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 단행한 유럽, 11년간 금리 못 올린 속사정은?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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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들과 달리 최근까지도 유로존은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었어요. 1999년에 출범한 유로존은 유럽연합(EU)의 단일화폐인 유로화(Euro)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말하는데요. 27개 EU 회원국 중 19개 국가가 유로존에 가입했어요. 유로존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은 2011년 7월 이후 11년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았죠.
그런데 유럽중앙은행이 결국 지난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에서 0.5%로 0.5%포인트 올렸어요. 기준금리는 보통 0.25%포인트씩 인상하는데요. 한 번에 0.5%포인트를 올리면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의미에서 '빅스텝(Big step)'이라고 불러요. 대체 유럽중앙은행은 왜 지금까지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았던 걸까요? 그리고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빅스텝'을 단행한 이유는 또 뭘까요?
불안한 유럽 경제
유럽중앙은행이 그동안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은 건 그만큼 유럽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예요.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일반적으로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든요. 기준금리를 올리면 투자자들은 주식 투자 자금을 은행 예금 등으로 옮기고, 기업은 이자 부담이 커져서 투자나 사업 확대를 위한 대출을 꺼리게 되는데요. 모두 주가와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죠.
지금 유럽에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요. 유럽투자은행(EIB)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여파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처한 유럽 기업의 비율이 현재 10%에서 1년 안에 17%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BoA메릴린치(Bank of America Merrill Lynch)는 최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응답자의 54%가 '유럽 경제가 향후 12개월 동안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대요. 결국 유럽중앙은행은 지금까지는 '이미 경기가 안 좋은데 기준금리를 올리면 유럽에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경기 침체가 올지도 몰라'라고 생각한 거죠.
유럽엔 잘사는 나라 많지 않나?/서로 입장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
사실 유로존의 모든 국가가 경기 침체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건 아니에요.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는 비교적 경제 구조가 탄탄하죠. 사실 이들에겐 경기 침체보다 가파른 물가 상승이 더 큰 고민이에요. 독일과 프랑스는 전부터 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유로존 내부의 복잡한 상황 때문인데요.
EU는 회원국 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유로화를 만들었어요. 미국이 경제 대국이라서 달러화의 영향력이 큰 것처럼, 유럽도 하나의 국가처럼 힘을 합치고 단일 화폐를 사용하자는 거였죠. EU 회원국 중 상당수가 이 뜻에 공감하면서 유로존에 참여했고요.
실제 유로화는 한동안 상당한 효과를 냈어요. 그동안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하느라 발생한 비효율이 사라진 거죠. 같은 화폐를 쓰니까 유로존 국가끼리는 무역을 할 때 귀찮게 환전할 필요도 없고, 환율 변동을 신경 쓸 필요도 없게 된 거예요. 유로존 국가들의 경제력을 더하면 미국과 비견될 만했으니 유로화는 단숨에 주요 화폐로 부상했고요.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보통 한 국가의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그 나라의 중앙은행은 그에 알맞은 정책을 사용하는데요. 유로존은 단일 화폐를 사용하고 또 유럽중앙은행이 사용하는 정책이 회원국 모두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각 국가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사용하기 어려워요. 실제 유로존 국가들은 경제력이나 경제 구조가 서로 달라요.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비교적 경제가 탄탄하지만,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그렇지 못하죠.
유로존은 예전에 큰 경제 위기를 맞기도 했어요.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던 대표적 경제 위기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때죠. 특히 유로존 회원국 중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는데요. 이들이 유로존에 속해 있어서 맞춤형 정책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국가들의 경제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물가 상승이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된 최근까지도 유로존은 금리 인상을 못 했어요. 금리 인상은 '경기가 좀 위축되는 걸 감수하더라도 가파른 물가 상승만은 꼭 막겠다'라는 의미인데요. 독일이나 프랑스는 경제 기반이 탄탄하니까 경기가 다소 위축되는 것은 감내할 수 있지만,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함부로 기준금리를 올렸다가는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지난 5월까지도 유럽중앙은행은 '우리는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며 기준금리 인상 계획이 없다고 얘기해왔어요.
올라도 너무 오른 물가
이랬던 유럽중앙은행이 결국 지난 21일 기준금리를 올린 건 더는 물가 상승세를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전쟁의 영향을 직접 받는 유럽은 다른 나라보다 그 정도가 심해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유럽을 상대로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고 있는데요. 과거 유럽에서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약 40%가 러시아산이었으니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죠. 에너지뿐 아니라 식량 가격도 많이 올랐어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5% 정도를 책임졌는데 이게 타격을 받은 거죠.
게다가 미국은 이미 기준금리를 1.75% 수준까지 올렸어요. 당분간은 계속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이고요. 경제력이 강한 미국의 화폐인 달러를 찾는 사람은 항상 넘치는데요, 달러의 금리(가치)가 높아지면 매력은 더 커지죠. 그래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땐, 다른 국가도 함께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투자자들의 돈이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유럽중앙은행은 원래 이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인상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물가가 생각보다 많이 오르고, 미국이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걸 보니 마음이 급해졌는지 0.5%포인트를 한 번에 올린 거죠.
끝나지 않은 유로존의 고민
일단 기준금리를 올리긴 했지만 유럽중앙은행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요. 경기 침체도 문제지만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빚도 많거든요. 작년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193.3%에 달했어요. 이탈리아는 150.8%였는데요, 독일(69.3%)이나 유로존 평균(95.6%)보다 훨씬 높죠. 빚을 많이 졌는데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박재영·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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