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성공' 대우조선 하청 노조 파업..그 숙제와 성과
민형사상 면책 합의문 담지 못해…소송 가능성 높아
고용 승계 원칙적 노력…"자리 생기면 고용한다는 의미"
성과는 평화적 파업 종료, 조선 다단계 하청 재조명
원청, 교섭에서 빠진 게 타당? 노동법률가 "실질적 지배력 있다면 사용자"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노사합의로 최종 마무리됐다. 노조가 단순 합의문만 뜯어보면 관철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이번 파업으로 조선 하청 노동자의 참담한 현실과 조선업계의 실상을 사회 전반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회사 협의회'는 22일 오후 4시 15분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내 외업복지관 2층에서 잠정합의안을 발표했다. 잠정합의안 내용은 크게 4.5% 임금 인상과 폐업한 하청노동자의 원칙적 고용 승계다. 이후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총회 투표에서 대다수 찬성(투표 129명, 찬성 120표, 반대 9표, 찬성 96%)으로 잠정합의안을 통과시켜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숙제, 임금 인상 이미 반영돼…사실상 인상폭 없어
하청 사측은 지난달 22일부터 유최안 부지회장 등 7명이 사내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원유선반선을 점거하기 전후로 경남도청과 거제시청 등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미 4~7%(평균 4.5%)의 임금을 인상했다며 파업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권수오 사내협력회사협의회 회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원청에게서 3.2% 인상된 기성금을 받아서 하청 협력사별로 4~7% 임금 인상을 했다"며 "다만 각 협력사의 임금인상에 미동의한 노동자들이 일부 있어 이번 합의안을 조건으로 전부 동의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형사상 면책 합의문 담지 못해…소송 가능성 높아
이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하청업체 노조 집행부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한 일 또는 노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건조 중인 선박의 점거 행위'에 대해서는 파업이 종료됐더라도 끝까지 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민사부분 또한 원·하청이 수천억 원대의 경영 손실을 입었다고 밝힌 만큼 하청 노조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노조는 지도부가 민·형사 책임을 지더라도 조합원에는 영향이 가지 않도록 조율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쉽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 또한 높다.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형사 면책 관련해서는 남은 과제로 남겨놨다"며 "이후에 성실하게 더 협의를 할 지점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고용 승계 원칙적 노력…"자리 생기면 고용한다는 의미"
사측 권수오 협의회 회장은 "같은 직종에서 빈 자리가 생기면 고용을 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다"고 했다. 이처럼 노사 합의안 내용만 뜯어보면 노조가 교섭과정에서 사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거나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킨 부분을 찾기 어렵다.
성과와 의미는 평화적 파업 종료, 조선 다단계 하청 재조명
하지만 합의문이 아닌 이번 파업 전체로 시각을 넓히면 여러 의미와 성과를 찾을 수 있다. 일단 노사 협상 타결은 공권력 투입 등 일단 파국을 막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부가 '불법 파업'이라 규정짓고 공권력 투입을 강하게 시사하면서 사실상 협상의 마지노선로 정해졌던 이날 최종합의로 파업을 평화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사내 1도크를 점거 중이던 7명의 조합원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명 피해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평가다.
이 파업을 계기로 조선업의 다단계 하청 구조와 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재조명도 이뤄졌다. 조선업계가 원청 조선소가 특정 업무를 1차 하청업체에 내려주고, 1차 하청업체는 공정별로 2차 재하도급 물량팀을 투입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임금은 그 단계를 거치면서 점차 삭감돼 하청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조선업보다 임금수준이 높은 전국의 건설업계 등으로 유출됐는데, 조선업계에서는 최근 5~6년간 7만여 명의 하청 노동자가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김형수 지회장 등 하청 노조원 120여 명은 이 같은 문제를 파업 51일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원청, 교섭서 빠진 게 타당? 노동법률가 "실질적 지배력 있다면 사용자"
실제 하청 회사는 대우조선해양 원청이 내려주는 기성금(대금)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임금을 올려 줄 능력이 거의 없다. 하청 사측이 원청이 기성금을 3% 인상한 데 불과해 올해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도 이날 하청 노사가 합의한 액수대로 평균 4.5% 정도에 그쳤고, 실제로 기성금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의 인건비로 쓰인다. 충분한 근거 없이 기성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등 불법하도급으로 대우조선 원청이 2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153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사실까지 더해보면 원청이 '법적 사용자가 아니'라며 현재처럼 교섭에 빠지는 게 아니라 실질적 사용자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게 노동법률가의 지적이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노동법학계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는 원청이 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고,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및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노조법상 사용자임이 명백하다"고 했다.
실제 지난 2010년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에서는 현대중이 하청노동자 원고용주 하청업체와 비슷한 정도의 지배력을 갖거나 행사하면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행위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이처럼 대우조선해양이 이 같은 조선업계 구조를 방관 또는 유지했다는 비판에 이전보다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는 점은 이번 파업의 또 하나의 성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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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CBS 이형탁 기자 ta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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