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파업' 일단락 됐지만..노정관계는 먹구름 예고
기사내용 요약
노정 인식차 극명…정부 "불법" 노동계 "생존권"
하반기 줄투쟁 예고 속 '법적 대응'과 충돌 우려
"법 형식적 접근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못 해"
[서울=뉴시스] 김지현 기자 =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 50일 만에 노사 합의로 극적 타결을 이루면서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노정관계 파국은 막았다. 그러나 노동계 투쟁이 줄줄이 예고돼 있어 노정 갈등의 숨 고르기는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노동계와 정부에 따르면, 양측은 이번 파업 과정에서 쟁의 행위에 대한 인식차를 뚜렷하게 드러낸 바 있다.
앞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 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지난달 22일부터 거제 옥포조선소 1도크(선박을 만드는 작업장)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선박 바닥에 1㎥ 철제 구조물을 짓고 감금 시위를 벌였고, 조합원 6명은 15m 난간에서 고공 농성에 나섰다.
정부는 하청 노조의 이런 파업 방식을 두고 '불법' 프레임을 여러 차례 씌웠다. 지난 14일 정부 차원의 첫 공식입장인 고용·산자부 장관의 담화문에서 하청 노조의 점거를 "불법 행위"로 규정했고, 나흘 뒤 5개 관계부처 장관 담화문에서도 "점거 농성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했다.
법적 절차를 거친 파업이었지만, 정부는 점거 행위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위법성을 부각시켰다. 파업 행위의 성격성 업무상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도 업무방해,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적인 법 해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나아가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기다릴만큼 기다렸다"며 공권력 투입을 시사했다. 파업 현장에는 경찰의 정찰 헬기가 날고 소방이 대형 에어매트를 설치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하청 업체와 노동자들의 교섭이 타결된 지난 22일에도 정부는 '법과 원칙'을 네 차례나 언급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 해결을 "법과 원칙에 따라 노사분규를 해결한 중요한 선례"라고 자평하면서 "이번 불법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정부가 법적 테두리만 앞세우며 실질적으로 교섭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도록 정부가 중재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이 장관이 교섭 당사자를 '하청 노사'라고 선을 그은 것이 대표적이다. 파견법과 하도급법에 따라 원청이 하청 노사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조선산업은 다단계 하청구조 때문에 원청에서 기성금(도급비)을 올려주지 않으면 하청 업체가 임금을 인상할 여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 노동계는 정부가 조선산업 비정규직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근본적인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도 비판했다. 조선산업은 여러 단계 하청을 주다 보니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상당수이고 불황 때마다 임금 삭감과 대량 해고에 쉽게 내몰리고 있다. 이런 하청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열악한 근로조건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노정 모두 인식하고 있지만, 정부는 파업이 조선업체와 국가경제에 미칠 손실만 강조했다.
노동계는 하청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를 외면한 채 공권력에 의한 해결을 앞세우는 정부를 고강도로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폭력진압을 시도한다면 윤석열 정부를 반노동 폭력정권으로 규정하고 정권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까지 경고했다. 노정 긴장 수위가 고조되면서 제2의 한진중공업 사태로 비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관측도 나왔다.
하청 노동자들은 22일 하청 업체와 협상에서 임금 4.5% 인상에 합의했다. 정부와 사측의 공권력 투입, 손해배상소송 압력으로 최초 인상 요구 수준(30%)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로 교섭을 마무리한 것이다.
행정권 발동 없이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노정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는 면했다. 노동계는 하반기 투쟁에 날을 세우고 있고, 정부도 법적 대응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갈등 국면은 지속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다음달 15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9월24일 전국동시다발 결의대회, 11월12일 10만 조합원 총궐기 노동자대회 등 대규모 투쟁을 줄줄이 예고한 상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법 형식과 강력한 법적 제재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안정국 시절의 방식"이라며 "이런 접근법으로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의 문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f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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