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하나의 재물"..끝나지 않은 세종대 40년 잔혹사
'설립자 아들' 주명건, 교육부 임원취소에 맞불 소송 복귀 길 열려
'세종민주화 투쟁' 박춘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의 깊은 고뇌
"황망하고 실망스러워"..대학 쪽 "주명건 개입 없고, 해고는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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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종합감사로 지난해 2월 대양학원 이사직에서 해임된 주명건(75) 전 이사(이하 주명건)가 복귀할 길이 열렸다. 대양학원은 세종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고, 주명건은 설립자 주영하 박사와 최옥자 목사의 장남으로, 대양학원의 실질적인 소유주로 불린다. 교육부는 2019년 대양학원과 세종대 종합감사를 벌여, 재산 부당관리 등 임원 직무태만, 교원 채용과정 참석 부당 등을 이유로 주명건의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주명건은 이 처분의 취소 청구 소송을 냈고, 지난 12일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가 이를 받아들여 “임원취임 승인 취소 처분을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교육부는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주명건 이사가 세긴 센가 보네요. 계속 (법적 다툼에서) 이기는 걸 보면….” 이날 오후, 1분도 채 안 걸린 선고를 들으러 다른 조합원 예닐곱명과 함께 법원을 찾은 고진수(49)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하 고진수)의 어깨가 축 처졌다. 세종호텔은 대양학원이 지분 100%를 보유한 ‘세종투자개발’이 운영하는 곳으로, 지난해 말 식음사업장을 폐지하고 직원 15명을 정리해고해 노조가 불복 투쟁을 하는 중이다. 40여년 동안 ‘세종대 민주화’에 매달리고 있는 박춘노(69) ‘세종대 정상화 투쟁위원회’(세정투위) 위원장(이하 박춘노)도 법원의 판단이 “황망하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분노하고 답답해하는 걸까.
박춘노, 1979~1995년
박춘노는 동급생보다 8살 많은 나이로 1979년 세종대 경상학부에 입학했다. 주명건이 이 학교에 교수로 부임한 이듬해였다. ‘서울의 봄’이 찾아온 2학년 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엉겁결에” 과 대표를 맡았고, 당시 대학가에 불던 학원 민주화 열풍에 따라 세종대에도 만들어진 총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위원장도 맡게 됐다. 이게 “인생의 갈림길”이 될 줄 그땐 몰랐다.
그해 4월, 700여명이 모인 총학생회 회칙 제정 공청회에선 “학교법인의 전횡을 바로잡아야 총학생회도 제대로 건설된다”는 비판과 성토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당시 세종대는 주영하 박사가 학장, 아내 최옥자 목사가 대학원장, 주명건이 기획처장 겸직을 하고 있었고, 주 박사의 두 딸도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학생들이 이런 ‘족벌 운영 체제’를 겨냥한 것이다. 그길로 시작된 철야농성이 30여일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전날인 5월17일, 박춘노는 계엄 포고령 위반 혐의로 붙들려 서울동부경찰서에 40여일 동안 구금됐다.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신학을 공부하며 노동자를 위한 목사가 될 준비를 하던 박춘노는 정권의 학원 자율화 조치로 1984년 가을 복학했다. 당시 그는 목회 일을 시작해 학교엔 자주 못 갔다. 그런데 제적됐다 복학한 후배들이 학교 쪽에서 미행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에 항의하며 학내시위를 벌인 후배들이 요청해 학생처장을 면담했다가 ‘학내 소요 주동자’로 1985년 6월 다시 제적당했다. ‘빨간 줄’은 1993년 정부가 학생운동 관련 제적자의 재입학을 허용하면서 지워졌다. 1995년, 박춘노는 16년 만에 세종대를 졸업했다.
