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표 "KDI 겨냥한 감사원 감사, 구성원 불이익 우려해 사퇴했다"

신승근 2022. 7. 23.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인터뷰 : 홍장표 전 KDI 원장
한 총리도 '소주성' 응원했는데
윤 정부 '망신주기식 사퇴' 압박
"다른 임기제 기관 부담 줘 미안
이런 불행, 나 하나로 끝나야"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지난 21일 부산 남구 부경대 인문사회과학관 8층 사무실에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직을 내려놓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게 저를 겨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감사원 감사는 케이디아이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거니까, 혹시 저로 인해 구성원들이 어떤 불이익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그는 사무실 청소 중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았더라니까요. 어제, 오늘 아침까지 계속 청소 중입니다. 아직 케이디아이(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제 짐도 안 왔어요.”

5년여 만의 대학으로의 복귀는 급작스러웠다.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으로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설계한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두고 지난 15일 사임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의 집요한 사퇴 압박에도 버티던 그는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가 케이디아이 원장으로 앉아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같이 갈 수 없다”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 뒤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홍 전 원장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이석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에 대한 망신주기식 사퇴 압박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들은 법률이 정한 임기를 채우겠다며 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갑작스러운 감사로 케이디아이 조직과 직원이 불이익을 겪을까봐 사퇴했다”는 그는 “다른 기관장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불행한 일은 나 한 사람으로 끝나야 한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부산 남구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관 8층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018년 당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맨 왼쪽)이 특위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케이디아이 원장 임기가 2024년 5월 말로 2년이나 남았었어요. 자리를 더 지킬 수도 있지 않았나요?

“총리가 얘기한 겁니다. 직제상 국책연구기관들은 관리기관이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입니다. 경사연에 케이디아이를 비롯해 26개 국책연구기관이 있는데 최종 수요자가 총리예요. 그 총리가,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한 건 케이디아이 원장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듣겠다는 이야기잖아요. 우리가 연구를 하더라도 전달할 통로가 사실상 사라지는 거니까, 저로서는 임기가 있다 하더라도 계속 있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총리 발언에 대한 입장문에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자율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해 원장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만둔 건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원장의 역할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더해 갑자기 감사원 감사가 들어오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에 대해 원장으로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감사원 압박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얘긴가요?

“이게 저를 겨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감사원 감사는 케이디아이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거니까, 혹시 저로 인해 구성원들이 어떤 불이익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원장으로 케이디아이 조직을 잘 관리해야 되는데 오히려 제 리스크가 생겨 구성원들한테 제가 면목이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경사연의 경우 정해구 이사장은 전방위 사퇴 압박에도 견디고 있잖아요.

“그건 이사장님 본인이 판단하셔야 되는 문제지만 그분은 원래 전공이 정치학이시고, 원칙 이런 것들을 굉장히 강조하시는 분이니까 제가 하는 그런 것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청와대 경제수석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전 정부 사람이라는 게 상당히 표가 나는 대상이 된 거죠. 그런 면도 있으니 저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거죠. 다만 제가 이렇게 사퇴를 해 결과적으로는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다른 기관장들한테 심적인 부담을 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것에 대해선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을 하죠. 그래서 여러 분들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불행한 일은 나 한 사람으로 끝나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닙니다.”

―케이디아이를 상대로 한 감사원 감사에 대해 합리적 설명이 있었어요.

“그때가 언제더라, 6월…. (탁상 달력을 확인하며) 6월28일이구나. 이때 총리께서 저녁때 세종에서 기자간담회를 하셨던 그날이에요. 그리고 (같이할 수 없다는) 총리 발언에 대한 보도가 언론에 나옵니다. 그런데 27일 오후죠. 우리 감사실로 감사원 공문이 와요. 감사에 필요한 모니터링을 하겠다며 2주 안에 관련된 일체의 인사, 채용, 예산 등 포괄적으로 관련되는 자료를 전부 다 내라고 한 거예요. 저는 화요일 아침에 그 보고를 받았는데 감사실장 이야기로는 우리는 2019년에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는 거예요. 3년 전에. 보통 감사원 감사 주기가 10년 이상이라고 하더라고요. 더욱이 케이디아이 감사실은 10월에 총리실 국무조정실 감사가 예고돼 있었고, 이게 정기 감사라 그걸 준비하고 있었죠. 그러니까 감사원 감사는 전혀 예정이 없었던 거죠.”

―감사원 감사 통보와 총리 발언이 거의 동시에 나온 건 원장을 쫓아내기 위해 정밀하게 압력을 행사한 거 아닌가요?

“갑자기 왜, 어디서 결정돼 감사원 감사가 날아왔는지, 제가 그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어요. 감사원에 그 이유를 물어보라니까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보냈다고 답했다더라고요. 저로선 더 이상 알 수가 없죠.”

―국민의힘, 감사원에 총리까지 나섰으니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뜻 아닐까요?

“제가 알 수가 있나요. 윤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고 대통령과 가까운 분들하고 연락한 사이도 아니고…. 하여튼 새 정부 들어오고 난 다음 저에게 사퇴하라는 보도가 언론에 나오지 않은 적이 거의 없어요.”

―입장문 중에 인상 깊은 게 ‘한덕수 총리에게 실망했다’면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 소중한 조언을 해주신 걸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무슨 뜻인가요?

