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함 사라진 영국 '대혼란'..이상 기후에 펄펄 끓는 유럽
에어컨이 거의 쓸모없는 가전으로 취급되는 나라, 바로 영국입니다.
비가 잦아 맑은 날이 많지 않은 영국은 '서늘한 여름'을 나는 나라입니다. 건물도 난방에 집중된 구조로 설계돼 있고 냉방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습니다. 영국 가구 중 에어컨을 설치한 비중은 5% 미만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이런 영국이 그동안 겪지 못한 '낯선 폭염'으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 여름 기온 363년 만에 40도 넘어서…일상 '대혼란'
19일(현지시간) 영국 중부 링컨셔주 코닝스비 지역의 최고 기온이 40.3도로 관측됐습니다. 1659년 여름 기온 공식 관측이 시작된 이래 36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40도를 넘어섰습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9년 7월 25일 케임브리지의 38.7도였습니다.
영국 기상청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런던 여러 지역도 40도 이상을 기록했다며 최고 34개 관측 지점에서 기존 기록이 경신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폭염으로 일상 생활에 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철도시설공단은 서포크 지역 철로 온도가 62도까지 치솟았다며 철로가 휘고 녹는 등의 안전상 이유로 철도 운행 속도를 제한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선 운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평소 2배 수준으로 뛰어 출퇴근 시간대 주요 역사는 발이 묶인 이용객으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런던 루턴 공항에서는 활주로에 문제가 생기면서 2시간 동안 모든 운항편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학교 약 200곳은 일시적으로 교실 문을 닫거나 조기 하교 조치를 내렸습니다. 영업을 중단하는 술집과 식당이 속출했고, 음식 배달업체는 폭염 위험이 큰 지역의 배달을 중단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퇴원 조치된 환자도 집이 너무 덥다고 판단되면 입원 기간을 늘리도록 했습니다.
■ 식수로 세차하면 벌금…폭염에 수돗물 사용도 제한
폭염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럽 곳곳은 연일 최고 기온을 경신하며 40도를 넘는 더위에 펄펄 끓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속출하고 쉽게 잡히지 않는 대형 산불까지 겹쳐 고전하고 있습니다.
폭염으로 물 사용량이 증가하자 이를 제한하는 곳도 나타났습니다.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 멘드리시오 지방 정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한 지침에 따르면 멘드리시오 일대와 인근 소도시인 바사지오 트레모나, 살로리노 등 지역에선 수돗물 사용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식수로 공급되는 수돗물로 정원에 물을 주거나 세차를 하고, 수영장에 물을 채우는 행위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가정용 수돗물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면 그 정도에 따라 최대 1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35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도 공지됐습니다.
크로아티아 이스트리아 지방 정부도 식수로 차량이나 도로, 다른 공공시설을 청소하는 일과 녹지에 물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위반할 경우 물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물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현지 물 공급업체인 어피니티 워터는 폭염에 급증한 물 수요를 통제하기 위해 런던과 에식스, 서리 등의 수압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온실가스가 폭염 잔혹성 키워…"다자 대응 없다면 집단자살"
과학자들은 이례적인 폭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화석 연료 남용이나 대규모 공장형 목축 과정에서 급증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촉진했고, 이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가 폭염의 '잔혹성'을 더 키웠다는 진단입니다.
영국 기상청 스티븐 벨처 최고 과학 책임자는 "기상청 연구에서는 영국 기온이 40도에 이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나왔는데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이런 극단적 기온을 가능케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후변화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7~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각국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다른 국가를 손가락질하고 있다"면서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직면했는데도 다자공동체로서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공동대응이냐 또는 집단자살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합의된 기후 목표를 계속 지키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를 회복하고 함께 대응에 나서야 한다"면서 주요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세희 기자 (3h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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