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코드명 'F20', 100명 중 1명이 걸리는 무서운 병의 실체
질병코드 F20. 이 병이 어떤 병인지 혹시 들어 보셨는지요.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가 치료의 첫걸음"인 병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이 병에 걸린 환자를 '무섭다'며 꺼리고 피하는 시선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작년 10월, 이 병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한번 정면으로 다뤄 보겠다며 'F20'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관련 단체들에서 오히려 "영화가 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면서 상영 중단을 요구할 정도로 분노한 일도 있었습니다.
각종 사건에서 한번씩 언급될 때마다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병.
누구나 한번쯤 들어는 봤지만 얼마나 많이, 왜 걸리는지는 잘 모르는 병.
분류코드 'F20'으로 표기되는 이 병은 바로 '조현병'입니다.
지난 달 경기도 수원에서는 엄마가 11살짜리 아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행의 이유는 "아들이 나를 살해하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오랫동안 조현병을 앓아오던 환자였고, 그 망상 때문에 생긴 비극이었습니다.
■ 어느 날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조현병에 걸린다면?
조현병은 10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이런 비율로 계산하면 국내에 약 50만 명 내외의 환자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고, 그 환자의 가족들을 고려하면 200만 명 이상이 조현병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 책 <조현병의 모든 것> 中, 권준수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예전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조현병은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가 불협화음을 내듯 뇌 신경계에 이상이 발생해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대표적인 증상이 망상과 환청, 환각이다 보니 병이 심해지면 범행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망상에 나타나는 '가상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음의 병'으로 잘못 이해하지만,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병은 아닙니다. 다른 질환처럼 약물치료 등을 꾸준히 받아야 70% 이상 증상이 좋아집니다.
미국의 경우 조현병 환자의 4분의 3은 17세~25세 사이에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청소년기 이후 30대까지 비교적 많이 나타나고, 40대에 갑자기 발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현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전자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지만,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조현병에 걸렸을 때도 다른 한 명은 조현병에 걸리지 않은 비율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의 63%는 부모와 형제 자매, 조부모, 부모의 형제자매 아무도 조현병 병력을 갖고 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내 주변 친척들 중엔 조현병 환자가 한 명도 없다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조현병에 걸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조현병 취재를 위해 이번 인터뷰에 응한 김영희 씨는 조현병 환자의 가족입니다. 김영희 씨는 어렵게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의사가 되는 걸 포기한 사람입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제 가족이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한 다음에 증상이 급격히 악화됐고, 그러면서 사건까지 일으키게 됐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가 집에 있으면서 늘 돌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판단이 들어서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의사 국가고시는 올림픽 정신으로 치뤘긴 합니다.(웃음)"
하지만 지금처럼 정신장애인 관련 단체 일을 한 건 불과 몇 년밖에 안 됐다고 합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그동안 가족을 돌보는 것 자체도 힘들었고, 또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실 저는 제가 아니더라도 더 많이 배우신 분들도 많고, 워낙 조현병 관련해서 심각한 문제들이 많으니까 그런 분들이 관련 법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바꿔주실 줄 알았어요. 근데 안 바뀌더라고요. 오히려 몇 년 전에는 법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 '인권' 위해 법 개정‥그런데, 누구의 인권을 위한 것이었나
법이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김 씨의 말은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을 언급한 겁니다.
당시, 환자의 동의가 없는 '비자의(非自意) 입원'은 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인식 하에 입원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의료계 현장에서는 법 개정 이후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고 합니다. '환자 본인의 동의'가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입원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환자인데도 일단 병원 안 가겠다고 버티면 보호자가 합법적으로 입원시킬 방법을 찾기 힘들었고, 겨우 입원시켜도 지자체에서 "빨리 퇴원시키라"고 권하는 상황이 잇따랐습니다.
퇴원할 준비가 되지 않은 환자에게 퇴원을 강요하는 상황이 2016년 이후 더욱 잦아지는 것을 체감했다. 대체 2016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럴까. 2016년 5월 국회에서 정신보건법이 개정됐다. …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정신병원이 부당하게 인신구금을 하고 있다는 관점이 반영된 터였고, 정신과 의사들이나 정신병원협회 같은 관련 단체와 공청회 한번 없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 -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中,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충남 공주에 있는 국립법무병원에서 주치의로 일했던 차승민 씨는 매일 170명에 육박하는 '정신질환 범죄자'를 직접 면담하고 진료한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써냈습니다. 차 씨 역시 MBC와의 인터뷰에서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습니다.
