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알고보면 우리 것"..中 집요함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김지산의 '군맹무中']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2. 7. 23.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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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디올이 가을 신상품으로 내놓은 '플리츠 미디 스커트'가 중국에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사진=바이두

명품 브랜드 디올이 중국 전통 의상 디자인을 베껴 신상품을 내놓았다는 '표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일의 발단은 디올이 내놓은 가을 컬렉션 중 하나인 '플리츠 미디 스커트'가 중국 명·청 시대 여성들의 전통 의상인 마멘췬(馬面裙)을 닮았다고 중국 누리꾼들이 주장하면서다.

이들이 주장하는 '디올 표절 의혹'의 근거는 신상품 치마의 양 측면에 주름이 있고 앞뒤에 깊은 트임이 있는 게 마멘췬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관영 언론까지 가세했다.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디올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글로벌 소비자들이 디올 제품 디자인이 오리지널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일부 중국 문화에 낯선 사람들은 마멘췬이 디올을 '모방'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들끓자 디올은 디올차이나 홈페이지에 해당 제품을 소개하면서도 '판매 불가' 꼬리표를 달았다. 논란 전까지 2만9000위안(약 560만원)에 팔던 상품이었다. 누리꾼들은 집요했다. 디올의 온갖 나라 홈페이지를 뒤진 끝에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에서 문제의 제품을 팔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고 일부 매체는 디올에 사실이냐고 따져 묻기까지 했다.

22일 현재 중국, 디올 본고장 프랑스를 비롯해 어떤 나라에서도 디올은 홈페이지상에 이 제품을 노출하고 있지 않다. 일부 나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지 여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신상품 하나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도 중국의 힘이라면 힘이다.

중국에서 외국의 중국산 표절 논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서구에서 중국을 공격할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짝퉁, 표절, 기술탈취 같은 것들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서구는 현대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중국이 무단으로 가져간다고 하는 반면 중국은 대부분 중국의 전통적인 것들을 서구가 가져다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고 주장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서구가 주장하는 건 지식재산권과 관련성이 높은 반면 중국의 것은 지식재산권과는 거리가 있다. 디올 디자이너가 실제 중국 마멘췬을 따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영감'으로 치환할 여지가 있다. '중국 고대 의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 고대 여성들의 세련된 감각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문화라는 게 교류 과정에서 발전하고 기능이나 디자인이 변형되기 마련이다. 이번 디올 논란은 이 같은 문화 속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

다수 중국 누리꾼들의 이 같은 태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탈리아 대표 요리 피자만 해도 중국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의 '충유빙'이라는 음식이 피자의 기원이라는 주장인데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머물 때 이 요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탈리아로 돌아가서는 나폴리 식재료를 얹어 먹은 게 오늘날 피자가 됐다고 한다.

중국 고대 여성 의상 마멘췬/사진제공=중국신문망 웨이보

면 요리도 마찬가지다. 서양이 면의 발상지 중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간 뒤 변형을 거쳐 다양한 면 요리가 탄생됐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자면 이탈리아 파스타는 중국 면 요리의 짝퉁 버전이다.

더 당혹스러운 건 정색하고 법을 들이댄다는 점이다. 디올 사건에서 중국 내 일부 언론은 무형문화재법 위반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디올은 외국 기업으로서 중국 무형문화재에 관한 법률을 준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준엄한 어조로 경고했다.

다른 나라 기술이나 디자인, 연예 콘텐츠를 무단으로 도용해 마구잡이 짝퉁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이 할 말은 아니다. 누구나 잘 알듯 중국은 지식재산권 침해에 관해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한국만 해도 KB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이 무단으로 퍼간 콘텐츠들이 무려 7억회 이상 다운로드 됐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미·중 무역분쟁에서 지식재산권은 미국의 중국 공격 빌미의 하나였다. 1단계 협정에서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농업과 에너지를 2000억달러어치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미국은 중국이 영업 비밀과 상표, 위조 및 불법 복제와 관련한 지식재산권 보호를 점검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지식재산권을 양도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보통의 나라라면 상당히 모욕적인 내용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사가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 짝의 답을 보고 베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부모로부터 받아내는 것과 같다.

중국은 왜 지식재산권을 가볍게 여길까. 윌리엄 앨퍼드 하버드 법대 교수는 저서 '책 도둑질은 고상한 범죄'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사회질서를 강조하는 유교 사상은 지식의 사적 소유가 아닌 공유를 강조한다. 이들 국가(중국, 대만)는 지난 몇 세기 동안 이런 식으로 국가 사상을 주입했다'고 썼다.

남의 지식재산권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가 크고 작은 분쟁을 유발하고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키는데도 중국은 자기 기업 지키는 데만 열심이다. 지난해 9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기업들은 해외 기업으로부터 지재권 침해 소송을 당하면 자국 법원에서 '소송금지 명령'을 받아내는 걸로 맞선다고 보도했다.

소송 금지 명령은 같은 건으로 다른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인 소송을 내지 못하게 하는 법원 결정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 제도를 요긴하게 써먹는다. 한 예로 2020년 미국 델라웨어주의 '인터디지털'이라는 회사가 지재권을 침해했다며 샤오미에 대해 소송을 걸자 샤오미는 중국 법원에서 소송금지 명령을 받아냈다. 인터디지털은 이 결정에 불복해 인도와 독일 법원에 소송을 내고 유리한 판결을 끌어냈지만 결국 샤오미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와 오포 등 또 다른 중국 기업들이 독일, 일본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때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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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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