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 "10대男 위한 '남성성' 교육 절실" [심층인터뷰 ①]
주요국 최하위 수준의 성평등지수와 정보기술(IT) 강국의 조합을 갖춘 한국. 이런 사회에서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수위는 높아지고 일상화되며, 가해·피해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 미성년자들이 디지털 성폭력에 연루되기가 너무 쉬워졌지만, 피해 학생에 대한 지원·회복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교화도 미미한 실정이다. 학교나 가정에서 주로 대응하게 되는 10대 디지털 성폭력은 성인의 범죄에 비해 다루기 더 까다롭고, 폐쇄적이며 잘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심각성을 짚어보기 위한 기획 ‘디지털 성폭력 사각지대’를 준비하며 현장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첫번째로 남성 청소년 친화적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는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의 이명화 센터장을 지난 15일 만났다.
-청소년 성 상담을 오래 진행해 오면서 어떤 흐름적 변화를 느낀 적 있는지.
“우리 사회에는 성착취·성매매 문제에 대한 ‘성별 이중규범’이 있다. 여성의 성은 대상화되고, 남성은 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누리거나 그룹이 향유한다. 청소년 성범죄도 그것의 연장 선상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매개체가 다양화되며 10대 사이버 성폭력이 증폭 및 강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일상화된 데다 아이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인터넷에서 채우고, 여기서 그런 콘텐츠를 유포하면 곧장 혜택이 따라온다. 여성의 성은 상품성을 갖고 거래되는 현실이라서다. 인터넷 발달 전에는 여성혐오적 분위기나 몸 사진 문제 등이 상품화까지 될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누나 사진 찍어 올리면 게임머니가 오고 이런 식이다.
이런 범죄가 장난이 아님을 알려줘야 하는데 그런 교육이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방어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행위가 해를 끼치는 것이란 생각보다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접하고 부추겨지는 자극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확실히 청소년 전반에 이런 문제가 퍼진 것이 느껴진다.
“요즘은 이 문제로 다급해진 양육자가 너무 많다. 특히 최근 2∼3년 코로나19로 온라인 접속이 늘면서 게임, 음란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성적 콘텐츠 접촉이 급증했다.
중학교 1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여성의 벗은 몸 사진을 친구와 주고 받고, 적극적으로 성 관계 얘기 하는 걸 부모님들이 목격한다. 양육자들은 너무 당황하며 직접 상담에 오거나 아이 상담을 의뢰하곤 한다. 집에서도 누나가 샤워하는데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까지 스며들만큼 불법촬영 문제가 사회 곳곳에 있다.”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가 10대로도 확장하고 있는 듯하다.
“디지털 성폭력이 어느날 갑자기 등장했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성 문화는 워낙 야만적이고 고질적이다. 이 일을 하면서 ‘20∼30년 노력해도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현실에서 계속 일어났던 상황들이 디지털 매개체를 통해 확장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기가 쉬워졌다.
청소년은 위험을 예측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요즘은 인친(인터넷 친구)과 실친(실제 현실 친구)의 구분이 없다. 메타버스에서 게임하다가 친구가 된다. 모르는 사람과 온라인에서 대화하고 친해지면 오프라인에서 스킨십을 하는 등 진도가 나간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를 금할 수는 없다. 10대에게는 이것이 일상이다.”
-청소년들이 그러다 어떻게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가.
“남학생의 경우 누군가 접근해서 ‘너희 반 여자친구들 중 예쁜 아이 사진 보내볼래?’라며 사진 보내주면 뭘 해주겠다고 한다.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예쁜 친구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 전화번호, SNS 계정 등을 보낸다. 그 사진이 딥페이크나 합성에 쓰이고 일종의 온라인 범죄 집단에 넘어가는 순간 위험해진다. 이렇게 피해 여학생의 신상을 털어 협박하고 추가 범죄를 저지른다.
여학생은 최근 유명했던 텔레그렘 N번방 범죄 같은 것. 일탈계(일탈 행위를 하는 계정)나 얼굴 사진을 올려 놓은 여학생만 공격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계정을 운영한다고 해서 범죄에 이용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지 않은가. 청소년들은 자신을 어필하고 매력을 발산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자기표현 방식으로 SNS를 하는 것이다.
사귀는 사이에서 남자친구가 여학생과의 성적 행위 사진을 올리는 행위 등도 있다. 반드시 외부 기관이 신속한 법적 조치와 삭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청소년은 성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자기검열 도구가 되고, 어른들이 자신을 비난할 것이란 생각에 더 말 못하고 시간을 지체하며 일을 키우게 된다.”
◆10대부터 성별 인식차 너무 심해…‘남성 개입’ 위한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사이에도 성에 대한 인식이 ‘성별화’되는 현상이 매우 심한 것 같다.
“초·중 성교육 현장에서 정말 그렇다. 현실에서 여학생과 남학생이 성을 접하는 태도가 성별 기준으로 너무나 다르다. 남자 아이들은 성을 가볍게 다루고 노는 것, 희희덕거리거나 성적 경험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다룬다. 성에 대해서도 많은 주제가 있는데 주로 성관계 행위에만 집중한다.
여학생들은 이에 비해 폭넓게 관심을 갖는다. 임신·출산도 있지만 성평등, 성역할까지 다양하게, 또 성관계 자체보다는 연애에 관심이 많다. 여학생들은 성교육 하면 말로 표현하는 편이고, 남학생들은 언어보다는 행동을 한다. 문화적으로 다르게 키워져 있어 똑같은 방식과 메뉴로 교육하는 게 효과적일까 질문하게 됐다.”
