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까지 14분, 환승 17분.. "장애인 출근길 시위 절박함 이해됐어요"
서울시, 7년간 '1동선' 못 지키는 동안
뒤처진 장애인 이동권에 불편 그대로
"지자체 예산 제때 투입하면 갈등 해결"
‘덜컥.’
3분쯤 지났을까. 리프트가 갑자기 멈췄다. 계단의 절반도 못 내려왔는데. 달려온 직원이 작동 레버를 아무리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 동안 씨름하다 하는 수 없이 리프트에서 내렸을 땐 1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 사이 지하철 두 대가 떠났다.
18일 오전 10시 서울 지하철 6호선 대흥역 2번 출구에서 있었던 리프트 체험기다. 지난해 12월 3일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뜨거운 감자다. 이들에겐 이동권 보장이 생존권 투쟁이다. 하지만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한 투쟁 방식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하철 이용이 얼마나 버겁길래 장애인들은 지하로 뛰어들어 수모를 감내하는 걸까. 15, 18일 주민센터에서 수동 휠체어를 빌려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대흥역과 까치산(2ㆍ5호선), 신설동역(1ㆍ2호선)을 직접 이동해 봤다. 1역사 1동선은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리프트를 타지 않은 채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로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갖춘 역사다.
휠체어로 리프트 타고 환승하니 시간 5배
대흥역 2번 출구를 출발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3층 신내 방향 승강장에 도착하기까지 2분 26초면 충분했다. 반면 휠체어로는 리프트 고장으로 낭비한 시간을 빼도 13분 53초가 걸렸다. 특히 지하 2층 경사로를 통과하기가 고역이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휠체어를 고정하기 위해 두 팔에 힘을 꽉 줘야 했다.
신설동역에서는 환승을 해 봤다. 1호선 동묘앞 방면 승강장에서 출발해 엘리베이터를 세 번 갈아타고, 리프트를 한 번 이용한 끝에 17분 34초 만에 용두 방면 2호선 승강장에 도착했다. 내부 냉방은 잘됐지만 등허리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같은 거리를 걸어보니 3분이 걸렸다.
까치산역에선 5호선 화곡 방면 승강장에서 2번 출구로 나가봤다. 리프트를 타고 지상용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허둥지둥하는 사이 10분 48초가 지났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2분 58초 거리다.
장애인들이 리프트 이용 역을 기피하는 까닭을 알 법도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둘째고, 고장이 잦아 안전 위험이 컸다. 1999년 이후 지난해까지 수도권 지하철에선 휠체어 리프트 관련 사고가 17건 발생해 장애인 5명이 숨졌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계기도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였다.
전동스쿠터를 타는 장애인 이모(66)씨도 리프트에서 떨어질 뻔한 경험을 한 뒤 공포가 생겼다. 다니는 교회는 까치산역 바로 앞에 있지만 빙 돌더라도 등촌역(9호선)을 이용한다. 이씨는 21일 “한 번만 사고를 당해도 두 번 다시 리프트를 쳐다볼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1역사 1동선' 100% 확보는 언제?
93%.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내세우는 수치다. 교통공사 관할 서울 지하철 275개 역 중 93%(256개)에 1역사 1동선이 확보돼 있단 뜻이다.
이만하면 충분할까. 장애인들은 고개를 젓는다. 장애인 콜택시나 저상버스 등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수단이 잘 갖춰진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지하철이 장애인들이 어디나 갈 수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당장 1역사 1동선이 안 된 곳에서 리프트를 타다 죽을 수도 있다”며 “100%가 아닌 이상 90%가 넘었다고 자부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역사 1동선이 없는 19개역 중 15개 역은 공사에 들어갔거나 공사 시작 예정이다. 그러나 공사 날짜조차 잡지 못한 역도 다섯 곳이나 된다. 기자가 체험한 대흥ㆍ까치산ㆍ신설동역이 특히 문제다. 이들 3개역은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공사 부지가 사유지를 침범한다는 이유로 아직 설계도조차 나오지 않았다.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가 조명을 받으면서 교통공사는 11일 전문 설계업체에 용역을 맡겼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기술적 문제보다 이해관계를 해소하는 어려움이 더 크다”며 “인접 건물주, 구청 등과 논의해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4월 공사 측은 2024년까지 모든 역에 1역사 1동선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도 123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못 믿는 눈치다. 2015년에도 서울시가 같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설치 완료 시점이 올해였다.
결국 관건은 돈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예산을 확보해야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서울시가 설계ㆍ공사 예산만 제때 투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조한진 대구대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교수도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복지가 아닌 자유 보장의 영역”이라며 “비장애인 중심의 교통 구조를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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