[차승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 때 이후로 교도소 교도관들의 가장 큰 고민이 '정신과 환자 어떻게 해야 돼요? 이 사람 조현병 같은데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런 질문이 게시판에 엄청나게 많이 올라 왔어요. 국립법무병원으로도 문의가 많이 오고요.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어요.
법 개정 이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그만큼 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교도소로 가게 되면서, 힘든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환자 가족들도 여전히 힘들고. 그러니까 사실 이게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렇게 (입원을) 까다롭게 만들어 놓은 게 인권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법 이후로 피해자도 생겼죠,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도 못 받죠, '인권이라고 하는 게 과연 누구의 인권을 위해서 이렇게 법을 만들어놨는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2019년,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의 범인 안인득은 2010년 조현병 판정을 받은 환자였지만, 2016년 이후 범행 때까지 3년간 입원 치료나 정기적인 치료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채 사회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안인득은 (길 가던 행인을 흉기로 위협하고 욕을 한 사건으로) 조현병으로 진단받았다. 이 사건으로 보호관찰 3년 처분을 받았으며, 이 기간 동안 조현병에 대한 약물치료와 입원치료가 이루어졌다. 보호관찰 3년 동안 그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보호관찰이 끝나자 치료도 끊겼고 피해망상이 재발했다. … 그러고는 적들이 더 이상 자기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불을 지르고 칼로 찌르는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 -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中,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모든 조현병이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은 위험하다"
국립법무병원에는 조현병 환자 비율이 높다. 세상을 놀라게 한 강력 범죄자도 있지만 경범죄자도 상당히 많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제대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내 앞에 앉아 있지 않았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든다. 조현병 환자가 치료받지 않았을 때 증상의 끝에서 만나는 것이 범죄다. -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中,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수학자, 미국 프린스턴대 존 내시 교수는 20대에 발병한 조현병을 오랜 세월 치료한 끝에 50대에 증상이 좋아져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조현병은 나이를 먹을수록 증상이 나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완치'는 어려워도 '완화'는 가능합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 범죄 위험성이 93퍼센트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현병 환자들과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제도적인 대책을 묻는 질문에 두 사람은 '보호의무자제도 폐지'와 '사법입원 제도'를 들었습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우리나라 정신건강복지법에 보면 보호의무자 제도라고 해서 정신질환자의 돌봄 책임을 가족이 전담하게 합니다. 이건 서구 사회에서는 아예 없는 제도고요. 동양권에서도 중국 정도 빼놓고는 다 폐지가 됐습니다. 이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는 게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방향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위험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은 사회 안전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치안을 환자의 가족 개개인한테만 맡겨 놓는다는 건데, 이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요."
가족이 약을 먹으라든가 입원을 하라고 권유하는 과정에서, 증상이 심해진 조현병 환자가 피해 망상 때문에 가족을 해치는 사건도 많이 일어납니다.
조현병 환자는 대부분 성인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부모의 경우에는 완력으로도 자식을 이기기 힘듭니다. 환자와 보호자 1명, 이렇게 단 둘이 같이 사는 가정은, "보호자 2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입원을 시킬 수 있는 현행 법규정 자체를 충족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각 가정에 책임을 떠넘긴 채 계속 뒷짐만 지고 있을 게 아니라, 국가가 직접 체계적인 돌봄과 관리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차승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미국에는 정신보건법정이라고 해서 아예 정신과 환자들을 위한 재판이 따로 열립니다. 판사도 따로 있고 정신과 의사도 항상 같이 있어요. 입원을 결정하는 주체가 의사 개인이나 보호자가 아니라 국가혹은 법원이라는 건, 환자에게 입원의 필요성을 결정할 때 굉장히 큰 무기로 작용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의 시작이 전혀 되지를 않아요. 이건 남에 의해서 치료 시작을 할 수밖에 없는 병인 거예요. 치료 과정에서 증상이 좀 좋아지고 '병식(스스로 병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 교육'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고 약을 먹으면, 환자도 처음으로 좀 편해지는 게 있거든요. 계속 자기를 괴롭히던 소리나 안 좋은 생각들이 사라지니까‥"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법원이 입원을 결정해야 한다.'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안인득 사건이 터진 이후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계속 주장해온 내용입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바뀐 게 없습니다.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후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찾고, 그러다 금세 잊어버리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할까요.
(조재영joja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91298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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