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먹고 운동하다 쇼크? 밀가루 알레르기 의심을"

김상훈 기자 2022. 7.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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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팁]음식 알레르기 자가진단법
밀가루속 글루텐에 면역체계 작용.. 성인 1만명중 1명꼴 알레르기 반응
운동중 두드러기-쇼크 발생 잦아.. 과일 섭취후 입안 가려워도 적신호
소고기 먹은후 어지럼증-복통은.. 야생 진드기에 물린후 많이 나타나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음식 알레르기에 대처하려면 평소 ’음식 일기’를 쓰고 원인 물질로 의심되는 음식을 덜 먹을 것을 권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40대 직장인 박진수(가명) 씨는 얼마 전 저녁 회식 후 벌어진 악몽을 잊을 수 없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려고 달린 게 화근이었다. 갑자기 온몸이 가려워지더니 숨이 막혔고, 결국 쇼크로 기절까지 했다.

버스기사가 급히 119에 신고한 덕분에 응급실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술이 원인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다음 날 박 씨를 진료한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밀가루 알레르기를 의심했다. 박 씨가 평소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데다 가끔 두드러기가 났다고 했기 때문이다.

혈액 검사와 피부 검사를 진행했다. 밀가루에 들어있는 글루텐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모두 양성 반응이 나왔다. 권 교수는 ‘밀가루 의존성 운동 유발성 아나필락시스’로 진단했다. 밀가루와 운동이 결합해 쇼크를 일으켰다는 뜻이다.

음식 섭취 후 예상치 못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 권 교수에게 대표적인 음식 알레르기에 대해 들어봤다.
○ 밀가루 음식이 쇼크 일으킬 수 있다?

글루텐은 곡물에 들어있는 단백질이다. 소화 과정에서 글루텐이 원인이 돼 장에 가스가 차거나 복통, 설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밀가루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이런 증세를 ‘글루텐 불내증’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전체 인구의 10∼20%가 글루텐 불내증 증세를 보인다. 이 때문에 글루텐이 없는 ‘글루텐 프리’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밀가루 음식을 먹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이 글루텐 때문이다. 한국은 성인 1000명 중 1명꼴로 글루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루텐과 운동이 결합할 때 알레르기가 나타나는데, 심각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박 씨가 경험했던 음식 의존성 운동 유발성 아나필락시스다. 글루텐은 쉽게 분해되거나 용해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장(腸)벽을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운동 직후 혈류가 증가하면 순간적으로 장에 흡수된다. 이때 면역 시스템은 글루텐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이 알레르기는 국내의 성인 1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인이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증세가 나타났을 때 △평소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지 △운동을 시작하고 30분 이내인지 △밀가루 음식을 먹고 4시간이 지나지 않았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모두 해당한다면 알레르기로 봐야 한다.

대체로 갑자기 달리는 식의 격한 운동 후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중년 이후에는 강도가 낮은 운동을 한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 권 교수는 이 밖에도 갑자기 혈류를 높일 수 있는 상황, 즉 △음주 △진통소염제 복용 △피로와 스트레스 △여성 생리 등도 이런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보조적 요인이 된다고 했다.

○과일 먹었는데 입술이 가렵다?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 견과류를 먹었을 때 입술, 혀, 목 안쪽이 가렵거나 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때로는 코 점막이 부풀어 오르거나 재채기를 자주 할 수도 있다. 대체로 음식을 먹고 난 후 1∼2분 이내에 증세가 나타난다. 이 또한 일종의 알레르기다. 주로 입안과 주변에서만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에 구강알레르기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은 꽃가루 알레르기의 변형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꽃가루를 적으로 여겨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같은 원리로 식물에서 비롯된 이 식품을 꽃가루로 인식해 공격하면서 이 증후군이 나타나는 것이다. 면역 세포의 ‘착각’인 셈이다.