그동안에도 학교는 평화롭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다시 폭발한 학생들의 세종대 민주화 요구는 족벌 체제 청산과 학교법인의 임명총장제 폐지에 이르렀다. 1988년 세종대 총학생회가 공개했다는 한 교수의 ‘밀고’ 편지는 당시 세종대의 운영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존경하는 기획실장님(주명건), (중략) 모 교수는 이사장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자르지 않았고, 모 학장은 학생들이 이사장님을 비난하는 시위를 하는데도 적극 말리지 않았습니다.”(<한국일보> 1992년 7월2일치)
이런 상황에서 교수들이 교수협의회를 꾸리고 직원들까지 학생들에게 힘을 보태자, 1989년 주영하 당시 이사장은 전체 교수회의에서 총장을 선출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고 주명건 당시 경영대학원장은 보직을 내려놨다. 학생들의 ‘승리’일 줄 알았던 싸움은 1990년, 사상 초유의 전교생 유급으로 끝났다. 총장직선제가 다른 사립대로 확산될 것을 염려한 노태우 정권이 이를 막으려 들고 학교법인이 가세하면서 학교에 여러차례 공권력이 투입됐다. 급기야 ‘수업일수 부족’을 들어 일부 예체능계를 제외한 전교생을 유급시켰다. 눈에 띄는 대목은, 주명건의 장인인 홍성철 당시 국토통일원 장관이 이 조처가 있기 넉달 전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한편, 1993년 주영하 이사장은 복귀했고, 주명건도 대양학원 등기 이사에 이름을 올렸다가 1997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고진수, 2001년
고향인 경북 구미시의 한 반도체 공장 생산직으로 일하던 고진수가 요리에 빠져든 건 25살 때였다. 한 식당에서 맛본 만두와 김치에 빠져 그곳에서 1년 동안 음식을 배웠다. 자기 식당을 차렸지만 장사가 잘 안됐다. 2년 만에 가게를 접고 서울에 와 일식당 몇곳에서 일하며 일식에 눈을 떴다. 그러다 2001년 11월, 지인 소개로 자리 잡은 게 세종호텔 일식당이다. 계약직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정규직과 임금 차이가 별로 안 났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도 많았다. “호텔에서 일한다는 기대감과 자부심”도 컸다. 바쁜 일과 틈틈이 공부하고 기술을 닦아, 일식조리기능사와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노력을 인정받았는지 2년6개월 만에 정규직도 됐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식당들과 달리, 객실 정비나 프런트 업무 쪽에선 직원 의사와 무관한 전환배치가 당시에도 진행됐다. 10년 동안 다섯차례나 완전히 다른 업무로 배치된 이도 있었다. 고진수는 “특히 고참급 사원의 퇴사를 유도하거나, 출산한 여성 직원을 업무 강도가 높은 곳으로 보내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세종호텔은 주명건이 회장을, 그의 동생인 주장건 전 세종투자개발 대표이사가 사장을 맡고 있었다.
전쟁, 1997~2004년
주명건이 이사장에 오른 뒤, 세종대에선 1990년 교수협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교수 여러명이 재임용에서 탈락하거나 사직을 강요당했다. ‘여성의 머리가 너무 크다. 8등신으로 바꾸라’는 주명건의 지시를 거부하고 원래대로 만든 모자상을 설치한 김동우 회화과 교수도 2001년 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 교수는 법정 투쟁과 1인시위로 맞서며 버텼고, 교수단체와 재학생, 동문들이 지지 대열에 동참했다. 박춘노가 다시 ‘세종대 문제’에 개입한 건 이 무렵이다. ‘세종대 재단 퇴진과 김동우 교수 복직 투쟁위원회’를 만들었고, 주명건 등 학교법인 이사진의 문제를 찾아내 교육부에 감사를 청구했다.
비슷한 시기인 2003년 11월, 주영하·최옥자 부부는 세종대 구성원들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장남을 “물질에 탐욕스럽고 권력에 비굴한 인격 파탄자”, “패륜” 등으로 지칭하며 “주명건이 재단과 그 산하 모든 기관을 자신과 그 가족의 것으로 사유화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사장직 불법 중임, 세종투자개발 회계 부정, 세종대 교비 유용 및 횡령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교육부는 2004년 가을 벌인 종합감사 결과, 수익사업 관리 태만으로 약 46억원 보전, 이사장 인건비 집행 부당으로 약 4억원 회수 등 약 113억원의 재정상 조치를 대양학원과 세종대에 내렸다.
대양학원은 세종투자개발 주식 100%를 학교 운영을 뒷받침할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관리한다.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은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하고, 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교비회계로 전출해야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이 주식이라면 수익은 배당이다. 그런데 당시 감사 결과 대양학원은 1998~2003년 세종투자개발에서 단 한차례도 배당을 받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명건과 그의 부모 등은 세종투자개발과 출자회사 등에서 회장 등의 직함으로 약 38억원의 보수를 받아갔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세종투자개발 임원의 책무성을 강화할 방안과 수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강구”하라는 ‘개선’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배당을 받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수익사업 관리 태만’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2013년 회계감사, 2019년 종합감사에서도 똑같이 지적된다. 세종투자개발 등의 임원으로 주명건 등이 보수를 받아간 것도 여전했다.