-성교육에서 성별 분리를 할 필요성 말인가.
“현실적으로 그런 면이 있다. 성교육 때 여학생들은 훨씬 진중하게 자기 고민들이나 친구 얘기를 한다. 근데 남학생과 여학생을 섞어놓고 하면 그렇게 되기까지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무래도 아직은 여학생이 이런 민감한 주제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두려움이 크고 쉽지 않다.
남성과 여성의 성인지 관점 자체가 다르고, 이들을 달리 보는 환경에서 키워졌다. 그런 현실을 보지 않고 ‘이퀄리즘’이라며 똑같이 나눠서 줘야 한다는 것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맞춤형 교육이 아니다. 다양성에 따라, 각자의 요구에 맞게 현 시점에서는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하센터의 ‘남자청소년연구소’에서 남학생 대상 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그런 취지인지.
“처음에 남학생들만 모아놓으면 (성관계를) 누가 먼저 했네, 많이 해봤네 하는 장난 식이다. 행여라도 성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면 이상한 애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수년 전부터 정책적으로 이런 남자 아이들에게 친화적인 성교육이 뭘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프로문도(Promundo)라는 국제기구의 ‘맨후드 2.0’을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활용할 남 청소년 대상 자체 프로그램을 별도 개발했다. 남학생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교육이다. 아직 이에 대한 반발은 들어본 적 없고, 오히려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다. 물론 교육 도중에 페미니즘 얘기가 나오면 끝까지 듣지 않으려는 남학생들도 있긴 하다.
미디어에서 잘못 알려진 화제들, 군대, 여성할당제, 페미니즘 등에 대해 토론한다. 군대 문제만 해도 여자 때문이 아닌데 모든 공격의 대상을 여성으로 삼는다. 이런 것들을 팩트체크하며 지식과 진실을 탐험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20명 정도 한 반 아이들이 있으면 교육을 통해 생각이 달라지는 남학생들이 꽤 나온다.”
-기존 성교육에 문제 의식을 가진 것인가.
“우리나라 성교육은 그동안 성폭력 예방 중심으로만 이뤄졌다. ‘싫어요/안돼요/하지마세요’ 중심 말이다. 이러다 보니 남학생들은 성폭력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딱히 자기한테 필요한 교육으로 생각지 못하고,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고만 여기더라.
그런데 한국 사회 전반을 보면 성교육을 더 받아야 하는 건 사실 남자들 아닌가. 교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삶에 있어서도 성폭력 가해자가 되면 불행해지는 거다. 남 청소년이 향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용이다. 어떻게 접근해야 성을 자기 문제라 생각할까 해답을 찾으려 했다. 이들이 지금 성 문화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힘든게 뭘지, 인식 변화가 필요한 게 뭔지 등등. 남 청소년의 생활 세계에서 그 문제를 보고자 했다.”
-남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진중하게 얘기를 하다 보면 자기들도 남성들의 성문화, 막 으스대고 몇 명을 정복했다는 둥 자랑하는게 싫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폭력적·선정적으로 만드는 19금 콘텐츠 등에 기분이 나쁘다고도 하고. 성역할 고정관념, 남성의 틀(맨박스)에 갇힌 남성이 정말 행복할지도 질문하게 한다.
남자답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실은 남성에게 행복하지 않은 기준이며, 이를 연애 관계나 성적 표현 방식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도 얘기해 본다. ‘남자는 이래야 돼’라는 기준에서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프로그램을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했는데, 지금은 남자 선생님들이 가능하면 하고 있다.
남학생들의 평가는 굉장히 좋다. ‘기존 교육과 다르다, 나의 관심사를 얘기해줬다’며 반긴다. 교육 효과 분석에서도 남자 청소년의 성평등 의식,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 탈피 등에서 유의미한 교육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아이는 아냐” 학부모 인식 변화 필요
-가정과 학교에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여전히 성인지 감수성이 너무 떨어진다. 민감성을 더 가져야 한다. 지식도 매우 부족하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의 인식도 ‘여학생이 거기까지 왜 갔냐’는 수준이다. 정확히 이런 사건의 역동성, 어떤 구조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등을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 및 판결을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 선생님에게 성폭력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는 피해자들도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가해 학생의 성적과 학교 생활을 챙기느라 피해 청소년을 무마시키기도 한다. 가해 학생이 공부를 잘하거나 그런 경우다.
학교폭력이 성 사안일 때는 전문가들을 꼭 불러야 한다. 학폭위가 교장 선생님, 지역사회 경찰, 변호사, 학부모들로 주로 구성되는데 여성이 있더라도 학부모들이 많다. 학부모들은 되게 전통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최근 흐름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인가.
“학부모 입장은 일단 아이들을 어리다고만 본다. ‘우리 아이가 그럴 줄 몰랐다, 아직 어려서 모른다’ 등으로 말하지만 사실 그 아이가 일으킨 문제는 생각지도 못할 수준이다. 아무래도 학부모라는 정체성이 강하고 주관적 생각이 개입한다.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성관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격을 받는다.
성교육에서도 일부 학부모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현재 시대에 맞게 요구되는 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전반적 문화 수준이 양극화되어 있다. 청소년은 인터넷 매체에 완전히 노출돼 있지만, 전통적 가치를 가진 학부모들의 목소리 또한 매우 크게 대변된다. 이런 학부모들은 가해 학생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 아이가 어쩌다 실수한 건데, 크면서 그럴 수 있지, 남잔데…’ 이런 인식이 강하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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