전체 국민의 5%,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의 40% 정도에서 발생할 만큼 흔하다. 다른 알레르기와 달리 전신 두드러기나 쇼크는 웬만하면 생기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증세를 유발하는 과일을 빈속에 많이 먹거나 △제산제나 진통소염제를 복용하고 있거나 △과일 섭취 후 운동을 곧바로 했을 때는 드물게 전신 두드러기나 아나필락시스가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을 익혀 먹으면 증세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과 대신 사과잼을 먹는 식이다. 자연 치유가 되기도 하지만 불편이 크다면 항히스타민제를 먹거나 꽃가루 항원에 대한 면역 치료를 한다. 면역 치료로 50% 이상에서는 효과가 나타나며 3∼5년 정도 치료를 계속하면 상태가 꽤 좋아진다.
○고기도 알레르기 유발할까?

채소나 과일이 아닌 고기를 먹을 때도 알레르기가 생긴다. 하지만 매우 드물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이 알레르기를 적색육 알레르기라고 한다. 고기에 들어있는 올리고당(약자로 알파갈)의 이름을 따서 알파갈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적색육 알레르기 체질이라면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 이른바 적색육이나 여기에서 비롯된 우유를 먹고 나서 2∼6시간 후에 증세가 나타난다. 증세는 두드러기, 가려움증, 복통, 구토, 설사, 어지럼증, 호흡 곤란, 쇼크 등으로 다양하다.

이 알레르기는 야생 진드기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색육에 있는 알파갈과 유사한 물질이 야생 진드기에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야생 진드기에게 물린 후에 이 알레르기가 나타날 때가 많다. 혹시 증세가 나타나기 1∼2개월 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산에 갔는지, 야생 진드기에게 물렸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야생 진드기에게 물릴 경우 까만 딱지가 생기기도 하므로 몸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알레르기는 닭고기, 오리고기, 생선을 먹었을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금류와 생선에는 알파갈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고기를 먹었을 때도 알레르기처럼 보이는 증세가 나타난다면 고기 알레르기가 아닐 확률이 높다.

‘음식일기’ 쓰면 큰 도움… 원인음식 가급적 피해야… 두드러기 너무 잦을땐, 다른 면역질환 가능성도





알레르기 원인물질 찾기와 대처법

갑자기 없던 음식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 체질이 변했을 수도 있고, 면역 조절 시스템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 권혁수 교수는 이를 ‘면역 체계의 착각’이라고 칭했다. 면역 체계가 특정 음식을 돌연 해롭다고 규정하면서 공격하기 때문에 과거에 없었던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치료하려면 알레르기 원인 물질부터 찾아야 한다. 피부 검사나 혈액 검사를 통해 면역글로불린E(IgE)라는 항체 수치를 확인한다. 이 항체가 있다면 알레르기 항원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검사만으로 원인 물질을 찾아내지 못할 때도 많다. 권 교수가 실제 사례를 들려줬다.

20대 여성 환자가 중국 식당에서 회식이 끝날 무렵 쇼크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원인 물질을 찾지 못했다. 권 교수는 그 식당의 음식을 사와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했다. 하지만 끝내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퇴원 당일에 환자가 다시 쇼크를 일으켰다. 친구가 사온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였다. 그제야 알레르기 원인 물질이 확인됐다. 녹차에 있던 천연색소 성분이었다. 중국 식당에 확인해 보니 디저트에 그 색소가 들어 있는 시럽을 썼다고 했다. 비로소 알레르기 원인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30대 여성이 술을 마시다 똑같이 쇼크를 일으켜 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안주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검사해 보니 술에 들어 있는 동물성 색소가 원인이었다.

이처럼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은 너무 다양하다. 문제는 하루에도 수많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원인 물질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권 교수는 ‘음식 일기’를 쓸 것을 권했다. 평소 알레르기가 의심된다면 자신이 먹은 음식을 꼼꼼히 적어두라는 것이다. 또한 원인 물질로 의심되는 음식을 가급적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두드러기가 생기면 모두 알레르기 증세일까. 그건 아니다. 대체로 음식 알레르기는 식후 30분 안에 증세가 나타난다. 두드러기가 만성적으로 자주 생겨난다면 음식 알레르기가 아닌, 자가면역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따로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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