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아파트 '원가'는 알고 싶지 않다

봉달호 편의점주 2022. 7.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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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아파트 견본주택./뉴스1

기자가 쓴 기사의 ‘실질 원가’는 얼마일까? 4원 50전 정도로 추정한다. 기사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노트북 컴퓨터 정도니, 노트북 소비 전력을 한전 전기요금표에 견주어보면 그만하다. 그렇다고 기자들에게 기사 한 건당 10원을 입금하면서 “원가의 두 배나 쳐줬다”고 하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이달 초 마곡지구 13개 단지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했다. 설명회 자리에서 ‘실질 원가’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서울 시내 25평형 아파트 실질 원가가 1억5000만원 수준이란다. 그러니 영업이익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는 2억원 미만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SH공사 사장은 공언했다. 현재 마곡동에서 같은 평형 아파트가 8억~9억원 정도에 거래되니 ‘서울시 만세’를 외칠 일이다.

그런데 가만. 계산법이 독특하다. SH공사는 아파트 원가를 건물 값과 땅값으로 구성했다. 그 밖에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없다는 뜻이다. 사실 재화나 서비스에 ‘원가’를 따지는 발상 자체가 의아하지만, 아파트 가격 구성에는 과연 건물과 땅밖에 없는 것일까? 이 또한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다. 기사의 원가를 4원 50전이라 정하는 셈법과 비슷하니까.

원가 앞에 ‘실질’이란 수식을 붙이면 더 어색해진다. 원가면 원가지 어떤 원가가 실질 원가라면, 그보다 높은 가격은 허구, 가짜, 거품, 혹은 사기란 말인가. 나아가 대체 ‘분양 원가’라는 것을 공개하는 이유조차 모르겠다. 원가를 공개해 그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한 건설사에 모욕이라도 주겠다는 뜻일까. 그러면 가격은 저절로 내려갈까? 그러한 ‘원가 마케팅’을 하는 업체들이 있긴 하다. 아웃도어 브랜드 가운데 원가와 이윤을 공개하고 “저희는 이것만 남기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한정 수량을 판매하는 업체가 있긴 하지만 그건 등산화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평생 살 집을 원가가 정직(?)하다는 이유로 선택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민주당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내놓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단연 부동산 문제다. 오래전 노무현 정부가 몰락할 때도 경제적 원인은 부동산에서 촉발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당 인사들은 사람의 ‘욕망’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픈 요구, 재산을 증식하겠다는 의지 등을 저급한 욕망 정도로 취급하고 안분지족하라는 식의 정책을 펼친다. 욕망을 세금이나 규제로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고 스물 몇 번이나 되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으나 욕망은 정권을 제압하였을 따름이다. 게다가 국민에게는 ‘참으라’ 말하면서 자신들은 뒷구멍으로 할 것 다 하는 내로남불의 추태가 수없이 드러났으니 절망하는 민심에 분노의 기름까지 끼얹었다.

기본적으로 욕망은 제압할 대상이 아니라 출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국민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수준 높은 임대 아파트’가 아니다. 자신은 부동산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실컷 활용한 위정자들이 국민에게는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는 공자님 같은 말씀이나 읊조리고 있었으니 누가 귓등으로나 듣겠나. 가격을 낮추려면 공급을 확대하라는 원리는 경제학 교과서 맨 앞장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요즘엔 초등학생도 안다. 의미도 없는 아파트 ‘실질 원가’ 계산할 시간에 규제의 낡은 틀로 공급을 가로막는 ‘대못’부터 뽑는 것이 순리 아닐까. 우리는 원가 같은 건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집이 우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집을 고르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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