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풀고 독 비웠지만.. 7000억대 피해 '후유증' 불가피

대우조선 파업 50일 만에 철회
공권력 투입·파산경고 전방위 압박
노사 모두 파업지속땐 '공멸' 위기감
노·정 극한 대립·유혈사태는 피해
사측 임금인상률 폭등 부담 덜어
노측 고용승계 등 일부 성과에도
장기간 투쟁에 비해 초라한 수준
일각선 "원청·하청 구조개선 필요"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가 6월2일 이후 50일 만에 마무리 된 것은 정부의 불법 엄단 의지와 공권력 투입 검토, 주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의 ‘파산 경고’ 등 전방위 압박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위기와 여론 악화 속에 노사 모두 더 이상의 대치는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측은 임금 인상률 폭등을 막고, 노측은 막판 타결의 걸림돌이던 고용 승계 문제 등에서 일부 성과를 낸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해묵은 원·하청 구조 문제에서 비롯된 노사 갈등으로 천문학적 손실이 빚어진 만큼, 노사 관계 개선의 기반을 닦지 못하면 극단 투쟁은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악수하고 있다.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왼쪽)와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연합뉴스

노동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사는 이날 오전부터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서문금융센터에서 8시간에 이르는 막판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올해 임금 4.5% 인상과 폐업 하청업체 근로자의 고용 승계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문제는 하청 노사 간 이견을 완전히 좁히지 못해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공권력 투입에 따른 노·정 극한 대립과 유혈 사태는 가까스로 면했지만, 파업 장기화에 따른 후유증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파업으로 최소 7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하청노조의 거제 옥포조선소 1독(dock·선박건조대) 점거 농성으로 건조한 선박을 진수하지 못하면서 대외 신인도 하락까지 겪었다. 현재 대우조선은 부채비율 500%를 넘고 최근 10년간 순손실만 7조원 넘게 누적된 상태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의 주 채권단인 KDB 관계자는 “(파업 장기화로) 회사 자금난이 심화되면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며 파산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원청인 대우조선 경영진이 이번 파업을 주도한 하청지회 집행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도 이번 파업으로 얻은 실리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폐업 하청업체 조합원 40∼50명에 대한 고용 승계를 이끌어낸 것을 대표적인 성과로 거론하고 있지만, 50일이 넘는 파업 기간 동안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며 투쟁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고용 승계 역시 노조가 요구했던 직고용 형태가 아닌 협력사가 고용을 보장해주는 형태로 알려졌다. 임금 인상률도 30%를 내걸었다가 사내 하청업체가 제시한 4.5%를 그대로 받게 됐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일부 하청 근로자 120여명 때문에 대우조선 전 직원이 일을 제대로 못했고, 결국 아무 득도 없이 꼬리를 내렸다”고 지적했다.

불법 점거를 동원한 파업이 언제든 재발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내 “우리의 시간과 계획표에 따라 우직하게 계속 투쟁하자”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경험치를 쌓은 하청노조가 언제든 독을 다시 점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업계에서는 불법 점거 시 즉각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1독에 설치된 철 구조물에서 구조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국내 노동시장의 고질병인 ‘원청 업체의 하청 쥐어짜기’라는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 된 만큼 이런 체질을 개선할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번 파업을 통해 정부의 협상력도 부각됐다. 윤석열정부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는 엄정 대응한다는 원칙 아래 노사 문제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강온 전략’을 펼쳤다. 산업 각계의 피해를 강조하며 불법 행위에 엄정 대응하면서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관계 부처 장관을 현장에 보내 물밑 달래기에 나서면서 노사 합의를 촉진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병수·안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