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귀국 한달째.. 짐은 아직 안왔어요 [NOW]

강다은 기자 2022. 7. 23.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6박 7일간 이탈리아를 다녀온 박윤영(36)씨의 여행 가방은 27일째 행방이 묘연하다. 박씨는 대한항공 편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이탈리아행 루프트한자 항공편으로 갈아탔는데, 이 과정에서 짐이 제대로 옮겨 실리지 않았다고 한다. 빈손으로 이탈리아에 도착한 박씨는 현지에서 캐리어·속옷·신발·화장품까지 생필품 70만원어치를 사야 했다. 박씨는 한국에 돌아온 뒤 항공사에 7차례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수십 통 걸었지만 지금까지 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현지 공항 직원에게 짐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니 ‘공항 인력이 부족해 상황이 안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기약 없이 기다리다 지쳐 이젠 짐을 찾을 수 있는지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수화물 시스템 고장으로 여행 가방이 산더미처럼 쌓인 히스로 공항. /Stuart Dempster 트위터

여름 휴가철 유럽 주요 공항들이 수하물 분실과 항공편 결항·지연으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 엔데믹(풍토병)으로 최근 여행 수요가 회복되면서 공항 이용객이 폭증했지만, 공항과 항공사는 극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있던 직원들마저 과로로 그만두는 사례가 늘고, 이달 초엔 파리 샤를드골 공항 직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등 유럽 공항 곳곳에서 파업까지 벌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이런 상황을 인류 종말의 대전쟁을 뜻하는 아마겟돈에 빗대 ‘에어마겟돈’(에어포트+아마겟돈)이라고 부를 정도다.

해외로 출국한 한국 여행객들의 수하물 지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과거엔 수하물 유실이 있어도 한 편당 1~2개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공항에서 수하물을 항공기에 실어줄 인력이 없어 한 항공편 수하물 수백 개가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 대학원에 다니는 임모(27)씨도 최근 한국에서 프랑스로 가며 수하물로 맡긴 캐리어를 일주일 만에 받았다. 임씨는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이 짐 분실 접수만 해준 뒤 일주일간 감감무소식이었다”고 했다. 최근 두 달 넘게 유럽 여행을 한 김모(34)씨는 “여행 중 사용한 고프로 카메라와 사진 영상이 담긴 외장하드, 노트북이 전부 들어 있는 캐리어를 3주 넘게 못 찾고 있다”고 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한 여행객 중엔 “수하물 없는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항공편 결항과 지연도 잦다. 지난 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오전 10시 출발하는 베를린행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기다리던 김모(43)씨는 갑자기 비행기 결항 통보를 받았다. 오후 5시에야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이마저도 다시 지연돼 오후 7시 이륙했다. 김씨는 “원래 타려고 했던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메일은 심지어 다음 날에야 왔다”며 “유럽 공항은 지금 카오스 그 자체”라고 했다. 글로벌 항공 운항 정보 업체 호퍼에 따르면 이달 1~10일까지 영국 히스로 공항의 항공편은 50%가 지연 운항해 코로나 이전보다 78% 증가했다. 취소 항공편도 3배 급증했다. 벨기에 브뤼셀 공항(이하 지연율 72%),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68%),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항(67%), 영국 루턴 공항(66%)도 10편 중 6~7편이 지연 운항되는 등 유럽 주요 공항에서 이 같은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출발이 지연돼 이·착륙 제한 시간에 걸리거나, 승무원들이 법정 근무시간을 넘게 되면 1~2시간이 아닌 수십 시간씩 ‘헤비 딜레이’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국내 항공사는 유럽 현지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달부터 승객들에게 “수하물 지연 가능성이 있으니 귀중품과 의약품은 기내에 휴대하라”는 사전 안내를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공항 작업 인력이 많은 시간대로 항공편 시간을 조정하는 식으로 승객들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유럽 여행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엔 “수속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최소 5시간 전에 공항에 갈 것” 등의 팁과 현지 상황이 공유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