“문재인 정부 들어와 2018년 제가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 할 때 전직 총리나 장관 이런 분들 모임에 갔었어요. 거기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설명드렸는데 그때 (한 총리가) 여러 조언을 해주셨어요. 당시 제 기억으로는 한 총리가 ‘소득주도성장은 가야 될 길이다, 대신에 시장의 수용성 이런 것들을 감안해서 속도는 굉장히 잘 감안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 분이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케이디아이 원장으로 앉아 있는 건 안 된다고 얘기하니, 배신감을 느꼈겠네요.

“한 총리 당신보다는 윤석열 정부 전체의 총리로서 이야기한 것이겠죠. 윤석열 정부 총리로서 ‘소득주도성장을 계승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홍장표 전 원장이 지난 21일 5년여 만에 복귀한 부경대 캠퍼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에선 독립성을 강조하더니 지금은 검찰보다 더 심한 권력의 도구가 된 것 같아요.

“많이 달라졌죠. 문재인 정부에서는 감사원이 현직 장관들, 전직 장관들까지 다 조사하고 그랬는데, 저도 참 이해는 잘 안 가네요. 특히 방송통신위원회 이야기를 듣고 그러니까 더 심각해요.”

―감사원이 방송통신위원회에선 하드디스크 포렌식까지 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정치적 중립성, 공정 감사가 감사원의 생명인데 그런 태도를 보이니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케이디아이 감사도 제가 나와버렸으니까 이제 본감사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멈출지 봐야죠.”

―감사원에도 부담이 될 텐데요.

“현재 법·제도와 관행이 상당한 괴리가 있는 거 같아요. 법은 공공기관의 정치적인 중립성, 전문성, 자율성 이런 것들을 보장하라 돼 있잖아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몰아내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까지 나서서 그런 행동들을 보이는 것은, 반복돼서는 안 될 일들이 재연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을 보완책은 없을까요?

“이번에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과 관련해서) ‘엽관제’(선거에서 이긴 정당 쪽에서 요직을 차지하는 것)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공공기관을 경험해보니,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을까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한국은행은 완전히 독립해 있잖아요. 정권에 따라 한은 보고서 내용이 달라진다면, 지난 정권에서는 이렇게 가야 된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그거 틀렸고 다른 쪽으로 가야 된다고 하면 그야말로 대혼란이 발생해요.”

―독립성을 더 보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건가요?

“공공기관 중에 소수, 정책에서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예컨대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가스공사 이런 부분들은 기관장들도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나중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이렇게 기관의 성격에 따라 나눠져야지 350개 정도의 공공기관이 있고 성격이 천차만별인데 무조건 일률적으로 다 나가라고 한다면, 공공기관이 마치 전쟁에서 이긴 정권의 전리품처럼 되는 거죠. 방송통신위, 국민권익위는 장관급이잖아요. 장관급이면 사실상 정무직인데 왜 이들에겐 임기를 정해줬을까요. 정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감사원도, 공정거래위원회도 마찬가지고요. 정권에 따라 감사의 원칙, 공정거래에 대한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되겠어요. 이런 곳에 함부로 정권이 바뀐다고 누구 앉혀야 돼, 이건 아니지 않나요.”

―공공기관장 임기를 대통령과 맞추기 위해 2.5년씩 임기를 나누자는 얘기도 있던데.

“대통령 임기와 맞춰야 된다는 게 여당이든 야당이든 큰 틀에서는 방향이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다가 잘못하면 큰일 날 문제입니다. 국가 미래를 생각하면 차라리 국회 소속으로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회는 여야가 다 같이 있고 의원 입법의 질도 높지 않은 만큼, 경사연의 연구기관이 국무조정실, 정부 각 부처와 대통령실, 국회도 커버해야 돼요. 그래야 제대로 먼 미래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뀐다고 말하잖아요.

“과연 몇 퍼센트가 바뀔까요. 다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가야 될 것들이 있고 바꿔야 될 것도 있고, 이전의 경험들을 가지고 개량·개선해야 되는 것도 있고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겹쳐져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 정책을 깡그리 뒤엎어야 합니까? 제 경험상 문재인 정부에서도 다 바꾸지는 않았어요.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 그중에서 핵심이 창조경제혁신센터였어요. 나름대로 가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그냥 갔어요.”

―‘소주성’ 개발의 원조라고 하는데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를 하세요?

“원래 의도는 단기적 성과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었죠. 패러다임을 5년 만에 바꾸기가 힘들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여건, 무수히 많은 공격 속에서도 최소한의 성과는 거뒀다고 생각을 해요.”

―어떤 부분을 얘기하는 겁니까?

“직접 목적으로 했던 성과는 냈거든요. 대표적으로 저임금 근로자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저임금 비중이 줄었고 노동시장에서 임금 격차가 줄었고 가구 단위의 소득 격차도 줄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까요?

“수치를 다 보여드렸는데 성과지표가 나오지도 않은 초기에 만든 프레임 때문에 그 모든 수치는 안 보시더라고요. 최저임금 중심으로 정책을 해서 실패했다, 역효과를 냈다. 이걸 그냥 계속 도배를 해서 그 이후에 관련된 성과지표를 다 보여드려도 안 믿는 거죠. 저희가 잘했다, 이런 뜻이 아니라 이후 좀 더 보완해서 더 나아가야 될 부분이 있는데, 이게 이어지지 못하게 돼버린 게 안타까운 것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 정책을 다 뒤집는 건 그 정책이 국민의 평가를 못 받았기 때문 아닌가요?

“1차적으로 정부 잘못이죠. 제대로 그 많은 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까지 못 낸 거잖아요. 저도 잘못했죠. 좀 더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했었죠. 그걸 국민 탓으로 돌릴 수가 없는 노릇이죠. 그게 정말 아쉽고 뼈아픈 거죠.”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