2004년 감사에선 또, 대양학원이 부동산 등 다른 수익용 기본재산을 매각해 세종투자개발 유상증자를 하는 대신, 주식 매입액의 정기예금 이자 상당액 이상을 대학 운영 경비로 확보하라는 교육부의 허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약 46억원의 결손이 발생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세종호텔에선 회사 쪽이 2001년 자본금 5천만원짜리 ㈜세종호텔을 설립해 직원 용역화를 시도했다. 노조는 물론 일부 간부급 직원까지 강하게 반발해 그 계획은 무산됐다. 2004년엔 전환배치가 더욱 잦아지면서 객실정비와 프런트 담당 조합원을 중심으로 집단 업무거부와 집단 직장이탈에 들어갔다. 호텔 정상 가동이 불가능해지자 회사 쪽은 일주일 만에 손을 들었다. 물론, 그것으로 외주화 시도를 끝낼 회사는 아니었다.
절반의 성공과 반격, 2005~2013년
주명건은 이사장직을 사임했다. 대양학원은 함세웅 신부,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정태상 변호사 등이 포함된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박춘노는 이때 김호진 이사장의 추천으로 학교법인 사무국장을 맡게 된다. 뒤이어, 부동산 불법매각 등의 문제가 불거져 세종투자개발 이사진도 교체됐다.
임시이사들은 김동우 교수 등 해직 교수 6명을 복직시켰다. 세종호텔에선 그 전까지 2~3%대에 머무르던 임금 인상률이 11% 선으로 올랐다. 하지만 박춘노는 “대양학원 이사진 다수가 주명건이 채운 사람들이라, 해직교수 복직 말고는 크게 개혁적인 조치도 못 했고, 세종대 정상화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주명건과 가까운 최승구 전 대양학원 사무총장은 <월간조선> 2007년 2월호에서 ‘교육부 제안으로, 새로 선임하는 이사 가운데 3명을 주명건이 추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사진은 기존 정이사 2명까지 포함해 주명건 쪽이 1명 더 많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주명건은 한반도 대운하 주창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2007년 말 설치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2009년 6월에 6개월 기한으로 새 임시이사들을 보냈는데, 안종범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보수 인사거나, 주명건과 가까운 이들이었다. 이들은 취임 한달 만인 7월13일, 세종투자개발 이사진 교체 권한을 대양학원 이사장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고, 나흘 뒤인 7월17일 주명건은 세종투자개발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듬해 사분위는 주명건 쪽이 대부분인 정이사들로 세종대를 ‘정상화’시켰고, 주명건은 대양학원 명예이사장에 위촉됐다. 2013년부터는 이사직을 맡아, 교육부 종합감사로 자격이 상실된 2021년 2월까지 쭉 자리를 유지했다. 박춘노는 6개월 임시이사진이 오기 전 1년 가까이 이어진 이사진 공백기에 학사 운영 마비를 막으려고 교육부 문의를 거쳐 업무를 했지만 2009년 직권남용 등으로 해임당했다. 4년이나 걸린 해임 무효 소송에선 최종 승소했지만, 정년퇴임 직전에 판결을 받아 끝내 다시 출근하진 못했다.
구조조정, 외주화, 정리해고… 2009~2022년
주명건이 돌아오면서, 호텔 직원들의 부침도 서서히 본격화됐다. 고진수가 요리를 하던 일식당이 중식당으로 바뀌었다. 공항이나 병원, 은행 등의 식당을 운영하는 외식사업부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고진수도 2년 가까이 한 은행의 상설뷔페에서 일하다 그곳이 문을 닫자 본사로 돌아왔는데, 배치된 곳은 일식당이 아닌 한식뷔페였다. 그렇게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부서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이전 경영진과 맺었던 5년짜리 고용안정협약, 비정규직 1년 근무 뒤 정규직 전환 단체협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복수노조법 시행을 앞두고선 노조 간부들이 중점적으로 전환배치됐다. 2011년 7월1일, 복수노조법 시행 첫날 ‘세종연합노조’가 새로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조합원 수가 180명을 넘었다. 230여명에 이르던 세종호텔 노조 조합원 수는 70여명으로 쪼그라들어 다수노조의 지위가 흔들렸다. 고진수는 “회사 쪽이 간부급 조합원들을 직접 포섭했다. 주방장, 지배인처럼 근무 일정을 좌지우지하고 페널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일반 조합원한테 새 노조 가입서를 주면, 그걸 거부하는 게 쉬웠겠냐”고 말했다. 회사는 세종호텔 노조와 6월부터 이미 진행 중이던 교섭을 중단하고, 10월 새 노조와 임금협상을 맺었다.
