수익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이 '유희'라는 본래 목적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사례가 이어지는데, 그 여러 갈래 중 하나가 '임팩트 게임(Impact game)'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게임, '임팩트 게임'

보스니아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크 코리아 제공

임팩트 게임이란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와 게임의 합성어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을 뜻한다. 제작 초기부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이면이나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게임이라는 익숙한 매체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임팩트 게임은 책이나 영화와 달리 유저가 직접 주인공이 돼 사건을 직접 체험한다는 점에서 메시지의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임팩트 게임의 대다수는 시나리오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되는 내러티브형을 취한다.

최근에는 일반 게임과 임팩트 게임의 경계도 흐려지는 추세다. 대형 개발사가 제작한 트리플A급 게임이 그 어느 게임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고, 인디게임 개발사가 만든 임팩트 게임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기도 한다.

2017년 출시된 액션 게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은 임팩트 게임을 표방하지 않지만 조현병을 앓는 주인공을 스토리의 중심에 내세웠다. 가족들의 비극적 죽음으로 조현병을 앓게 된 켈트족 여전사 세누아의 복수극이 이 게임의 핵심. 조현병 환자가 겪는 환각과 환청 등을 플레이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구성해 조현병을 진지하게 다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임팩트 게임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게임으로는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이 꼽힌다. 폴란드의 게임개발사 11비트스튜디오가 만든 이 게임은 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을 배경으로 한다. 보통 군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전쟁 게임과 달리 디스 워 오브 마인의 주인공은 민간인이다. 요리사, 음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힘을 합쳐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하루치밖에 남지 않은 식량을 여러 사람에게 배분해야 하는 상황, 목숨을 걸고 위기에 빠진 다른 생존자를 구출할지 혹은 포기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계속해서 서게 된다.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이 마주해야 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진지하게 고찰하면서도, 게임성까지 갖춰 유저와 평론가의 호평을 받았다.

1960년대 대만 계엄령 시대를 다룬 ‘반교(Detention)’도 있다. 대만의 게임개발사 레드캔들게임즈는 민간인 감시와 처형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던 당시 실상을 공포 게임이라는 장르를 통해 폭로했다. 대만 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흥행몰이를 하면서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독립운동부터 우울증까지... 사회 문제를 다룬다

더브릭스의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 '30일'. 더브릭스 제공

국내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임팩트 게임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소재로 만든 자라나는씨앗의 'MazM 페치카', 네팔 대지진의 아픔을 다룬 겜브릿지의 '애프터 데이즈' 등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된 게임은 자살 예방을 소재로 한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 '30일'이다. 30일은 지난해 하반기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됐는데, 입소문을 타며 누적 17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인기몰이를 했고, 지난 19일에는 컴퓨터(PC) 버전인 '30일 어나더'가 스마일게이트의 인디게임 플랫폼 스토브 인디에 출시됐다.

30일을 제작한 더브릭스는 이 대표를 포함해 직원 단 4명으로 꾸려진 작은 인디게임 개발사다. 구성원들은 게임공학부터 언론홍보까지 전공도 제각각이지만, 대학생 게임제작 동아리 시절 인연에서 출발해 지금은 한마음 한뜻으로 '임팩트 게임 전문 개발사'를 지향하는, 작지만 꿈 많은 곳이다.

30일은 역사물에만 한정됐던 국내 임팩트 게임의 소재를 우울증이나 층간소음, 스토킹 등 일상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1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혜린 더브릭스 대표는 자살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게 된 이유에 대해 "전쟁이나 환경 문제 등 거대한 담론을 다룬 임팩트 게임은 많지만 일상적인, 바로 손닿을만한 곳에 있는 문제를 다룬 게임은 많지 않았다"며 "구글에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나오는 것이 '대한민국, OECD 회원국 중 자살율 1위'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면서도 많은 유저들이 고민해보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진지하게 다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시생의 죽음을 막아라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 '30일' 중 선택지를 고르는 장면. 더브릭스 제공

30일은 전형적인 어드벤처 게임으로, 추리물의 형식을 띈다. 다만 단서와 심문을 통해 범인을 찾는 탐정물과 달리, 플레이어는 고모가 운영하는 고시원 총무를 맡게 된 주인공 박유나로 분해 정확히 한 달, 즉 30일 뒤 죽음이 예정돼 있는 공시생 최설아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고시원에 사는 등장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퍼즐을 풀듯 최설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옆에서 도움을 줘야하며, 선택의 결과에 따라 총 16가지의 엔딩 중 하나를 경험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최설아의 죽음을 막을 수도, 고시원에 화재가 발생하는 참극이 일어날 수도 있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개발과정에서 개발진의 고민도 깊었다. 이 대표는 "기획 초기부터 이 게임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됐다"면서 "자살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싶지도,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기도 싫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발진은 게임 속에 실제 고시원의 모습을 담기 위해 공시생들을 인터뷰하고 고시원을 직접 답사하며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게임을 구현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고 한다. 오랜 기간의 자료 조사와 함께 의학 자문을 받아 스토리와 대화의 완성도도 높였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는 뉴스 등을 통해 자살 관련 통계나 예방 지식 등을 제공하고 고시원과 관련한 사회 문제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회사 이름인 '더브릭스'부터 우리 사회의 벽돌(brick)들을 하나씩 부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 모든 콘텐츠는 지향하는 바나 담고 있는 메시지가 모두 다르다"면서 "다양성 측면에서 꾸준히 작품성을 가진 임팩트 게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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