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배회하는 '겅중이' 누가 버렸나[H.OUR]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30대 남성 이모 씨는 최근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제주도의 한 펜션에 갔을 때 '겅중이'를 처음 봤다. 이 씨가 펜션 창문으로 바다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해안도로로 갑자기 진도 믹스견처럼 보이는 중형견이 등장했다. 녀석은 원래 새하얀 털을 갖고 있었을 법했다. 그러나 녀석의 털색은 누런색이었다. 멀리서 봐도 온 몸에 흙먼지가 묻어있는 상태였다. 이 씨가 이 개에게 '겅중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텅 빈 해안도로를 혼자 겅중겅중 뛰고 있어서였다. 녀석은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바다 쪽을 보고 하염없이 엎드려 있기도 했다. 이 씨는 펜션에서 3박4일을 머물렀다. 그 기간 겅중이는 펜션을 오가는 모든 차를 졸졸 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먹이를 바라는 듯도 했고, 그저 관심을 원하는 듯도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막상 다가가면 꼬리를 아래로 내린 채 살금살금 피했다. 펜션 관리인은 "누가 이 근처에 버렸는지, 이달 초부터 나타나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며 "순하고 착해서 피해를 입은 적은 없다. 외려 돌봐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정작 다가가면 겁 먹은 소리를 내니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관광지에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일이 확산일로다. 특히 휴가철(7~8월)이 되면 이런 일이 더욱 자주 발생하고 있다. 멀리 있는 관광지에 반려동물을 유기하면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23일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내 발견된 유기동물은 모두 5368마리다. 유기동물 수는 7~8월 휴가철에 급증했다. 7월 513마리, 8월 529마리 등 월 평균(447마리)보다 14.7%, 18.3% 증가했다. 7월과 8월에 발견된 유기동물 수는 직전 달(6월·455마리)과 견줘봐도 12.7%, 16.2% 높은 값이었다.
눈으로 볼 때는 마냥 귀엽기만 한 동물이었으나 막상 키우려다 보면 싫증이 나서 유기되는 일이 적지 않다. 기본 관리 비용도 드는 데다 병에 걸린다면 병원비까지 부담이 돼 물건처럼 유기하는 일도 상당수다. 동물은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 버리면 누군가가 대신 키워줄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심리가 맞물려 유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휴가철 휴가지에서 유기가 더 자주 발생하는 건 기차·비행기를 타야하는 등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유기하면 따라올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30대 직장인 박모 씨도 최근 여름 휴가로 제주도에 갔을 때 유기동물을 마주했다. 제주 서귀포시 골목길에 있는 '맛집' 중국요리집을 찾아갈 때였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고 길을 찾던 박 씨는 가게 근처에서 믹스견으로 보이는 개와 마주했다.
그 개는 목줄을 한 상태였으나 먼지를 뒤집어 쓰고 갈비뼈도 훤히 보일 만큼 말라 있었다. 박 씨는 순간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개는 뒷다리를 다친 듯 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관심을 보이는 건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과자 봉지 뿐이었다. 박 씨는 "개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며 "눈에 초점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더 슬펐다. 휴가지에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일은 동물에게 행하는 최악의 행태인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헤럴드경제에 "아직 지표는 없지만, 향후 코로나19 경각심이 약해지며 장기간 외출 등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안타까운 사례가 더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유기동물은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많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 보호기간은 10일이다. 이 기간 내 주인을 찾지 못한 유기동물은 다른 곳에 입양되지 않으면 사실상 안락사를 당할 수밖에 없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유기동물도 상황은 좋지 않다. 사람 손을 타면서 야생성을 잃어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특히 휴가지에서는 '로드킬'의 가능성도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도는 지난해 유기동물 1270마리에 대해 주인을 찾아 보냈거나 입양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발생한 제주도내 유기동물 수(5368마리)와 비교하면 고작 23.6% 수준이다. 현재 제주도 안에서 운영되는 동물보호센터는 한 곳 뿐이다.
전문가들은 유기동물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동물 등록제' 활성화를 언급했다.
2008년에 도입된 동물등록제는 2014년 의무화돼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는 2개월령 이상의 개'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한다. 의무등록 대상인데 위반하면 60만원 이하, 10일 또는 30일 이내 변경사항 미신고는 4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실제 등록 비율은 지난해 기준 38.5%로 추산된다. 조희경 대표는 "동물등록제 관련 홍보 사업을 정부에서 더 체계화했으면 한다"며 "보호자가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잘 구축된다면 그릇된 생각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23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휴가철 책임 있는 반려동물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민·관 합동 캠페인을 전개한다.
동물을 유기하면 300만원 이하 벌금형, 맹견을 유기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되는 점 등을 홍보할 방침이다.
yul@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택배 안 왔다” 끝까지 우긴 여성…경찰 언급하자 “내 남친이 변호사”
- “주현영, 춤췄다가 혼쭐났다” 방심위가 제동 건 뜻밖에 ‘이것’
- 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한 번쯤 해본 케토 다이어트, 최악 식재료는? [식탐]
- “지금 제주서 싼타페 1주일 렌트 115만원” 이게 말이 돼?
- [르포]“IMF때도 이러진 않았어요”…잠실 ‘엘리트’에 무슨 일이[부동산360]
- “월 10억? 미국도 놀랐다” 한국이 키운 ‘이분’ 수익 알고보니
- 韓 코인거래소 빗썸, 27조원 재산 ‘이 사람’에게 팔리나
- ‘인하대 추락사’ 만취 피해자, 승강기 태워져 추락 층 끌려갔다
- [영상] 두번째 일요일에도 마트 갈까…의무휴업 폐지 기대↑ [언박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