노조는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했다. 또, 법적 대응을 통해 연말에 교섭을 재개했지만 회사 쪽은 부당전보 철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무렵, 그해 초 회사 쪽이 ‘세종서비스’라는 용역회사를 설립해 외주화를 다시 시도하려 했다는 정황도 알려졌다. 결국 노조는 설립 37년 만인 2012년 1월 파업에 돌입해, 38일 동안 호텔 로비 점거 농성을 벌였다. 회사 쪽은 대체인력을 투입하며 파업 동력을 떨어트리려 했지만,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뚜벅이’ 참가자들의 연대 농성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전환배치와 징계 등으로 파업 참가자들을 계속 압박했다. 파업이 끝난 뒤 남은 조합원은 38명이었다.
이후에도 세종호텔에선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벌어졌다. 2014년 계장급부터 적용하던 성과연봉제가 2016년 전 직원으로 확대되면서 수십명이 회사를 나갔다. 30년 가까이 일한 조리사의 연봉이 4500만원에서 매년 뚝뚝 꺾여 2018년 2900만원까지 떨어지는 등 임금이 줄었기 때문이다.
외주화에도 속도가 붙었다. 2016년, 회사는 주차장 운영과 객실 3개층 정비를 ‘케이에이치알’(KHR)이라는 용역업체에 넘겼다. 이 회사는 주명건이 대주주인 세종에스엠에스가 지분 60%를, 세종투자개발이 20%를 갖고 있다. 2020년 11월부터는 객실 전체 정비가, 지난해 9월엔 시설부가 외주화됐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는 경영이 악화했다며 세차례 희망퇴직을 받았다. 객실 정비를 하는 정규직의 90%에 가까운 2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식음사업부 12명 정리해고, 식음사업장 폐지에 이어 해당 부서에 남아 있던 고진수 등 15명이 지난해 12월10일부로 정리해고됐다. 그 결과, 330여 객실을 보유한 4성급 호텔에 지금 남아 있는 정규직은 23명뿐이다.
식사를 할 수 없고, 응대할 직원이 모자란 호텔이 성황을 이루길 기대하긴 어렵다. 고진수는 “세종호텔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는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애써 영업 매출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진 이 상태로 가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돈다”고 했다. 회사 쪽은 휴업명령이 부당하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고, 노조는 같은 기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리고 미래
박춘노와 고진수, 이들의 오랜 고통과 질문은 결국 대양학원과 세종호텔에서 ‘주명건의 실질적 영향력’에 가닿는다. 주명건이 명예이사장일 때 세종대 총장을 지냈던 박우희 전 총장이 퇴임 직전인 2012년 7월25일 한 얘기다. “밖에서 명령을 하는 사람이 있다. 총장이지만 인사를 한 적이 없고, 총장이 사인하지 않고 집행된 걸 나중에 알고 내가 호통을 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행동, 얘기가 그날 다 보고가 올라가, 총장은 어항 속의 금붕어였다.” 같은 날, 주장건 전 세종투자개발 대표는 “주명건이 학교를 하나의 재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투자개발과 주명건을 정점으로 소유 구조가 얽혀 있고(그래픽 참고), 이들 사이 여러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투명하게 감시하기 어려운 점 역시 이들이 주명건에게 책임을 묻는 배경이다. 가령 세종투자개발은 모두 10개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모두 학교와 호텔 관련 사업체다. 세종호텔 주차장 관리와 객실 정비를 하는 케이에이치알뿐만 아니라, 조경은 한국화목종묘, 식자재 납품은 케이티에스씨나 케이에프에스가 맡는 식이다. 주명건 부부가 대주주인 세종에스엠에스는 호텔 경영 자문과 식음료사업 위탁 운영, 인력 공급 등을 하는 회사여서 노조와 세정투위 쪽에선 세종호텔 정리해고·외주화의 종착지가 이곳이 될 거라고 추측한다. 한편, 주명건의 아들은 세종투자개발이 지분 76.21%를 가진 케이티에스씨와, 이 회사가 지분 51%를 가진 코빅푸드의 등기이사다.
하지만 세종투자개발은 교육부 감사 대상의 하나인 ‘수익사업체’로 등록돼 있지 않다. 그 주식만 대양학원의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관리될 뿐이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런 점 때문에 세종호텔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보기 어렵고, 주명건 등 설립자 일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해 세종호텔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사실상 형식적인 책임을 면한 채 세종호텔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며, 세종호텔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세종대 관계자는 “세종호텔은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가 5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정당한 해고로 판정했다. 주명건이 학교법인이나 세종호텔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사실과 전혀 다른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세종에스엠에스가 세종호텔 식음사업 등을 맡을 거란 얘기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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